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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Jan 09. 2024

몰입경험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푸른 용의 해라고 합니다. 

우리 둥이는 임진년에 태어났지만, 어쨌든 '용'의 해에 태어났으니 

용의 기운을 받아 활기차게 꿈을 펼쳐나가길 바랍니다.


지난주, 의사 선생님께서는 둥이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면 둥이의 지능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몰입을 경험한 아이는 집중력 및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말이죠.


저는 둥이에게 뭐가 좋을지 고민하다가 건담 프라모델을 샀습니다. 

작년부터 둥이는 레고보다 건담을 더 좋아하게 됐는데 3시간 정도를 꼼짝하지 않고 완성시킨 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둥이가 만들던 것보다 조금 어려운, 사용연령이 15세 이상인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둥이는 건담이 그려진 박스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웃습니다.

하지만 곧, 전보다 두꺼워진 설명서와 훨씬 많아진 부품을 보자마자 짜증이 섞인 화를 냈습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을 샀냐는 것이었죠. 

설명서를 보고 차근차근하는 방법은 똑같다고 아무리 설명해 줘도 둥이는 계속 화만 냈습니다. 

로봇의 생명은 얼굴인데 발부터 만들어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말이죠.


결국 남편이 투입됐습니다. 남편은,

  "둥아, 그럼 아빠가 조립한다."라고 말하며 부품을 쫙 펼쳐두곤 하나씩 조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래까지 부르며 말이죠. 

얼마 후, 남편이 뉴건담의 왼발을 완성하자 둥이는 그제야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슬그머니 아빠 옆에 앉아서 한참을 보더니 부품을 찾아주겠다며 나섭니다.

  "둥아, L1 판에서 19번 부품 줄래?"라고 아빠가 말하면, 둥이는 부품을 찾아서 얼른 아빠에게 건네줍니다.

 부품을 찾아주고 아빠가 조립하는 것을 본 둥이가 용기를 내 말합니다.

  "아빠, 오른발 내가 완성하고 나머지도 내가 만들어도 돼?"

그제야 둥이는 건담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둥이가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른발, 허리와 가슴까지 완성하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건담 만들기에 몰입 중인 둥이

둥이는 허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둥아, 전에 거랑 다르게 부품이 많잖아. 며칠 동안 천천히 만들어도 돼. 내일 다시 만들까?"라는 엄마의 걱정이 둥이 귀엔 들리지 않나 봅니다. 무조건 오늘 다 완성하겠다고 하네요.


결국 오후 4시에 시작한 만들기는 저녁 10시가 돼서야 끝났습니다. 

저녁시간 40분을 제외하더라도 5시간을 넘게 둥이는 건담에 몰입했습니다.

둥이가 만든 뉴건담

자신이 만든 건담을 보며 굉장히 뿌듯해하는 둥이를 보는 저희 부부는 행복했습니다.


늦은 밤, 저는 침대에 엎드린 둥이 허리를 주물러줍니다.

  "둥아, 오늘 건담 만든 거 어땠어?"

  "재밌었어. 엄마, 다음에 또 같이 해보자."

  "응. 엄마도 둥이가 만든 건담이 참 멋지더라. 그런데 엄만 우리 둥이가 다섯 시간이 넘도록 하나에 집중했다는 게 더 멋졌어."

  "나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어. 진짜 오래 했다. 나 대단하지?"

둥이는 건담을 갖고 즐겁게 놀다가 잠이 듭니다. 

아기도 아닌 다 큰 어린이지만, 둥이가 잠든 모습이 여전히 제 눈엔 천사처럼 보입니다.


비록 공부가 아닌, 장난감 만들기에 몰입한 거지만 언젠가 둥이가 무엇인가를 할 때,

오랫동안 집중했던 오늘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갖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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