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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노트

엄마가 달라질게!<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다.>

by 이서진


책 제목 :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다.

저자 : 비벌리 엔젤

번역 : 조수진

출판사 : 책으로 여는 세상


"엄마, 또 아파서 그런 거지? 나한텐 화내도 괜찮아."

"둥아,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누구라도 둥이에게 화를 낼 권리는 없어. 엄마, 아빠나 선생님께서 야단칠 수는 있지만 화를 내면 안 되는 거야. 엄마가 화를 참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그게 잘 안돼. 혹시, 엄마가 또 화를 내면 우리 둥이가 엄마 한번 안아줄래? 엄마 도와줄 수 있어?"

"알았어. 엄마. 사랑해."


오늘도 9살밖에 안된 아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니, 이건 화가 아니라 짜증이 폭발한 히스테리였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약한 것을 알고 있었다. 돈 몇 푼 버느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 괜찮아졌다는 착각으로 치료를 안 했더니 결국 둥이에게 화를 내는 지경까지 됐다.


치유되지 않아 곪아버린 엄마의 상처가 아이를 찔렀다.

나의 우울증 최대의 희생자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아들이 되어버렸다.

여기저기서 제 말 못 해 답답했던 마음을 엄마를 제일 사랑하는 둥이에게 풀고 말았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근 들어 나의 모습을 거울이 아닌, 둥이를 통해 본다는 것이다. 가끔 둥이는 작은 일에 버럭 화거나,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정확하게 하지 못해 답답해하다가 울어버린다. 나는 가슴이 쿵!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이를 달래고 너무 심하게 떼쓰면 야단도 치기만 문제는 아들이 아닌 엄마인 '나'였다.

아들과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되는 골든타임이 시작됐다.

아이를 위해서 난 꼭 변해야 된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단락(1) : 아이를 거부하는 것은 심리적 유기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 때문에 방해받는 걸 원하지 않는데, 부모의 행동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아이가 숙제를 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문제를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해 도움을 요구할 때 "엄마 바쁜 거 안 보이니? 그런 걸로 귀찮게 좀 하지 마!", "아빠한테 도와 달라고 그래!", 심지어 "엄마가 네 문제까지 신경 써야겠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부모가 자녀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거나 배우자에게 떠넘길 때, 아이는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는 걸 알아차린다.


"둥이는 놀기만 하면 되는데, 엄마는 음식 준비해야 되지, 다 먹고 나면 치워야 하지, 빨래도 해야 되지, 청소도 해야 되지, 돈도 벌어야지... 너무 바쁜데 혼자 놀면 안 될까?"


형제가 없는 둥이가 심심하다고 투정 부릴 때면 내가 늘 하던 말이다.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둥아, 심심하다는 게 얼마나 좋은 말인지 아니? 할 게 너~무 많으면 바빠 죽거든. 어른이 되면 심심할 틈이 없어. 그냥 멍하게 있는 것도 얼마나 좋은데."


성격상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를, 아들은 투덜거리고 남편은 걱정한다. 특히, 남편은 항상 바쁜 나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왜 주말에도 아침 7시면 일어나는 건지, 낮에 낮잠을 왜 편하게 못 자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수험생도, 취준생도 아닌데 도대체 왜 계속 공부하는 건지, 노트북 앞에 왜 계속 앉아있는 건지... 안타깝다고 한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같이 신나게 놀고, 가족이 뒤엉켜 같이 쿨쿨 자는 게 행복한 거라고 잠시 쉬라고 한다.


거창한 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계획하고 실행한 후 체크하는 게 편할 뿐이다. 예측 가능한 시간은 내게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그 계획에 아들과의 시간은 10%도 안 된다. 휴직 중 내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써야 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우리 아들을 더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엄마와의 시간을 기다리느라 우리 둥이는 얼마나 심심하고 외로웠을까?


내 삶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당연히 아들이다. 그런데 내 시간들이 내 마음을 증명하지 못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단락(2) : 분노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나타나게 될 경우, 그 사람은 분노에 집착하는 성격 유형을 갖게 된다. 이러한 유형은 다른 사람에 대해 지독하거나 적대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지독함이나 적대감이 원래는 더 이상 수치스러운 경험을 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시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나중에는 그것에 생겨나게 된 원래 이유와 상관없이 거의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대하는 일반적인 반응이 되고 만다.

한 번씩 둥이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소리치고 울 때가 있다. 나의 모습을 아들을 통해 보게 되면 나의 화는 죄책감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리고 나는 마치 감정 컨트롤을 아주 잘하는 사람처럼 둥이에게 말한다.


"악!! 나 하기 싫다고!!!!!! 잉잉잉"

"둥아, 둥아 잠시만... 둥이가 지금 화가 난 거야, 슬픈 거야?"

"엄마가 못하게 해서 속상해. 앙앙~~!"

"그럼 슬픈 건 아니니까 우는 건 멈춰도 되겠지?

"응..."

"그리고 바로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엄마가 뭘 해주면 좋겠는지 말로 해 볼까?"


도덕 교과서 같은 훈계를 내 입으로 뱉고 있는 내가 스스로 가증스럽다.

