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줄 때 비로소 자신의 명예가 높아진다고
느낄 수 있는지가 내게는 늘 수수께끼였습니다.
-마하트마 간디-
지아야, 안녕?
우리에게 익숙한 '간디'의 말씀 중 이모가 좋아하는 명언이야. 그냥 어쩌다 눈에 들어온 글귀!
간디가 이 말을 언제, 어느 장소에서, 무엇을 위해 했는지 등 중요한 것은 전혀 모른 체 그냥 눈에 들어와 혼자만의 해석대로 좋아하게 된 명언이야. '굴욕'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갔단다. 남에게 굴욕을 행하는 사람, 권력, 갑질...
굴욕 : 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
갑질 :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
<출처:네이버 어학사전>
굴욕과 갑질! 사람이나 집단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누는 단어지.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지배를 하는 자와 당하는 자! 이분법 사고방식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딱 두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매몰찬 단어 같아.
특히나, '갑질'은 이모 같은 공무원들을 왠지 억울하게 만드는 단어야. 공무원들이 갑질을 행한다는 오해를 많이 받거든.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모처럼 말단 공무원이라면 이권이 개입된 업무를 담당할 경우는 거의 없어. 고급 정보, 휘두를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오해를 받는 걸까?
그래서 오늘은, '굴욕'이 왜 이모 마음속에 와닿았는지, '갑질'이란 단어에 괜스레 왜 억울함을 느꼈는지 얘기해 볼게.
공무원도 직장이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연결돼 있단다. 조직적으로 보면 중앙부처, 광역자치단체, 기초지방자치단체, 공기업들이 있어. 내부적으로는 1급부터 9급까지의 직급을 기반 한 몇 안 되는 후배와 아주 많은 선임과 연결돼 있지. 외부적으로는 관할 지자체의 시민, 민원, 법인, 사회단체, 거래업체 등 다양한 접점에 연결돼 있단다.
직장생활은 친목도모가 그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에게 필요한 혜택을 주고받는단다. 어떻게 보면 '갑을'관계가 당연한 곳이야. 더 많이 줄 수 있는 쪽이 갑이 되지. 일반적으로 업무처리를 위해 꼭 필요한 만큼의 권한을 행세하는 사람에게 '갑질'한다고 하진 않아. 다양한 의견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소수의견을 무시하는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거나 환경을 통제해야 되거든.
그런데 업무처리를 위해 필요한 권한을 훨씬 뛰어넘어서 과도하게 행사하거나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하게 되면 '갑질'이라는 말이 나오지. 오늘 이모가 얘기하려는 '갑질'의 의미도 그 정도란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아주 조금 더 침범당한 것들! 뉴스에 나오는 권력과 재력은 지녔지만 인성이 부족한 고위층이 행할 수 있는 어마 무시한 갑질이 아닌 그저 아래라서 느끼는 사소한 서운함 들이란다.
1.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것들이! 동장 어딨어!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지금 큰 실수하는 거라고! 직원 교육을 이따위로 시켜놓은 책임자 어딨어? 빨리 나오라고 해!"
공무원뿐만 아니라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을 힘들게 하는 말이야.
우리나라는 유독, '친절'의 의미를 굉장히 확대 해석하는 것 같아.
친절 :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 <출처:네이버 어학사전>
사전에도 분명히 나와있듯이 친절은 정겹게 대하는 태도란다. 법적으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아니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법적으로 안된다는 것을 안내한 것을 '불친절'로 오인한단다. 꽤 많이! '불친절 공무원'으로 접수된 민원의 요청사항 대부분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해 달라는 것이야. 정겹지 않게 대해도 안 되는 것을 되게끔 해 주면 '친절'하고 '융통성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모는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것들이! 동장 어딨어!'라고 고함치며 물건을 던지고 부스는 분들께 이렇게 답하고 싶었단다.
"선생님 혹시 저는 누군지 아시나요? 저는 선생님들이 내신 귀한 세금이 잘 쓰이도록 법대로 집행해야 되는 공무원입니다! 누군가 선생님이 낸 소중한 세금을 개인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되잖아요!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만 추구하지 않고 모두 합리적으로 살 수 있기 위해 만든 법을 그대로 잘 집행해야 되는 공무원이랍니다."라고...
