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의 고민-아들의 지적장애인 등록-을 드디어 끝냈다.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앞으로 좋아질 수 있는데, 괜히 아이에게 '장애'라는 주홍글씨를 남기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엄마의 정보력 부족과 굼뜬 행동으로 '사회보장'이란 안전한 제도권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뺏는 것은 아닐까?라는.
나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아이에게 조금 더 이로운 판단을 해야 된다는 의무감.
결국 며칠 전 나는 병원과 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가 입에 더 붙지만;)를 왔다 갔다 하며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다. 그 동사무소는 내가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처음으로 근무했던 곳이었다. 20년 전보다 조금 깨끗해졌지만 사무실의 구조는 그대로였다. 민원대의 배치, 동장실, 문서고 위치 등. 변한 것은 나의 위치였다.
공무원으로서 민원인을 바라보던 나는 20년 만에 사회복지 민원인이 돼 있었다. 그것도 아들의 장애인 등록이라는 목적을 갖고서. 내 인생계획에 전혀 없던 일. 기분이 묘하고 쓸쓸했다.
장애인 등록 신청을 해도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등급 심사를 통과하는 게 어렵다고 하니.
단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심사결과가 나오기까지 60일쯤 걸린다고 분명히 안내받았는데도 동사무소를 나서면서부터 내 머릿속엔 온통 검사 결과에 대한 궁금증뿐이었다.
장애심사가 통과된다면? 그러면 정말 지적장애인이 되는 건가. 정규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 공부를 안 하면 지능이 더 나빠질 텐데, 학습은 어디까지 시켜야 될까?
만약. 장애심사 통과가 안된다면? 지능은 충분히(?) 낮지만 사회성숙도 점수가 높아서 안될 것 같은데.
하지만 몇 년 전, 지적장애 판정의 주된 고려 요소는 지능지수이고 일반능력 지표나 사회성숙도 검사 등은 이를 보완하는 참조 자료 역할을 뿐이라며 지능검사 결과 중 일부 항목에서 높은 점수가 나왔다는 이유로 장애인 등록을 거부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있었으니 통과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나는 장애인 등록 심사가 통과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이란 결국, 아들을 지적장애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구나.
다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둥이 장애인 등록 신청했어. 접수가... 되더라고."
"고생했어. 네 마음이 그렇겠네. 집에 가서 얼른 쉬어."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시작되려는 '잡념'과 '걱정'을 억누르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봄방학 동안 둥이는 5학년 수학을 선행학습 중이다.
공부방 선생님이 아무리 설명해 줘도, 나와 남편이 교대로 숙제를 도와줘도 둥이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동시에 활용해야 되는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 통분과 약분 문제는 둥이에겐 너무 어려운가 보다. 둥이는 결국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고, 울면서 머리를 주먹으로 친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교과과정 학습이 둥이에게 무리라는 게 느껴진다.
아픈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듯 우리 부부도 둥이에게 학교 성적을 기대하진 않는다.
언감생심, 감히 그런 것까지 바랄까. 그저 무사히 학교를 다닌다면-학교폭력, 왕따를 당하지 않고- 족하다.
다만 수업시간 동안 멀뚱히, 자존감을 떨어뜨려가며 앉아있을 둥이가 너무 안쓰러울 뿐이다.
그리고 장애인 등록이 반려되면 경계성 지능 아이로 살아야 될 텐데 학교 폭력과 왕따의 대상이 된다고 하니 그 부분이 걱정될 뿐이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른다. 내가, 우리 가족이 울고 있는 중에도 시간이 흘러 벌써 3월이다. 다행이다.
곧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올 테니까. 지난겨울은 너무 어둡고 추웠다.
어젯밤, 잠든 둥이를 바라보며 남편과 나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둥이에게 든든한 부모가 돼야 한다고, 힘들어도 우리 꼭 그렇게 되자고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을 함께 사랑해 주는 남편이 있다는 게 든든했다.
장애인 등록 신청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고 걱정되지만 결과에 맞게
우리 가족은 다시 삶의 방향을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