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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연애1-탐색기

언제나 연애 전 탐색은 옳다

언젠가 칼럼에 나와 신랑의 연애가 궁금하다는 어떤 분의 댓글을 핑계로
비도 오는 오늘 주저리주저리 나의 마지막 연애사를 풀어볼까 한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2년.

여러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원동력은 사람과 사랑이었다.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서 시작한 물음이 사업으로 이어지고 봉사활동으로 이어졌다.

나름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연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둘의 나이도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일단은 사랑을 외치는 내가 메마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주변에 괜찮은 총각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탐색할 여지도 주지 않고 그냥 흘려보냈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들었다.

선긋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탓에 썸물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매몰차게 거절해온 날들이 참 미련스럽게도 느껴졌었다.

아직은 아니야라며 일 뒤로 미뤄뒀던 내 젊은 날의 연애의 기회들이 아까워졌다.


어느 날 갑자기 정말 뜬금없이 연애를 해야겠더라.



그쯤이 크리스마스였는데 내 사무실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했다.

드레스코드는 레드. 솔로들을 모아 솔로탈출을 결심하게 하는  파티였다

솔로들끼리 모였다. 각자 음식은 준비 해오는 조촐한 가벼운 파티였다.

앞으로 크리스마스는 홀로지 내지 않기로 결심한 동지들 사이에

내 마지막 연애를 위한 보석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자기 소개하며 내가 진행하고 있는 솔로가 솔로를 돕는 프로젝트 우리가 연애하면, 을 이야기하는데

잡지사에다니는 어떤 분께서 함께 행사를 기획해보자고 미팅을 제안하시는 거다. 


미팅은  다음해 1월 3일.  

잡지사 봉사팀장님과 편집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미팅을 했었다.

그리고 그날 봉사팀장님이 나에게 꽂히셨지 푸하하.


 에 맨투맨을 입는 작은 키에 다부져 보이는 슬림한 체형

작은 눈의 눈웃음이 매력적인 분이셨으나 내 스타일이 아니므로 아웃 오브 안중

두 살 정도 어리려나 싶었는데 무려 4살이나 어린 28살? 패스!!!

난 워낙 정신연령이 높은 탓(착각도 자유지)에 연하는 만난 본 적이 없었다. 썸타던 연하도 한 살 차이정도?

한 살 연하도 유치해서 못 만나겠다고 하던 나니까.


행사 진행을 위해 자주 보고 연락도 자주 하게 되었      봉사팀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나이 차이 때문에  동생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만났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제안했던 심야영화도 아무렇지 않게 수락했다.

야심한 시각에 남자랑 단둘이 영화라니 나는 분명 방심했었다.

그날 본 영화는 겨울왕국이었는데 (그래 그 렛 잇 고 말이다. 어찌나 건전한지!) 가족애를 다루는 영화라 그런지 매우 감동적이었다. 심지어... 울었다. - 나는 분명 방심했었었다.


깊은 밤, 한번 터진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우린 꽤 깊은 대화를 나눴다.

당시 쉽지 않은 사업의 길도 그랬고 한 달에 한번 봉사를 진행하면서 사람들과의 갈등이나 어려움들이 나를

짓누를 때여서 나는 꽤나 스트레스 상황이었다. 하소연하듯 한풀이하듯 뱉어    

 그가 시작한 본인 이야기는 스무 살 있었던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과 연년생 동생의 대학 입학으로 스무 살 때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산업체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절단 기계에 손을 다쳐 왼손 검지와 중지를 잃고야 말았다.


그가 내게 왼 손을 보여주었다.  

스무 살, 천방지축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설치고 다니던

이제 겨우 학생티를 벗을까 말까 한 그때 이 사람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처음 한 달간을 울면서 지냈다는데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그 당시 상실감과 절망감을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어 나는 결국 울고야 말았다. 스무 살 그 어린 나이에.


더 놀라운 일은 그가 한 달을 울고 한 일은 본인과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이었다.

절단 장애인의 모임을 만들어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손마디 하나를 잃은 사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사람, 팔 하나를 잃은 사람 등,

자신의 절망 가운데서 다른 이의 절망을 보듬었다. 상실은 만남의 이유가 되고 만남은 위로가 되었다.


상처는 누구나 받는다.

하지만 어떻게 그 상처를 대면할 것인지, 상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성숙도에 따라 결정된다.

본인의 상실을 넘어 타인의 상실을 보듬는 이런 성숙한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나는 이성적인 여성이므로 한 달간에 탐색기를 갖기로 결정했다. (그에게 말하진 않았으나)

분명 우리는 심야영화 이후 좀 더 친해졌으나 다행히 봉사팀장님은 기다릴 줄 아는 남자였으니 (이 남자 나중에 알고 보니 연애경험이 상당했다) 그동안 본인의 감정을 확인하는 즉시 숨넘어가는 급한 남자들과 다른 성숙도를 어필했다.   


그리고 또 알게 된 또 다른 사실 하나는 초록우산재단에 기부를 하기 위해 퇴근 후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는 거다.

퇴근 후 시간이 어떠한가 그냥 텔레비전 보며 쉬기에도 부족한 그 귀한 시간을

그것도 추운 겨울에 군고구마가 다 팔릴 때까지 장사를 해 기부를 하다니

 그때 한창 라디오, 기사, 텔레비전 프로그램까지 나갔었다는 것이다. 성실하고 꾸준하기까지.



이 사람 참 섹시하지 않은가?

내가 원하던 187cm의 키나 쌍꺼풀 없는 큰 눈도 아니거니와 호방한 리더 스타일도 아녔지만

이 사람 마음의 키가 확실히 187cm 인건 확실했고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성실함과 꾸준함이 장점인 사람이었다.


2월 마지막 주 내 생일.

그는 3시간을 달려 정동진에 데려다 놓고 25 숫자가 꽂혀있는 케이크를 내밀었다.

처음  1월 3일 몇 살이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25살 생일 이후 나이를 세지 않아 25살이라고 대답했었다.   

 . 이 사람 자상하기까지. (이때 이미 콩깍진가 싶지만 ㅎㅎ )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구나. 그에게는 나이보다 더 중요한 것 외모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구나 싶었다.



탐색은 종료. 이제 본격적인 연애를 해야지.  그렇게 우린 3월 3일 공식적(?)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우린 1월 3일에 만나고 3월 3일에 교제를 시작하고 10월 25일에 결혼했다.

까다롭고 깐깐하고 나를 위한 연애를 하는 나로선 내 결혼이 이렇게 일 년 만에 될지는 정말 몰랐다.

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내 운명.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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