의미가 왜곡된 친절을 강요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해당 공무원에게 '불친절'과 '갑질'의 누명을 씌워 굴욕감을 안길 때가 많단다. 그래서 이모가 '굴욕'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힌 것 같아. 간혹, 안 되는 것을 되도록 하기 위해 엄청나게 큰 소동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거든. 힘들게 버티고 나면 '갑질'과 '불친절'이라는 오명이 남으니 외로워지고... 힘들 때가 많단다.
2. 거기는 예산이 풍족한가 봐요? 보조금 필요 없으세요?
지방자치법
제123조(국가시책의 구현) ①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시책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지방재정법
제3조(지방재정 운용의 기본원칙) ①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그 재정을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여야 하며, 국가의 정책에 반하거나 국가 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내일 해당 사업 설명 좀 듣고 싶은데, 오전에 볼 수 있지요?"
"죄송한데, 그다음 날로 날짜 조정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미리 예정된 회의가 있어서요."
"거기는 예산이 풍족한가 봐요? 국고보조금 추가 지급 때문에 사업 추진상황을 들으려고 했는데... 그럼 다른 시도에 연락해 볼게요. 안 오셔도 됩니다. 대신 의원님들께는 00시에서 국비는 필요 없다고 했다고 보고하겠습니다."
"아, 잠깐만요! 내일 꼭 갈게요!!"
중앙부처로부터 걸려 온 뜬금없는 전화 한 통에 이모의 모든 업무 스케줄은 엉망이 된단다. 이모 때문에 수억에서 수천억에 이르는 국고보조금을 못 받게 된다면 큰 일이잖니! 타 업무는 모두 스톱!! 중앙부처 보고 용 사업 자료를 만들어야 되거든. 출장에 대한 보고서도 기안하고 기차표 예매를 해야 되지. 우리나라 가장 끝 남쪽 지방에서 세종시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단다. 하지만 밤을 새워서라도 당연히 가야 된단다! 실제로 예산편성 시즌이 되면 의원실, 중앙부처의 호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 국비 담당부서 직원들은 여의도와 세종시 근처에서 숙식을 한단다. 돈은 누구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잖니? 더군다나 재정여건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에게 국고보조금은 목숨과 같거든.
더구나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시책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되고 국가 정책에 반하거나 국가 재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게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지방자치법과 지방재정법에 규정돼 있어서 중앙정부의 지시를 거스를 수가 없단다.
그렇게 정신없이 세종시로 뛰어가 담당 사무관님을 면담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15분! 사업의 중요도에 따라 과장님 혹은 국장님도 모시고 갈 때가 있는데 쌀쌀맞은 태도와 짧은 면담시간에 담당자로서 민망할 때도 있었어. 바쁜 일정 쪼개서 함께 출장길에 오른 국장님이 이런 냉대(?)에도 별말씀이 없으신 건 가서 보니 거긴 이곳보다 훨씬 전쟁터거든. 정말 바쁘고 지친 사무관, 주무관들을 직접 보면 '갑자기 요구할 수밖에 없었구나' 이해가 되기도 해. 그쪽도 기재부에서 갑자기 예산을 배정받았거나 타 사업이 조정돼 어쩔 수 없이 긴급하게 추가 사업을 발굴해야 됐던 거지.
긴급한 일정 통보를 할 수밖에 없는 중앙부처의 사정이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갑자기 나의 모든 일정을 변경해야 된다는 건 어쨌든 스트레스받는 사항이니깐! 아무튼 같은 공무원들끼리도 이런 갑을(?) 관계가 있다는 것!
3. 무한 대기의 무한반복! 각종 의회 대응!
지방자치법
제39조(지방의회의 의결사항) ① 지방의회는 다음 사항을 의결한다.
