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틀 부수기

여행길에서 만난 자유

by 배시현


이별 후 홀로 여행 준비를 하던 나에게 새로운 여행 파트너가 생겼다.

퇴사 전 알고 지내던 선배 언니가 마침 시간이 된다는 것이었다. 언니와는 담백한 친밀감이 있다. 우린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서로를 알고 호의적이다. 협업을 통해 상대에 대한 신뢰 또한 쌓아둔 터라 긴 여행 메이트로 더할 나위 없었다. (나는 단시간에 과한 친밀감을 쌓으려는, 쌓았다는 애티튜드를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뒷걸음질을 치다 도망가는 경향이 있다. 부자연스러움에서 오는 이중적 태도에 대한 환멸을 공식처럼 체화해 본 탓일 것이다)


유럽 여행 일정은 이랬다.

영국 - 프랑스 - 이탈리아 - 스위스 - 체코


보름간의 여행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이라는 말이 적격인 여행이었다. 여행 중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신다면 제각각의 연유로 다 좋았지만 뾰족한 한 수가 있던 건 바로 스위스였다. 스위스는 나의 상상대로 평화롭고 동화 같은 나라였다. 그런 풍경과 대비되게 나는 여기에서 익사이팅 한 여행을 즐겼는데 그 첫 번째가 패러글라이딩, 두 번째가 융프라우에서 고산병 앓기, 세 번째가 도시 자전거 여행이었다.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날, 반나절의 시간을 자전거 여행과 리기산 등반으로 나눠 두 팀으로 여행을 했다. 나는 자전거 여행을 선택해, 언니와 팀원들과 함께 루체른을 크게 한 바퀴 돌며 곳곳을 감상했다. 카펠교와 빈사의 사자상을 보고 한참을 달리다 크고 아름다운 호수를 만나 잠시 쉬어갔다. 우린 미리 사둔 위스키가 들어간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와 정말 술이 들어있어"하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해변가 모래사장에 눕혀놓은 타월처럼 마음이 나른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파란 우비를 꺼내 입고는 체코행 기차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속력을 높였다. 마치 비를 뚫고 달리는 파란 구름이 된 기분이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카펠교를 지나 건너편 기차역까지 그리 멀지 않았는데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거센 비로 카펠교 아래엔 이미 커다란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고, 기차역으로 가려면 그 웅덩이를 밟고 지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앞서 언급했듯 나는 21인치 캐리어와 배낭 하나로 떠나온지라 신발이라곤 신고 있는 운동화가 전부였다) 만약 신발을 신은 채 웅덩이를 지나면 내일의 체코 여행은 눅눅한 감자튀김 같은 여행이 될 게 뻔했다. 나와 사정이 비슷한 팀원들은 서로를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몇몇은 신발을 신은 채로, 몇몇은 신발을 안은 채로 물웅덩이를 건넜다.


나는 배낭과 낡은 운동화를 우비 속에 품고 맨발로 달렸다. 비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달릴 때마다 작은 파도가 되어 종아리에 부딪히며 유쾌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머리가 맑아지고 온 세상이 기쁨으로 차올랐다. 자유로움과 해방감,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이 나를 감쌌다.


'비 맞으면 안 돼, 젖으면 안 돼, 신발 신고 다녀야 해, 안 그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 행동 조심해.'


하면 안 되고, 해야만 하는 것 투성이었던 나는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었다. 그러나 맨발로 비를 맞으며 달리는 순간 알았다. 내가 진짜 원한 건 이런 거구나.


타인의 시선과 틀에 구속되지 않는 삶.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하면 안 되는 것은 없고, 할 수 없는 것도 없고, 꼭 해야만 하는 것도 없었다. 그 모든 건 내가 만든 틀에 불과했다. 틀 바깥은 재앙이라는 강박을 내려놓았을 때 오는 또 다른 감정과 상황, 모르는 문이 열리고 새로운 길을 찾은 것 같은 희망을 나는 그때 조금 엿본 것 같다.


아마 맨발의 달리기를 선택할 수 있었던 건 그곳이 여행지, 그것도 동화 속 같은 스위스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자유로움을 경험했고, 했기에 그 특별함을 안다. 어쩌면 10년 전의 이 경험은 페이스트리처럼 지난 시간 속 사이사이에 녹아 알게 모르게 내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대표적인 예가 파혼이었을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