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What I konw for sure)
저자 : 오프라 윈프리
번역 : 송연수
출판사 : 북하우스
'오프라 윈프리'.... 작가가 워낙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어서인지 인터넷, 블로그 등 독서후기가 매우 많았다. 남들이 많이 읽은 책은 왠지 내키지 않아서 읽고 싶지 않았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육아와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있던 차에 코로나 19까지 겹쳐 우울한 날이 이어졌다. 힘들 때마다 나를 괴롭혔던 내 안의 뾰족한 가시에 내가 죽을 것 같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단단히 마음먹고 살기 위해(난 엄마니깐!) 도서관에서 책 10권을 빌려왔다. 확~! 펼쳐놓고 '무엇을 먼저 읽을까...'라는 생각 중 내 눈에 가장 먼저 띄었던 책 제목이 바로 이 책!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었다.
'올해로 마흔이 되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게 뭐였지? 내 일? 나의 가족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1. 내가 소중함을 일깨워 준 문장
나 자신이 중요한 삶의 의미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겠다고 선택만 하면 된다.
“엄마, 나를 왜 낳았어? 의사가 포기하라고 했을 때 포기하면 내가 지금 이렇게 속상할 일이 없잖아! 장애인 학교로 전학을 시켜 주지도 않고, 왜 나 보고만 버티라고 하는 거냐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그저 내가 싫다는 이유로 같은 반 남학생에게 운동장에서 발로 차인 날이 있었다. 그 전에도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어서 아프진 않았다. 다만, 엄마가 새로 사 주신 하얀 원피스에 찍힌 운동화 발자국이 짜증 나 엉엉 울며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왜 나를 가르쳤어! 다른 장애인들처럼 나도 집에만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사춘기부터 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 힘들 때마다 난 엄마를 마구 할퀴었다. 태어났을 때 생사는 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의사조차 포기했던 하늘의 기적보다 순전히 엄마의 노력으로 많이 건강해졌고 ㄱ 덕분에 장애를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보통 때는 ’ 그러려니...‘하고 넘기면 됐는데, 유독 힘든 날이면 엄마에게 비수를 꽂았다. 내가 철없는 말을 할 때마다 엄마는 나를 달래주고, 함께 울어주고, 때론 야단치거나 혼내시더니 어떤 날은 내 머리채를 잡아끌고는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셨다. 그 당시 5층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하필이면 우리 집이 5층이어서 엄마의 감정이 추스러지기 전에 옥상에 도착하게 됐고 거기서 엄마는 같이 죽자고 내 몸을 옥상 난간으로 밀었고 난 잘못했다고 울면서 손바닥을 싹싹 빌고 빌었다. 맨발이었던 나와 엄마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다가 내려왔고, 그 날 이후 나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뿐이지,
’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느님은 왜 불완전한 인간을 만들었을까? 나도 쓰임이 있는 소중한 사람일까?'
궁금한데 물어볼 곳 없었던 물음에 대한 답을 오프라 윈프리가 쓴 문장에서 찾았을 땐, 먹먹했다.
< 나 자신이 중요한 삶의 의미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겠다고 선택만 하면 된다.>
나에 대한 평가가 필요치 않은데도 스스로 시험지를 들고 다니며 그들이 매겨 준 점수를 기다렸다. 그리고 기뻐하고 실망했다. 답은 오히려 쉽고 깔끔했다. 한동한 먹먹하게 가만히 있다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그 문장을 봤다.
'이렇게 간단했는데 나는 왜 못했던 걸까... 내가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면 됐었구나... 주변 사람들의 인정,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구나.'
내 마음속에 갖고 다녔던 시험지를 찢어 버려야겠다.
존재 자체로 난 이미 중요한 삶의 의미를 갖고 태어난 소중한 사람이다.
2. '나이 듦'을 기대하게 만드는 문장
- 내가 '노'라고 말할 줄 알게 된 것은 마흔 살이나 되어서였다. (중략) 예전에는 다른 이들이 쑥덕댈까 봐
두려워했다면, 지금의 나는 꼿꼿이 서서 "이게 바로 나야"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 내가 예순 살이 된다. 나는 살아 있다. 건강하게. 튼튼하게.
내가 예순 살이 된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더는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중략) 예순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지금의 내가 될 권리'를 정당하게
획득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지금의 나 자신이라는 점에 당당하다.
세상의 진리는 어느 곳, 어느 시대에서나 비슷하다. 변하지 않아서 진리(眞理)인가 보다. 위 문장을 보자마자 공자(孔子) 선생의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이 떠올랐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마흔의 불혹, 하늘의 명을 깨닫는 쉰 살 지천명,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예순 살의 이순... 내가 38살이 되던 해 유난히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 때 위 세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며 용기를 냈던 기억이 났다.
