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야, 서진 이모야! 오랜만이지? 시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는데 어느덧, 이른 새벽이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됐구나. 아직까지 한낮은 제법 덥지만 이미 환절기가 시작됐으니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 잘 챙기렴.
어제 엄마와 통화를 했단다. 이모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는데도 엄마는 네 걱정, 네 얘기만 하셨어. 최근에 지아 네가 부쩍 예민해졌다고. 네가 수능을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더구나.
지아 네가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는 학문연구의 기능을 이미 상실했고 취업을 위한 사전단계일 뿐인데 그런 곳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게 아깝다고 생각한다고. 또,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 9급 시험을 쳐서 취직하면 더 좋은 것 같고, 이모처럼 일찍 들어가면 진급도 일찍 할 테니 남들보다 4년을 더 버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던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모는 궁금하구나.
지아 말이 맞아. ’ 공무원‘이란 직업은 꽤 괜찮단다.
무엇보다 안정된 직장이잖니?
산업구조와 소비패턴의 변화에 따라 미래에 없어지는 직업이 예견됨에 따라 사람들은 매우 불안해하고 있어.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가'라는 행정체재가 있는 있는 한, ’ 공무원‘이란 직업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농경사회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직업이지. 이것만 해도 큰 매력이지 않니? 물론, 공무원 정원과 업무는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건 우리에게 ’ 안정감‘을 준단다. 또한, 평균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년도 연장될 테니 욕심내지 않고 이모와 이모부처럼 맞벌이하면 소박한 가정을 꾸리며 살 수도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동네 사람들과 함께 도시를 꾸미는 것도 참 보람 있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친구가 왜 힘든지도 모를 만큼 바쁜 세상이지만 공무원이란 직업은 이웃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해 준단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볼 수도 있고 신나고 멋진 행사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어. 나의 생각이 반영된 도시와 사회를 살아간다는 게 참 멋지지 않니?
이렇게 ’ 공무원‘의 좋은 점이 있지만. 이모는 지금은 지아를 말리고 싶어. 지아 말처럼 대학교를 꼭 입학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직업이 있단다. 엄마와 이모도 모르는 새롭고 멋진 직업들이 매우 많지!
지아가 나이가 들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나면 자신도 몰랐던 ’ 장래희망‘이 떠오를 수도 있고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싶을 수도 있어. 이것저것 다 해보고 그때 공무원 공부를 해도 늦지 않아. 남들보다 출발이 늦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나간 청춘에 대한 후회를 하진 않을 것 같아. 네가 스스로에게 미안한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아가 알고 있듯이 이모는 만 22세, 24살에 임용됐단다. 아무도 일찍 취직하라고 한 적 없었지만 20대 초반의 이모는 세상에 재밌는 게 없었어. 덕분에 일찍 시험에 합격했지만 그 덕분에 일한다고 대학교 4학년 생활을 누리지 못했단다. 어학연수도 가고 싶었고 세계일주도 해보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냥 직장인이 돼 있더라고. 심심한 대학생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더 재미없는 직장인, 공무원.
일찍 취직돼 감사한 것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후회되는 것들도 많단다. 어차피 평생 일해야 되는 직장이야. 초, 중, 고 12년을 '학교'라는 곳에서 답답하게 있어야 됐던 네 영혼에 조금은 숨 쉴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
자신의 꿈이 뭔지도 체 알기 전에 수능, 대학입시라는 형식에 지레 겁먹고 도망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 어떤 직업이든 도피처가 되면 안 돼. 공부와 달리 직업, 일은 꼭 잘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거든. 책임질 게 더 많고 도망갈 곳이 없는 곳이야.
이모가 말하고 싶은 건, 지아가 꿈꿀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꼭 대학교를 가지 않아도 좋아. 어떤 것이든 지아가 원하는 것, 넓은 세상을 본 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해도 늦지 않아. 하지만 이모나 엄마가 말해도 네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 수도 있겠지?
그래서 이모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주려고 해.
꽤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할 게 없어서 되고 싶어 하는 것, 네가 지금 도망치고 싶어 하는 곳, '공무원'
지아야, 지금부터 시작될 이모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겠니?
평범한 사람들의 시작점, '말단 공무원 9급'의 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