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마다 반복되는 퇴사와 이별(파혼) 이야기

프롤로그

by 배시현


이 글은 나의 회복의 기록이다. 10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상실의 파도 앞에서 버티는 의지이며 거슬러 올라가는 용기이다. 그렇게 첫 글자를 한 발짝 떼는 기적으로 나는 오늘을 살았다. 그러나 내일은 잘 모르겠다. 앞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가 볼 예정이지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내일은 무사한가? 나는 내일이 두렵고, 미래를 예측하는 모든 사고를 경계한다. 최근에 생긴 버릇이다. 평온한 내일은 막연하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의 첫 문장으로 지난날을 회고해 본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나는 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무논리의 무한 긍정을 기저 한 나의 미래는 결단코 해피엔딩이 기정사실이었다. 그런 내가 이런 본 투 비 블루 같은 사고를 장착하게 된 것은 바야흐로 2025년의 초여름 장미가 고개를 든 어느 여름이었다.


퇴사 후 가을에 열릴 결혼식을 위해 과자 부스러기 같은 일들로 분주한 때였다. 예상치 못한 그와의 다툼으로 우린 파혼에 이르게 되었고, 나는 노처녀 백수 카테고리에 자발적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한순간에 인생이 완전히 뒤집힌 느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느낌. 분명 언젠가 감각해 본 기시감이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때도 잘 다니던 회사를 돌연 퇴사를 하고, 연이어 이별을 했었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맨손의 파이터가 되어 맷집을 키운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는 것은 그때 생긴 맷집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는 상실감이라고 강도가 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커져버린 나이에 반비례하게 버티는 체력은 그의 반의반도 안 되며, 괜찮은 척은 제 몸집보다 떠들썩하고 앓아눕는 건 순식간이다.


괴테의 책 ≪파우스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손에 익은 하프의 줄을 당차면서도 우아하게 튕기고,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애교스럽게 방황하는 것, 그것이, 나이 지긋한 신사들이여, 당신들의 의무랍니다."


의무를 다해보고자 한다. 우아하거나 애교스러운 건 자신 없지만 방황이 최선인 모습으로 불안과 좌절의 아이콘이 되어 보기로 한다. 어쩌면 이 방황이 더 나은 세상으로의 인도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