'나도 이제 3년만 꾹 참고 마흔 살이 되면 서서히 차분해지고 외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을 거야. 조금만 더 힘을 내자!'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버텼지만 막상 마흔 살이 되니.. '엥?' 달라진 게 크게 없었다. 그리고 '별 의미없는 그저 좋은 말들이었구나.' 생각하며 저 세 단어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책에서 저 문장을 읽는 순간 번뜩! 다시 생각났다. 오프라 윈프리가 동양철학을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쓴 글의 의미가 공자의 뜻과 같았다. 불혹, 마흔이 되면 세상일에 판단을 흐리지 않으므로 자신의 생각대로 '노'라고 말할 수 있다. 이순, 예순이 되면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하므로 남들의 주관적인 판단 따위에 흔들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삶...정말 멋진 말이다. 하지만 아무나 그 기쁨을 누리는 건 아닌가 보다. 열심히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며 살아온 이들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느꼈을 한 단계를 뛰어넘었을 때 환희의 느낌을 정말 느껴보고 싶다.
나도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열심히 살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학습하고 '내가 될 권리'를 정당하게 획득하려면 '나이 듦'의 기술이 필요하다. 공부, 노동 등 이익을 창출하기 위함이 아닌 오직 나에게 집중하고 내 마음을 달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노력의 시간들이 쌓여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선택한 '중, 장년기의 숱한 시간'들을 부끄럽지 않게 멋지게 보낼 것이다. 그리하여 예순 살이 됐을 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순'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3. '자유'를 알게 해 준 문장
- 나는 처음으로 자유의 본질이 '내게 명령할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유란,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었다.
나는 월급쟁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을... 정말 하고 싶은 월급쟁이다. 단, 아쉬운 것은 비상근무가 워낙 많고 '업무 특성상 야근은 어쩔 수 없잖아! 시간 외 근무수당 주니깐 불만 없지?'라는 꼰대적인 조직문화로 출퇴근 시간이 의미 없다는 것이다. 퇴근 5분 전, 사내 방송이나 메신저로 긴급사항이 있으니깐 퇴근하지 말고 남아 있으라는 연락을 받으면 무조건 남아 있어야 된다. 그리고 우리 아이와 함께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 한밤중이더라도 비상발령 문자 한 통이면, 겨우 눈곱만 뗀 채로 후다닥 옷만 입고 최대 1시간 내로 지정된 장소에서 응소를 해야 된다. 그렇게 정신없이 나가봐도 정말 긴급한 경우는 10퍼센트도 안된다. '이런 상황인데 굳이 왜?'라는 허탈감과 함께 가족들과 함께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뿐이다.
물론 생업이 걸린 일이므로 1년 중 몇 달 혹은 한 달 중 며칠은 야근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럼 그 시기를 피해서 개인적인 일은 미뤄두거나 미리 해 버리면 불만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는 업무지시와 비상근무는 내 시간에 대한 통제감을 완전히 빼앗기게 돼 삶에 대한 만족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 자유의지에 따라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 여행을 계획할 수도 없고, 친구와 약속을 잡거나, 취미생활을 누리는 게 힘들어진다. 심지어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유치원 졸업식, 학교 입학식에도 갈 수 없었다.
직장생활 15년 동안 진급도 하고 월급도 올랐지만 계속 불만스러운 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왜 난 불만족하는 걸까? 고민하고 고민하던 중, 이 책에서 답을 찾았다. 바로, 내 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회사의 부속품이 돼버렸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답을 찾았으니 해결책도 생각해 보았다. 바로 나에게 '자유'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1년이면 8,760시간인데 그중 아무도 명령할 수 없는, 나의 의지에 따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시 퇴근하기(칼퇴근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일 년 중 가족과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 함께 여행 가기, 일주일에 3시간은 운동하기, 친구들과 여행 가기... 무엇보다 내 시간에 대한 통제권 찾아오기!!! 그렇게 하여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의 정말 중요한 것들은 정해져 있다. 부모님, 나의 외모와 건강,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것까지... 어렸을 때 난 그게 하나님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미 다 정해져 놓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라니... 내가 노력해도 중요한 것은 바꿀 수 없다고! 왜 살아야 하는 거지?'
부끄럽게도 나만 불행한 것처럼 고민을 꾸역꾸역 만들고 있었다. 주변에 물어봐도 명쾌한 답을 듣기 어려웠고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는 시간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를 모두 한심하게 봐서 언제부턴가 묻지 않았고 궁금한 게 해결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됐다.
나는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을 통해 성폭행, 미혼모 등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과거와 용기 있게 맞닥뜨려 끔찍한 시간에서 해방된 오프라 윈프리를 보았다. 그 용기를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얼마나 깊은 바닥까지 내려갔던 걸까... 깊은 마음속 바닥을 딛고 올라온 그녀는 세상 속에 자신의 입지를 굳혔고 명예와 부도 얻게 됐다. 그녀에게 내가 배운 것은 바로, '나를 위한 용기' 이다.
- 과거가 어떻든지, 자신을 사랑할 '용기'
- 아름답게 나이 들어갈 '용기'
- 내게 자유를 줄 '용기'
이제 내 나이 마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지금의 내가 될 권리'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