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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Feb 10. 2024

울부짖음

우리 부부는 '소리'를 대하는 태도가 참 많이 다릅니다. 


남편은 '소리'를 좋아합니다.

 - 사람들의 웅성거림

 - 도시의 북적거림

 - 보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켜놓는 유튜브 쇼츠

 - 아무리 늦은 밤 귀가해도 스피커로 20분 정도 들어야 되는 클래식 음악 등


남편의 '소리'는 조용함을 좋아하는 제 머릿속을 휘젓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남편과 함께 음악을 듣다가, 주방으로 옮겨 멀찌감치 음악을 들으며 집안일을 하고, 노이즈 기능이 있는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다가, 결국은 방에 들어갑니다.  

'소리'는 결국 우리 부부를 갈라놓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저를 동시에 집중시키는 소리가 있습니다. 

바로 둥이의 울부짖음입니다.


이 글이 실린 브런치북의 제목은 <지체장애 엄마 지적장애 아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둥이를 키우는 데 있어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제 지체장애가 아닙니다. 바로 저의 우울증이죠. 


둥이도 아니, 둥이는 참 많이 답답하고 힘들어합니다.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소통이 어려워 친구 주변을 겉돌고, 선생님이 시키시는 숙제를 다 하고 엄마가 정해 준 학원을 착실하게 다니는데도 여전히 공부는 어렵기만 합니다.

그런 둥이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믿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건 당연하겠죠. 

제 자신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억울함, 속상함, 좌절감이 어린 둥이에게 얼마나 버겁게 느껴질까요.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어면서 '난 안돼, 안돼!'라고 말하며 울부짖거나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는 둥이. 가급적 차분하게 받아주고 공감해 주려고 노력하지만 문제는 저 역시 우울증 환자라는 것입니다. 


온갖 약 때문에 쓰러질 듯 잠이 오고 섬유근유통이 시작 돼 온몸이 따가운 순간과 둥이의 분노가 부딪히면 집 안은 온통 울부짖음으로 가득합니다. 머리를 책상에 박으며 짐승처럼 소리를 내는 둥이의 행동이 제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리면 저 역시 이성을 놓게 됩니다. 

각자의 울분을 토해내느라 애쓰는 둥이와 나.


그리고 제가 정말로 속상한 것은 이후부터입니다. 

울고 있는 제 모습을 본 둥이는 당황하며 제게 옵니다.

  "엄마,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미안해요."를 끝도 없이 반복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미안하다는 건지. 착하고 예쁜 제 아들을 저렇게 빌게끔 만든 사람이 결국 저라는 사실을 깨닫고 저는 또 한참 웁니다. 둥이에게 오늘도 한없이 미안한 엄마가 됐습니다.


한참을 울부짖던 우리 모자, 지친 채 서로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둥이는 또 제게 사과합니다.

  "엄마, 미안해요."

  "둥아,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그냥 전부 다. 엄마가 우니까."

  "둥아, 엄마가 소리쳐서 너무 미안해. 둥이가 머리를 책상에 쿵쿵 박으며 우니까 엄마 마음이 너무 아팠어. 그런데 엄마가 우는 것은 둥이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한 번씩 온몸이 따끔거린다고 말했지? 그 약을 먹으면 너무 잠이 오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거든. 그리고 갑자기 울고 싶을 때도 있고. 엄마가 운 건 둥이 때문이 아니야 절대로. 그리고 친구들이랑 싸웠을 때도 둥이가 정말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만 사과하면 돼. 슬프거나 잘못된 모든 일이 둥이 탓이 아니야. 화내서 정말 미안해."


몇 년 전, 저는  열정이 가득하고 일 욕심이 많았던 과장님께 가스라이팅을 당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가스라이팅'이란 단어와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과장님의 짜증과 화를 그냥 참아야 됐습니다. 집에서 울고 회사에선 욕받이로 살던 1년. 

 '왜 나를, 나만 괴롭혔을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지금에서야 저는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과에 다른 직원이 많았음에도 유독 제가 가스라이팅 당했던 이유는 제가 가장 마음이 약했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향하는 '물'처럼 화(火)와 분노(憤怒)는 약한 사람한테로 흐른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약하고 어린 둥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 제가 그때의 과장님과 다르지 않다는 끔찍한 사실도 말이죠.

둥이와 하루종일 함께 있는 것이 어쩌면 둥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이런저런 감정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저는 복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복직은 둥이를 다시 힘들게 합니다. 분명히 제가 일하는 것을 좋아했던 둥이었는데, 회사 그만두면 안 되냐며, 제 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고 친구들과 놀지도 않는 둥이를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남편은 둥이와 아직 다 낳지 않은 저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웃음소리, 남편이 듣는 음악소리,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

2024년엔 듣기 좋은 소리가 우리 집을 가득 채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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