이미 브런치에 글을 올렸 듯, 난 이미 열폭 아줌마가 돼 있는데, 내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https://brunch.co.kr/@lovebero/9


https://brunch.co.kr/@lovebero/88


분노... 나의 감정 그 자체다


진급을 해도, 휴직을 해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도... 그 무엇을 해도 괜히 화가 난다. 기승전결, 선후관계에 전혀 맞지 않는 포인트에서 눈물이 날 때도 있고 고함을 칠 때도 있다.


몸이 안 좋았던 내가 그나마 사회에서 어울리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쓰고 살았다.

못하는 것도 '제가 할게요!',

싫은 것도 '좋아요!' '괜찮아요'... 왜 그렇게 억지를 부리며 살았을까?

거짓말로 포장해가며 가까스로 힘을 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풀려버린 것 같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밥벌이하기 위해 참았던 일들이 남편과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생겼다고 한 번에 밀려오는 느낌이다.


나의 분노가 넘쳐 아이에게 흐르는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분노에 빠져 죽을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


셋째. 자존감과 신체상 그리고 자기 비난과 관련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거울에 붙어사는 사람과 반대로 거울을 피해 도망 다니는 사람이다. (중략) 이렇게 거울을 피해 다니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자기 외모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울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중략) 그래서 거울을 들여다본다 한들 자신의 못생긴 모습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거울을 안 보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비벌리 엔젤'은 분노와 정서적 학대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 심리치료사다. 혹시 독심술도 하는 게 아닐까? 작가가 나의 생활을 몰래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여학생일 때도, 아가씨일 때도, 지금도 나의 방에는 거울이 없다. 선크림 혹은 쿠션 팩트를 바를 때 살짝 화장실로 이동하여 보면 끝! 그 외 하루 종일 거울 볼 일은 없다.

얼마 전, 줌 화상회의를 통해 30분가량 발표할 일이 있었다. 항상 봤던 줌 화면인데 교수님의 얼굴이 아닌, 내 얼굴이 나오니깐 어색했다. 주름진 이마도 신경 쓰였고, 얘기할 때마다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너무 보기 싫었다. 내 목소리는 또 어떻게 들릴지... 괜한 걱정에 발표 내용도 헷갈렸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에게 물어봤다.

"희연아, 오늘 어땠어? 목소리나 얼굴 이상하지 않았어?"

"응, 평소 네 모습 그대로였어! 발표 내용도 좋았고, 잘했어^^"

그랬다. 그동안 나만 내 모습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울을 안 본다고 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부끄러워서 피했던 내 모습을 타인들은 항상 보고 있었다. 덜덜 떨고, 씰룩거리는 입... 타인에게는 나의 이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거울을 안 보고 있던 나에게만 내 모습이 낯설었던 것이다.


이상, 책을 통해 느낀 나의 문제점은 아래 세 가지였다.

늘 이유 없이 바빠서 아들과 놀 시간이 없었고,

꾹꾹 억눌렸던 감정들이 폭발하는 분노에 힘들어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외면했던 나 때문에, 내가 나를 낯설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꼭 변해야 된다.


첫째, 하루 계획을 세울 때 아들과의 놀이 시간을 1시간 이상 포함하기로 했다. 물론, 숙제를 봐주거나 학습 지를 하는 것과 같은 학습적인 시간은 제외하고 서다. 아이가 놀이터에 가자고 하면 나가고, 딱지놀이를 하자고 하면 같이 딱지치기를 할 것이다. 둥이가 원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이다!


둘째, 공부하기 전 10분씩 둥이와 함께 명상을 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공부를 하다가 아들과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것도 모르냐고 속 터져했고, 아들은 진짜 모르겠다고 울고 ㅠㅠ 그래서 우리는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한쪽 손을 잡고 명상을 시작했다. 처음엔 3분부터 시작했는데 이제는 10분까지 할 수 있게 됐다. 피곤한 날이면 명상을 하다가 잠들기도 한다. 고요한 시간 속 둥이와 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둥이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둥이와 마음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셋째, 작은 탁상거울을 샀다.(아직 큰 거울은 부담스럽다.) 세수하고 크림을 바른 뒤 거울을 보며 '아에이우오' 입을 크~게 벌리며 입 운동을 한다. 입 운동이 끝나면 백성공주를 구박한 나쁜 왕비처럼 거울을 바라보며 '예쁘다, 예쁘다'를 열 번 외친다. 아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깔깔 웃다가도 '엄마, 예쁘다~ 예쁘다.'라고 함께 말해준다.


아주 작은 실천이지만 둥이와 나에게 밝은 에너지가 차이는 게 느껴진다. 마주 보며 웃는 일도 많아졌다.

보통의 경우 엄마는 큐레이션을 하고, 아이는 따른다.

하지만, 둥이와 나는 서로 이끌어 주는 것 같다. 그동안 쌓인 때가 많아 함께 가는 엄마가 무거울 텐데도

"엄마, 오늘도 우리 힘내자!!"라며, 먼저 웃어주는 아들, 나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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