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업’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요즘 내가 생각하는 ‘직업’은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한 정의 또는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예전 어떤 잡지에서 본인을 ‘인스타 그래머’라고 소개하는 걸 보고 너무 쿨하다고 생각했다. 불과 5년전만 해도 블로거, 유튜버라고 자기소개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건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이제는 자기소개란에 떳떳하게 적을 수 있는 직업이 되었다. ‘인스타 그래머’, ‘유튜버’, ‘블로거’ 등. 아 얼마나 멋진 시댄가!
몇몇 디자이너들은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을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하고 일부 포토그래퍼들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진짜 사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패드에 그린 것과 아이폰으로 찍은 것은 정통적인 도구가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엇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미디어로 자신을 설명했던 것처럼 곧 자신을 ‘아이패드 작가’, ‘아이폰 작가’라고 소개하는 시대가 곧 올 거라고 믿는다.
‘토이스토리’ 다큐를 보면 기존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은 2D를 고집했고 3D를 받아들이는 것에 굉장히 방어적이었다. 컴퓨터로 그리는 그림은 진짜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3D를 하고 싶었던 존 라세터는 월트 디즈니를 나와 조지 루카스와 함께 토이스토리를 만들었다. 기존의 전통(2D)을 버리고 신기술(3D)을 받아들이는 것에 미지근했던 월트 디즈니였음에도 결국 컴퓨터 그래픽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존 라세터 감독을 다시 월트 디즈니로 불렀다.
당시 3D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이 생길 줄 알았을까?
나는 나만의 기술을 수련하고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도구와 장비,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훨씬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분명 새로운 무기는 나의 내용물을 더욱더 세련되게 바꿔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해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장비는 실제로 나 자신을 레벨업 시켜주기도 하니까.
시대에 따라 ‘직업’은 수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생겨나기도 한다. 그래서 ‘직업적 이름’에 고집을 할 필요도 없으며 불안해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지금 나도 이 글을 아이폰으로 쓰고 있으니 ‘아이폰 작가’라고 소개해도 되겠지?
언제든지 도구나 장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사람, 그래서 그 껍데기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 ‘이야기’와 같은 내용물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 ‘아이패드 작가’라고 하기도, ‘마케터’라고 하기도, ‘인스타 그래머’라고도 소개할 수 있는 이승희가
되겠다.
"아이패드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원하는 것을 그대로 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는 이것에 열광했을 겁니다. 열광하지 않을 화가는 없을 것입니다. 아이폰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패드는 그것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 크기가 아이폰보다 여덟 배 더 커서 적당한 크기의 스케치북 같기 때문입니다. " 데이비드 호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