1. 조례의 제정ㆍ개정 및 폐지 2. 예산의 심의ㆍ확정 3. 결산의 승인 4. 법령에 규정된 것을 제외
한 사용료ㆍ수수료ㆍ분담금ㆍ지방세 또는 가입금의 부과와 징수 5. 기금의 설치ㆍ운용 6. 대통령
령으로 정하는 중요 재산의 취득ㆍ처분 7.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시설의 설치ㆍ처분 8. 법령과
조례에 규정된 것을 제외한 예산 외의 의무부담이나 권리의 포기 9. 청원의 수리와 처리 10. 외국
지방자치단체와의 교류협력에 관한 사항 11. 그밖에 법령에 따라 그 권한에 속하는 사항
제40조(서류제출요구) ① 본회의나 위원회는 그 의결로 안건의 심의와 직접 관련된 서류의 제출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요구할 수 있다.
제41조(행정사무 감사권 및 조사권) ① 지방의회는 매년 1회 그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대하여 시ㆍ도에서는 14일의 범위에서, 시ㆍ군 및 자치구에서는 9일의 범위에서 감사를 실시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중 특정 사안에 관하여 본회의 의결로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조사하게 할 수 있다.
국민 또는 시민의 대표자로서의 지위를 가진 의원! 대표자로서 충실하게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결권과 권리가 보장된단다. 법안(조례안)을 발의할 수 있고 정부의 사무에 대하여 질의, 감사하고 예산을 심의하고 결정하지. 시민을 대표한다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기에 집행부에서도 의회 대응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끝도 없이 요구되는 여러 의원님들의 요구자료와 긴급한 자료 설명 요청에 성의껏 응해야 된단다. 본회의나 임시회가 개회되는 기간은 항상 의원님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되는데 보통 연 8~10회 회기가 운영되니 12개월 중 거의 다 해당된다고 보면 돼.
간혹, 질의 목록, 자료제출 요구목록을 받기 위해 밤을 새워야 되는 경우도 있어. 분명히 주신다고 하셨는데... 의원님 쪽에서 연락이 없어도 감히 먼저 요구할 수 없기에 무조건 기다려야 되지. 특히 예산안 심의를 위한 각 상임위,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24시를 넘어까지 지속되면 간부 공무원, 서브하는 공무원, 사무실에서 유선으로 지원하는 하급직 공무원까지 줄줄이 그날은 다 같이 철야를 한단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 아주 잠시, 사랑하는 가족의 체온만 느끼고 옷만 갈아 입고 (다음날이 아닌) 그날 바로 출근해야 돼. 전날 의원님들이 지적한 사항에 대한 답변자료를 국장님께서 출근하기 전에 완성 해 놔야 되거든.
공무원이 시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깐, 그 시민의 대표인 의원들은 가장 큰 고객님(?) 중 하나라는 것! 그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것도 기억해 둬.
. 이 외에도 여러 단체들과의 관계, 진정한 갑을 관계인 상사와의 관계 등 여러 관계가 더 있지만 '갑질'을 하는 집단으로 오해받는 공무원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게. 실상을 알면 우리도 다른 월급쟁이와 마찬가지로 결코 '갑'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야. 갑을병정 중 가장 낮은 '정'이라고 우리끼리는 칭한단다.
이모가 오늘 이런 얘기를 한 건, '공무원들도 약자의 입장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보다 '갑질'한다고 오해받는 우리조차도 사실은 많은 이들 앞에서 말 못 하고 참아야 되는 서민의 한 사람이라는 거야. 생계형 직장인의 서러움을 똑같이 간직하고 있단다. 오히려 외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눈물 한 방울 정도의 서러움이 보태지는 것 같아. 집행부 공무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수록 서러움이 추가되는 사회 분위기거든
그렇다고 진정한 '갑'이 되고 싶지도 않아. 어차피 평생 노력의 끝이 누군가의 시작이 되는, 갑이 될 수 없는 말단 공무원이기도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굴욕감을 준다는 게 싫고 무섭단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익숙함'이야. 서서히 권력의 폭력에 무뎌지는 것!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돼, 바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될까 봐 걱정이 돼.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겠지?
이모가 사랑하는 지아가 훗날 정말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잖니? 우리 둥이도 그럴 수 있고. 너희들만은 평등하고,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담백한 관계 속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랄게!
참, 지아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면서?
"엄마, 이모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은데 왜 이모는 공무원을 그만두지 않는 거야?"라고...
이모가 그동안 공무원의 힘든 점만 말한 것 같네. 다음부터는 그래도 '공무원이 왜 좋은지!'에 대해서 말해줄게.
그럼, 잘 자렴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