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참아야 하는 아픔

by 이서진

오랜만의 휴가였다.

연말까지 쉬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특별휴가가 하루 남았다는 핑계로 출근하지 않았다.

회사에 그렇게까지 충성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졀대로!


몇 주 전부터 오늘을 준비했다. 종합병원과 개인병원 4개 과에 진료 예약을 했다. 교수님들 외래진료 시간은 제각각이라 하루 안에 예약을 맞추기 위해 공을 들여야 됐다. 똑같은 병원을 오전 9시에 한번, 오후 4시에 가야 됐지만 휴가를 더 쓰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오전에 두개 과 진료를 봤다. 류머티즘 내과와 알레르기 내과.

"어떻게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가 안부를 물어주는 것 같았다. 의사의 첫 인사는 괜히 슬프다.

엉엉 울며 하소연을 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통증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대답했다.


복용 중인 약이 이미 독한 것이라며 더 세게 지어질 수 없다는 류머티즘 내과의 교수님.

천성적으로 호흡기가 약하고 추운 날씨 탓에 어쩔 수 없다는 알레르기 내과 교수님.


네, 네. 아픈 것은 나의 몫이니까요...


친한 언니와 점심을 먹었다. 출발 후 결승점이 정해진 달리기 선수들처럼 한 시간 안에 몇 개월치 밀린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었다. 뒤죽박죽 섞여 귀와 입으로 들어갔다. 맛있다기보다 바빴고 반가웠지만 바빴다.


다시 시작된 오후 진료!


오후에 간 곳은 심장내과와 신경정신과였다.


심장 상태가 이 정도로 보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고 했다. 내 심장과 나이가 맞지 않는 것을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곧 포기했다. 약하게 태어났고 천식도 있어서 심장이 힘들어 통증이 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똑같은 말이 반복됐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신경정신과.

하루종일 병원투어를 하느라 대기실에서 살짝 잠이 들었다. 기다리는 환자들도 많이 없는데 소파에 누워버릴까? 하던 차에 호명됐다. 비몽사몽 멍한 내 눈 빛을 본 선생님은 지난번과 똑같은 약을 처방해 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5시 30분!

9시 전에 나갔다가 6시가 다 돼 들어오다니... 분명히 난 오늘 회사를 쉬었는데, 출퇴근한 것과 똑같은 피로가 몰려왔다.


하루종일 열심히 병원 투어를 하고 남은 것은 수북한 약봉지들과 예약 확인증.

약이 저렇게나 많은데,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약들을 매일 먹는데도 왜 난 낳아지지 않는 것일까?


어쩔 수 없다며 참으라는 의사 선생님들. 여기저기 진료과에서 약을 더 세게 쓰지 못할 정도로 아픈데... 한계점을 넘는 통증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참아야 되는 나의 질병들이 참 버겁다. 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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