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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스킷 Nov 05. 2022

심야 복싱 2

맞고 나니까 달라졌어요


 땀에 젖은 옷을 손으로 꽉 쥐니 물방울이 주르륵 흐른다.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같이 나섰다. 헬스와 같이하는 바람에 9시 반이 넘어야 집에 들어갔다. 처음엔 아픈 곳이 많았다. 줄넘기하면서 알 배긴 종아리와 찌릿한 정강이 뼈, 45도 정도 몸을 튼 상태로 반복해서 비틀 때 긴장해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발목. 밴드는 너무 꽉 감아서 샌드백을 칠 때 정권 뼈 마디마디가 서로 맞닿아 아팠다. 주먹이 붓고 투박해졌다. 샌드백을 실수로 빗겨칠 때면 붕대엔 피가 묻어 나왔다.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려던 찰나였다. 프로이자 코치의 지도 아래 시키는 대로 반복하니 어느 정도 할만해졌다며 다른 관원과의 스파링을 제안했다.


 

순간 망설이다가 받아들였다. 관원과는 처음 하는 스파링이었다. 시작 전 몸을 풀면서 하는 얘기가 귀에 들렸다. 과거 복싱 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관원이었다. 최근 MMA를 수련하다 다시 복싱장에 찾아왔다. 나보다 5센티 이상은 작아 보였다. 보호구를 착용하는데 빨간 헤드기어가 나에게 다소 꽉 끼었다. 코치는 머리가 옆으로 나와 그럴 수 있다며 에둘러 말했다. 그리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게 말했다. “저 친구 봐주는 거 없이 세게 날릴 텐데” 또다시 처음 마주한 상황에 심장이 저절로 빨리 뛰었다. 손이 다소 차가워졌다. 아무도 없는 사물함 속 가방에서 처음 만든 마우스피스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입이 불편해졌고 호흡은 여전히 빨랐다. 3라운드 경기였다.

 

코치는 칭찬하던 원투 위주로 해보라고 주문했다. 지켜보던 관장님은 잽을 더 많이 내도록 요구했다. 스파링용 글러브 때문에 평소보다 무거운 오른손을 뻗었다. 뻔한 나의 앞 손. 가드로 내 잽을 막았다. 다음엔 카운터로 앞손을 되받아쳤다. 샌드백이 아닌 스파링을 통해 잽과 스트레이트를 연습하고 싶었다. 페이크, 더블, 바디를 섞어 두드리고자 주먹을 냈다. 갑자기 상대가 빠르게 밑으로 파고들어 큰 어퍼를 날렸다. 벨도 누르지 않고 망설임 없는 묵직함을 턱으로 배달했다. 원치 않게 천장을 보았다. 지켜보던 그의 친구들에게서 오~ 하는 소리가 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재빨리 가드를 올리고 몸을 흔들었다. 몇 번이고 힘이 상당히 실린 주먹을 배송받자 차가운 몸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살짝 뛰어 어깨를 털었다. 힘을 뺀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타격하고자 의식했다. 처음 했던 스파링과 달리 내 타격도 들어갔다. 공간이 보이면 던지고, 상체와 머리를 흔들었다. 거리를 잡고자 발을 계속 움직였다. 전보다 더 숨이 찼다. 관장님이 상대방에게 말했다. “네가 원래 하던 대로 해봐”


 

 그가 낮은 자세로 위빙 하며 다가와 아래에서 점프하듯 훅과 어퍼를 날리기 시작했다. 상대가 원투 혹은 콤비네이션을 날릴 땐 나도 동시에 주먹을 섞었다. 혼자 연습한 기본적인 카운터도 시도했다. 몸통을 순간적으로 제치고 다시 원위치하는 동시에 뒷손을 던졌다. 어설펐지만 맞혔다. 주먹이 오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세를 낮춰 달려 들어오며 클린치가 반복되었다. 상대방이 대시하며 주먹을 던짐과 동시에 끌어안을 때가 많아졌다. 점차 익숙해지자 뒤로 빠지며 치거나 던지는 주먹을 쳐냈다. 붙으면 상대적으로 큰 내가 위에서 누르는 모양새였다. 클린치가 아닐 경우 아래쪽에서 갑자기 던지는 어퍼는 양쪽 팔을 모아서 막았다. 중간중간 타격을 입었다. 점차 패턴이 익숙해져서 주먹을 방해하거나 사전에 막고 빠져나올 때도 생겼다. 종이 울렸다.


 코치에게 클린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었다. “상대가 접근하기 전에 손을 뻗어 거리를 확보해보세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종이 울렸다. 낮게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손을 뻗었다. 접근이 막힐 때 다시 잽과 스트레이트 공격 기회가 생겼다. 공격 중에 거리가 가까워지면 엉켜 붙었다가 떨어졌다. 공격, 엉겨 붙고 떨어지고의 반복이었다. 30초쯤 남았을 때였다. 상대의 손이 내려갈 때 숨을 뱉으며 양훅을 빠르게 4차례 휘둘렀다. 관장님은 경기를 잠깐 멈췄다. 또다시 종이 울렸다. 상대방은 대자로 누워 갈증 때 마시는 물처럼 숨을 들이켰다. 그는 오랜만에 해서 복싱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며 포기하려 했다. 코치는 나에게 물었다. “더 하실 거예요? 마지막 라운드인데” 안 할 이유는 없었다. 상대도 격려받으며 다시 일어섰다.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상대의 얼굴이 빨개졌고 지친 모습을 보았다. 승패를 가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때부터 힘을 싣지 않았다. 마지막 종이 울리고 서로 인사했다.



 잠깐 동안 링에 멍하니 서있었다. 세면대에서 마우스피스를 빼고 볼에 고인 피를 뱉었다. 역시나 양쪽 볼 안이 터졌다. 눈에 멍은 들지 않았다. 코치와 상대의 무리들은 다시 링에 모여 또 다른 스파링을 하는 듯 보였다. 시간이 늦은 터라 인사를 하고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밤과 피로가 마중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했다. 땀을 많이 흘려 개운했다. 물줄기 속에서 뻐근한 뒷목을 주물렀다. 어떤 활력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조용히 침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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