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야, 예쁜 꽃들로 가득한 꽃길을 상상해 볼래?
예쁘다고 소문이 난 꽃길에 꼭 가보고 싶었던 지아는 여기저기에 꽃길로 가는 길을 물으며 어렵게 도착했지. 그런데 꽃길로 들어서려는 그 순간! 가운데로 난 꽃길은 그대로인데 주변의 땅이 아래로 꺼지는 거야. 그리고 입구는 사라지고 출구만 남아있지. 조금 전과 변한 것은 많지 않아. 꽃 길에 나있는 꽃도 그대로이고 길의 폭도 그대로인데 주변만 한 없이 꺼지는 거지.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착각! 한 발짝도 뗼 수 없는 무서움! 그렇다고 그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막막함! 생각해보면 '나의 길'은 바뀐 게 없으니 그대로 가면 되는데 무서움과 두려움에 온 몸이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는단다. 손에 들고 있던 꽃길 안내 지도마저 의심되지.
이모가 공무원으로 임용된 첫날! 저런 느낌이 들었단다.
일하러 온 건데 하루 종일 욕만 듣고,
월급이 적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정시에 퇴근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지시사항이 시달(상부에서 하부로 명령이나 통지 따위가 문서로 전달되는 것) 돼 야근해야 되고,
비가 온다고, 눈이 내린다고, 산불과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시도 때도 없이 걸리는 비상!
가족들과 즐거운 여름휴가를 가고 싶은데 하필 그때, 을지훈련을 해 휴가를 쓸 수 없었지.(을지훈련기간에는 연가를 사용할 수 없단다. 최근에는 봄, 초여름에 하기도 하지.)
이모가 임용되기 전에 공무원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단다. '사람들이 직장에 대해 바라는 이상향'일 뿐이었지. '적당히 일하고 돈 벌 수 있는 직업! 워라밸이 가능한 직장!'이라는 꿈 말이야.
매일 노는 것 같은데 공부도 잘하는 친구!
값은 저렴한데 품질도 매우 좋은 물건!
2인분 값을 치렀지만 3인분 음식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
이것들처럼 애초부터 말이 안 됐던 것들, 비현실적인 얘기였는데... 왜 학생 때는 몰랐던 것일까?
공무원뿐만 아니라, 대부분 직업이 이렇단다. 엄청난 축하와 부러움을 받으며 대기업에 입사하고, 고시를 패스하고, 의사 선생님이 된다고 해도 그 직업만이 가지는 애환이 있단다. 아이돌 스타도, 영화배우도 마찬가지일 거야. 멋지게 보이고 화려한 만큼 높다는 뜻일 테니 그 그림자도 역시 더 길지 않을까?
지구인이 달의 한쪽면만 볼 수 있듯, 우리도 직업의 화려한 면만 볼 수 있단다! 우주 속에 뛰어든 우주 비행사만 달의 나머지 한 면을 볼 수 있듯이 그 직업에 속한 사람들만 직업의 애환을 모두 알 수 있지.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수년간 이모는 '속았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사람에게 느끼는 흔한 실망감과 비슷하지. 예를 들면, '이럴 줄 몰랐는데, 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어?'처럼.
한참을 원망만 하던 이모는 원망할 대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누가 나를 속인 게 아니라 혼자 그냥 착각에 빠진 거였지. 그저 이모의 선택이었을 뿐이야.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그만두지 않고 16년간 다닌 것도 이모가 선택한 거지. 원망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이 이모를 허무하게 만들었단다.
이모가 어렵게 도달한, 허무함의 밑바닥에는 나와 내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깨달음이 있었어. 가장 힘든 순간, 이모는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의지!'를 느꼈어.
'강해져야 된다!, 내 인생과 둥이는 내가 책임져야 된다!'라는 생각으로 이모의 직업을 다시 한번 생각해봤어. 월급 만으로 일하기엔 너무... 일하는 보람이 느껴지지 않았거든. 아무런 생각 없이 16년을 일했고, 9급에서 6급까지 올라왔지만 앞으로 남은 20년은 보람을 느끼며 근무하고 싶었거든.
고민 끝에 이모가 얻은 결론은 '공무원은 엄마다!'였어.
사람들은 간혹 일이 안 풀리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잖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엄마는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내 옆에 있어준다는 것을 아니깐! 그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봤어. 사회에서 힘들 때 마지막으로 응석 부릴 수 있는 곳! 엄마처럼 받아주는 사람들. 못난 자식이 밉기도 하지만 끝까지 내칠 수 없는 엄마! 못난 자식에게 더 마음이 쓰이듯 지원이 더 필요한 사회적 약자에게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하느님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귀한 사람을 다 돌봐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든 것처럼 공무원도 그런 거 같아. 나와 비슷한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사람들끼리 잘 지내도록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
집안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살림을 살고, 가족의 건강을 챙기고, 마음을 어루만지고, 가계를 돌보느라 항상 바쁘지만 가시적 성과가 눈에 잘 띄지 않아 종종 묻혀 버리는 엄마들의 수고와 사랑! 엄마는 아빠가 안 계시면 아빠 역할까지 해야 되고 친정과 시댁 사이를 오가며 징검다리 역할도 해야 되지. 집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 가정, 내 아이를 끝까지 챙길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단 한 사람, 엄마!
그런 엄마의 역할을 사회에서 하는 것이 '공무원'이란다. 그러니 눈에 띄지 않더라도, 당장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사회에서 얻은 슬픔과 분노를 우리에게 풀고 가더라도 엄마들이 그렇듯 우리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해. 그게 우리의 역할이란다.
그래서 이모는 앞으로 계속 공무원으로 남아 있으려고 해.
하나뿐인 둥이에게 정성을 듬뿍 쏟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둥이가 살게 될 앞으로의 세상이 조금이라도 낳아질 수 있도록 열심히 일 해 보려고 해. 지아랑 둥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고, 즐겁게 꿈을 펼치며 살 수 있도록 힘을 내 보려고 해. 공무원의 고리타분한, 층층시하인 계층적 구조,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싫고 힘들고 답답하다고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해봤는데, 이건 이런 문제점이 있더라'라고 말해 줄 누군가는 있어야 되잖니?
예쁘게 잘 꾸며진, 공원에 조성된 꽃밭도 좋지만 내가 직접 심고 가꾼 꽃밭도 보람 있고 의미 있단다. 내 땀과 시간이 투입된 만큼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지지. 지아와 둥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이모가 꽃밭을 열심히 가꾸고 있을게. 지아와 둥이가 예쁘고 편안하게 꽃밭에서 휴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모의 꽃밭보다 더 예쁜 꽃밭을 가꿀 수 있도록... 하지만 지아가 이모의 꽃밭이 아닌, 더 크고 넓은 정원으로 가기를 바란단다. 이모는 항상 이 작은 꽃밭을 가꾸고 있을 테지만 지아는 자유로운 꿈을 꾸며 이곳저곳을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기를 바란단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지아 네가 다시 큰 꿈을 꾸기를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