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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Jan 26. 2024

내가 들었던, 우리 애가 듣게 될 말들

(보호자 1) 저희 의견은 하나예요. 아픈 사람한테 아픈 가족을 맞길 순 없다.
(보호자 2) 정다은 선생님이 직접 말씀해 보세요. 우울증으로 하얀 병원 보호 병동에 입원했었죠?
(정다은 간호사) 네 맞습니다.
(보호자 2) 다 나으셨어요?
(정다은 간호사) 아니요, 퇴원 후에도 약은 꾸준히 복용하고 있습니다.
(보호자 2) 아, 거 봐요. 그러니까 우울증이라는 게 언제 재발할지도 모를 일이고 자칫하다가 환자들한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아픈 분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거 자체가 좀 욕심인 거 같은데요.
(수간호사) 간호부 대표로서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병희 어머님. 아픈 사람이 사회생활 한다는 거 자체가 욕심인 거 같다고요?
(보호자 2) 네.
(수간호사) 그럼 병희 님도 평생 집에서만 숨어 살아야겠네요.
(보호자 2) 아니, 무슨 말씀 하시......
(수간호사) 성식님도 평생 회사는 못 다니시겠고요. 다른 환자분들 모두 평생 사회생활은 못 하고 집 안에서만 계셔야겠네요. 그렇죠?  왜요? 내 가족한테 이런 말 하니까 마음이 아프세요? 가슴이 찢어지세요? 근데 방금 보호자님께서 하신 말씀 모두 환자분들이 병원에서 나가면 들어야 되는 얘기들입니다.
'아픈 사람을 왜 회사를 다니게 해?, 그러다가 중요한 일 망가지면 어떻게 하려고, 아픈 애들을 왜 학교를 다니게 해? 일반 학교를. 다 그거 부모 욕심 아니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끼리는 그런 말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겪어 보셨잖아요. '왜 하필 우리 애가. 왜 하필 우리 가족이, 왜 하필 내가.' 정신병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이요. 본인들만 안 아플 거라고 장담하지 마세요.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제11화 -
우울증이라는 게 언제 재발할지도 모를 일이고 자칫하다가 환자들한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아픈 분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거 자체가 좀 욕심인 거 같은데요.
아픈 사람을 왜 회사를 다니게 해?, 그러다가 중요한 일 망가지면 어떻게 하려고, 아픈 애들을 왜 학교를 다니게 해? 일반 학교를. 다 그거 부모 욕심 아니야?

내가, 나의 엄마가 들었던 말들, 그리고 어쩌면 아들 둥이가 어디선가 듣게 될 말들. 

불현듯 떠오르는 원망과 의문, '왜 하필 내가, 하필 우리 애까지. 하필 우리 가족이.'

답이 없는 질문.


열흘 후, 저는 다시 회사로 복직을 합니다. 

'우울증'이라는 사유로 질병휴직을 허락해 준 회사에 무척 감사하지만 직원들의 걱정과 의심까지 잠재워주는 것은 아니기에 복직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의사나 간호사처럼 누군가의 '생명'을 다루는 업무는 아니지만, '수간호사'의 말씀처럼 누군가는 제가 '중요한 일을 망치진 않을까' 걱정을 할 테고 저는 그 걱정을 무마시키기 위해 능력 이상으로 열심히 하려고 애쓰겠지요. 그러다 힘에 부치면 '뭐, 어쩌라고.'라는 태도로 돌변할 수도 있겠죠.


뒤늦게 복직예고 공문을 본 후 제가 휴직했다는 사진을 이제야 알게 된 직원들이 제게 묻습니다.

  "휴직한 것도 몰랐네. 휴직 사유를 물어봐도 다들 쉬쉬하고...... 왜 쉰 거야?"

잠시 고민하던 전 정다은 간호사처럼 용기를 냅니다.

  "섬유근육통과 세로토닌 결핍에 따른 우울증상으로 쉬었어요."라고. 

당황은 상대방의 몫. 저는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어느덧, 5학년을 앞둔 둥이는 제법 남학생 티가 납니다.

더하기, 빼기 조차 헷갈려하고

분수를 배우면 곱하기, 나누기를 어려워하고

소수를 배우면 분수를 까맣게 잊던 둥이.


둥이 자신의 노력과 제겐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보다 더 감사한 학교 선생님과 공부방 선생님 덕분에

어느덧, 5학년 수학에 나오는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 통분이란 단어를 말하네요.

하지만 들어본 단어를 말하는 것뿐, 이것저것 섞여 뒤죽박죽 된 머리를 쥐어뜯으며

'해도 왜 안 되냐'는 울분을 토하기도 합니다.

'엄마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데 왜 안 되는 거지?'라는 둥이의 질문이 잦아지는 추운 겨울.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며 외출 전마다 30분씩, 하루에도 몇 번씩 씻는 둥이.

비누, 핸드워시, 엄마의 폼클렌저로 세 번이나 세수를 하고

비슷하게 비누, 샴푸, 바디워시로 세 번씩 머리를 감고서야 샤워를 마칩니다.

'남자는 로션 바르는 게 아니야.'라는 똥고집 때문에 하얗게 튼 둥이의 얼굴과 몸. 

저는 둥이가 잠에 든 후에야 조심스럽게 로션을 얼굴과 몸에 바릅니다. 


어릴 때부터 놀던 친구들과 저녁마다 놀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친구에게 전화기를 건네는 둥이. 

착한 둥이의 친구는 '아줌마, 그게 아니고요.'로 시작해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제게 설명해 줍니다.

  

 '오빠는 왜 설명을 잘 못 해?, 형이 자꾸 오해해요, 아줌마 둥이가 자꾸 우겨요.'로 시작되는 동네 꼬마들의 답답함을 덜어주고자 둥이에게 차분히 말하는 연습을 시키고, 집에 아이들을 초대해 간식과 식사를 대접(?)하지만 곧 다시 오해가 시작되고, 둥이는 친구들과 놀던 자리를 혼자 조용히 떠납니다. 


남들로부터 딱히 좋은 말을 듣고 살지 못할 것 같은 둥이와 저를 위해 

김종원 작가님의

'매일 아침을 여는 1분의 기적'을 샀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말, 위로의 말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하루에 한 페이지씩. 

둥이는 제게, 저는 둥이에게 서로에게 용기와 사랑을 주는 말을 건넵니다.

삶의 태도, 열정의 향기, 실패를 대하는 마음 등은 아직 둥이에겐 어려운 의미지요.

하지만 둥이는 엄마와 얼굴을 마주 보며, 엄마 품에 안겨서, 

때론 포근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서로를 꼭 안은 체 글을 읽는 시간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하필 저를 닮아 애틋한 아들 둥이에게 저는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듣게 될 험한 말이 아닌,

예쁘고 사랑스러운 말들만 전해주고 싶습니다.

함께 읽은 예쁜 글과 사랑스러운 말들이 둥이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어,  

제가 들었던, 둥이가 언젠가는 듣게 될 날카로운 말로부터 둥이를 지켜줄 수 있는 

푹신푹신한 방패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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