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지 마, 제발
현재의 나보다 10년 전의 나는 꽤 추진력이 있었다. 젊어서였을까?
비록 기세는 한없이 쪼그라들었지만, 퇴사 후의 버킷리스트들을 명랑하게 하나씩 실행해 나갔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운전면허 자격증 도전
지체할수록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학원이 좋은지 나쁜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바로 등록을 했다.
학원은 대중교통으로 가기에 애매한 곳에 있어 셔틀버스를 운영 중이었다. 무지개떡 같은 가방을 메고 뒤뚱거리는 깜찍한 아이들이나 탈 법한 노란색 봉고차는 우리 집 주변 편의점 앞에서 나를 은밀히(지극히 주관적인 소회로 노란색 봉고차가 조금 부끄러웠던 나는, 마치 첩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이다 누가 볼세라 봉고차 안으로 후다닥 탑승하곤 했다) 픽업해 갔다. 차를 타면 나와 비슷한, 평일에 운전면허 학원을 가는 여유로운 친구들이 핸드폰을 보거나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그 마음도 여유로웠는지는 모르겠다.
필기와 실기의 지난한 모든 과정을 마스터하고 드디어 실기 시험만을 앞둔 상황이었다. 나는 내가 직접 차를 움직인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한 번에 합격하리다' 의지 팡팡인 상태였다. 공정성을 위해서인지 매번 실습과 시험 감독관 선생님은 랜덤으로 지정되었다. 그날 나의 실기 시험 선생님으로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분이셨고, 나와 또 다른 여성분이 한 차를 타고 시험을 볼 예정이었다.
시험은 학원에서부터 중간까지가 A코스, 중간에서부터 학원으로 돌아오는 게 B코스로 두 명의 수험생이 번갈아 운전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B코스로 지정되어 뒷좌석에 착석한 상태로 시험이 시작되었다.
무사히 A코스 시험이 진행되나 하는 도중 선생님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그때도 지금도 그분이 어떤 잘못을 해서 선생님이 화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운전 초보자였던 나는 어떤 위험한 상황이 있었는지 몰랐고, 그저 얼음처럼 굳어버린 차 안의 분위기가 긴장되어 내 순서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중간 지점에 이르자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운전석에 앉았다. 그러나 긴장이 무색할 만큼 B코스의 도로에는 그다지 차가 많지 않았다. 그날은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는데 천천히 내리는 눈송이만큼 적당한 간격의 차들은 바람에 휘날리듯 나를 사뿐히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멀리 학원이 어슴푸레 보였다.
'이제 차선 하나만 바꾸고, 직진만 하면 돼.'
다 왔다는 마음에 신나게 차선을 바꾸고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시험 내내 아무 말씀도 없던 선생님께서
"탈락입니다."
"네?????? 왜요?"
"보세요. 여기 유턴만 가능해요. 직진 안됩니다."
이 모질이가 신난 마음에 차선을 한 블록 전에 바꾼 것이었다. 직진이 안 되는 곳에서 직진을 하겠다고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니.. 분명 쿠쿠 언니가 밥이 다 되었으니 잘 저어 먹으라고 하는 중이었고, 나는 한 손에 주걱을 들고 김이 모락 나는 밥솥을 열고 있었는데.. 세상에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는 나를 스윽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언니도 떨어지고 와서 그렇게 울었어." 언니도 울었어? 우리 집 내력인가. 나만 모질이 같고, 아쉬워 죽을 거 같은 심정이었는데 조금은 위로가 됐다. 언니와 통화를 하며 "너도 떨어져서 울었어? 우하하하하" 웃음소릴 들으니 이상하게 속상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세상 무거웠던 주제가 '우하하하하' 소리에 붕붕 뜬다.
'그래, 떨어진 게 뭐 대수라고. 다시 도전하면 되지.‘
그 후로 언니와 나는 재시험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그리고 지금, 어렵게 딴 면허를 10년째 장롱에 처박아 두고 뚜벅이로 살고 있다.
역시 집안 내력이 맞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