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와 만나다

어학연수가 남긴 것

by 배시현


나는 첫 학기는 천진에서, 다음 학기는 항주에서 보냈다. 중국의 북쪽과 남쪽을 다 경험하고 싶기도 했고, 학기 중 다양한 중국의 관광지를 여행하고 싶은 이유가 컸기 때문이다.


북쪽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음식은 기름지고 자극적이어서 더위보다 추위를 타고, 간이 선한 식습관을 가진 나에게는 조금 힘든 곳이었다. 반대로 남쪽은 대체로 따뜻하고 음식의 간도 적당했다. 특히 학교 주변 생활환경과 기숙사가 넓고 쾌적해 나에게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두 학기를 보내는 동안 중국에서 계속 지내며 학교를 옮겨도 좋았겠지만, 나는 학기가 종료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그 이유는 한국을 떠나기 전 태어난 첫 조카에 대한 그리움과 한국 음식에 대한 갈증 그리고 HSK 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진에서 돌아와 HSK 5급에, 항주에서 돌아와 6급에 도전을 했다. 5급은 내가 정말 실력이 늘었구나 체감한 시험이었고, 6급은 아직 멀었구나 겸손해진 시험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두 시험 다 합격을 했다.


그때 수험생활을 회고해 보면, 학창 시절 때 이런 마음가짐과 욕심으로 공부를 했다면 아마 내 미래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잠자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횟수까지 통제하며 하루에 공부할 시간을 최대로 늘렸었다. 원하는 양의 공부를 하기엔 하루는 너무 짧았고, 왜 인간은(나는) 그렇게 많이 자야만 하는지 한탄스러웠었다.


HSK 자격증은 그렇게 얻은 나의 자존감 회복제였다. 나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에 대한 만족감은 타인의 인정보다 백배는 더 가치로웠고, 이는 나를 다시 당당히 사회로 돌아가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시험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자 나는 다른 일로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집안일과 나이 든 부모님의 주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님은 우릴 부유하게 키우진 못했지만 부족하게 키우진 않으셨다. 늘 사랑과 지지가 있었고, 그 마음은 아낌에서 드러났다. 나는 중국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 손으로 세탁기를 돌려본 적이 없었다. 설거지는 몇 번 해본 거 같은데 도통 집안일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던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당혹스럽다.


어학연수로 인해 항상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에게 처음으로 독립된 삶이 주어지자 집안일과 요리(사실 요리는 아직도 넘기 힘든 산이다)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고, 이 경험은 귀국 후 나의 삶의 패턴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갑자기 물때가 낀 화장실이 보였고, 쌓인 빨래와 텁텁한 바닥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인가, 나는 매일 아침 양치질을 하며 날씨를 체크하고, 오늘 빨래를 해도 되는지 가늠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쇼핑을 가면 청소 용품과 가전제품 코너를 자주 기웃거렸고, 잘 건조된 빨래와 먼지 없는 바닥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졌다.(절대 결벽증은 아님을 짚고 넘어간다.)


아직 집을 떠난 적이 없는 내 동생은 중국을 떠나기 전 나와 비슷한 상태다. 그녀는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물론 나와 부모님이 못 참고 먼저 해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집안일은 온 가족이 다 같이 하는 거라고 그녀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 보지만 발전 속도가 늦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이해도 간다. 그녀가 집안일을 하지 않는 건 하기 싫은 이유도 있겠지만 어쩌면 예전의 나처럼 일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오늘도 건조된 빨래를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청소기는 당연히 이미 돌렸고. 인터넷 검색 창에 어학연수를 검색해 본다. 동생이 갈 만한 나라가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