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직장인이다

돌아 돌아 다시 A

by 배시현


어학연수에서 돌아와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호텔리어가 꿈이었던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토익 공부를 하며 호텔 취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던 중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회사에 경험 삼아 취업한 것이 지난 몇 년간 나를 이 업종에 묶어두게 만들었고, 이렇게 또다시 같은 업종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사실 재취업에 성공한 A 회사는 나를 한 번 거절했던 회사였다. 전 회사를 나온 뒤 A 회사의 면접을 본 날, 본능적으로 알았다. ‘안 되겠구나’ 면접 탈락을 예감했었다. 그리고 역시나 아무 연락이 없는 A 회사를 뒤로 한 채, 나는 바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오답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날의 면접을 회상해 보면 나에게 제일 부족한 건 어학 실력이었기에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연수에서 돌아와 그토록 원하던 HSK6급 자격증을 손에 들고는 제일 먼저 A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물론 다른 회사들에도 말이다.


그러나 원하는 회사는 연락이 없고 다른 회사들의 러브콜만이 이어졌다. 나는 하염없이 A 회사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 다른 회사의 면접을 보기도 했으나 영 성에 차지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안 좋아하고, 내가 관심 없는 사람은 날 좋아하는 것처럼 엇갈리는 취업 상황에 시간만 보내기가 아쉬워 백화점 단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내가 생각해도 참 잠시도 쉬지 않는 인생이다.)


옷과 주얼리를 다루는 이 작은 회사는 팝업 형식으로 백화점에 입점한 터라 직원들은 어리고 경험 없는 귀요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파릇파릇한 선배들 사이에서 나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조용히 새로 일하게 된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력은 어디 못 가는 건지 아니면 내 성격이 원래 그런 건지, 시간이 흐르자 나는 슬슬 승부욕이 발동하기 시작했고, 매출은 점점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그 무렵 갑자기 사장님이 찾아오셨다.


잠깐 차 한잔하자는 말과 함께 근무 중이던 나를 카페로 데려가셨다. 근무하는 것은 어떤지 소소하게 안부를 묻더니, 더 오래 함께 일하는 게 어떻겠냐며 본론을 꺼내셨다. 당장 원하는 연봉을 맞춰주진 못하겠지만 서서히 올려줄 수 있다는 진심 어린 정규직 제안이었다.


“저는 입사하고 싶은 회사가 따로 있어요.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알아봐 준 사장님께 감사를 표하고는 얼마 남지 않은 아르바이트 기간을 잘 마무리하겠다며 적당히 갈무리했다. 비록 단기 아르바이트지만 내가 근무하는 시간에는 내 매장이라는 주인 의식을 갖고 임했는데(이건 변함없는 내 업무 스타일이다.) 사장님의 제안은 이런 내 진심이 통했다는 방증 같아 보람되고 뜻깊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A 회사 인사팀입니다.”


드디어!! A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기쁨과 환희에 차올라 마치 화상 통화라도 하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네네'를 남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막 통화가 시작된 순간, 제로였던 고객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더니 ‘얼른 전화 끊고 나를 응대해’라는 여러 눈빛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런 고객들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정신없이 통화를 이어가던 중 인사팀에서 나의 상황을 파악한 듯 질문을 던졌다.


“이미 다른 회사에 취업을 하신 건가요?” 나는 몰려든 고객들로 정신이 없어

“아, 네에.”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해버렸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런데 단기 아르바이트예요. 저는 A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옷을 뒤적거리고, 도난당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작은 주얼리를 착용해 보는 고객들로 정신이 없어, 부연 설명을 하지 못한 채 양쪽 상황 모두를 지켜만 보는 멍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 아쉽네요. 그럼 다음을 기약해야겠네요. 알겠습니다.”


통화 밖으로 들리는 고객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인사팀은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내비치며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어지러운 매장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매출이 좋았냐고 물으신다면, 그 순간 몰아친 고객들은 내 취업을 방해하기 위해 고용된 배우들처럼 내가 통화를 끊고 다가가자 대부분은 몇 가지 질문을 끝으로 제 갈 길을 떠나버렸다.(잠시 트루먼 쇼인가 현실 부정도 했다.)


고객이 다 떠나버린 잠잠해진 공간 속에서 통탄의 감정에 휩싸여 (말 그대로) 머리털을 다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모질이는 왜 중요한 순간마다 튀어나오는 걸까? 다시 연락드린다고 통화를 종료하고 차분하게 다시 통화했어도 됐는데, 대체 왜 그렇게 밖에 처신하지 못한 건지.. 갑자기 기운이 쫙 빠져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날은 모질이 데이로 마무리할 수밖에.


그리고 며칠 동안 나는 온통 ‘다시 전화해 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자니 ‘나 모질이요~’하고 어필하는 것 같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난 어느 날, A 회사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이상형에게 고백받은 것보다 더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놓치기 싫은 분이셔서 다시 연락드렸어요. 혹시 면접만이라도 볼 수는 없을까요?”


‘네네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조금 고민하는 듯한 목소리로 면접 제안을 수락했고, 그렇게 나는 돌고 돌아 드디어 원하던 A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두 번의 채용 연락을 받아 원하던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게다가 처음 발령받은 곳의 상사는 보기 드문 좋은 사람이었다. 원하던 회사에 좋은 상사까지 만났으니 내가 얼마나 즐겁게 회사에 다녔을지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나?


입사 초반에 나는 일이 너어무 재밌었다. 즐거움은 몰입을 동반했고, 나는 출근을 하면 업무 외 쉬는 시간, 심지어 휴일까지도 업무에 관련된 공부를 쉼 없이 했었다. 자기 효능감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며,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매일 질문하는 나에게 상사는 퇴근시간도 미뤄가며 성심성의껏 함께 자료를 탐구하고 이해를 도왔다. 그렇게 나는 쑥쑥 자랐었다.


회사 상황도 좋았다. 시기적으로 대내외 상황이 좋아 사업에 활기가 넘쳐났다. 인센티브는 물론 포상 선물과 전 직원의 해외여행까지, 그야말로 호황기였다. 물론 그녀(상사)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코로나19가 닥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