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도망꾼
F학점을 피해 도망쳤지만,
세상에 어디서나 난 F를 받았다.
대학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언제나 나였다.
남구로역 인력사무소.
시작도 못하고 패배를 맛본 일자리
새벽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일거리를 기다리는 곳.
친구들은 가끔 나가서 돈을 벌어온다던데,
나는 2-3번을 도전해도 매번 빈손이었다.
아마도 내 얼굴에 쓰여있었나 보다.
'이 친구, 일 안 할 것 같습니다'라고.
여의도 고등어 전문 구이집
직장인을 대상으로 점심 장사를 위주로 하는 음식점
점심시간 전쟁을 위해 11시부터 전열을 가다듬는 곳.
미션은 단순했다.
1. 11부터 밑반찬 세팅
2. 손님 입장 시 테이블에 뜨거운 밥그릇을 테이블에 올리는 것.
하지만 이게 웬걸, 밥그릇은 마치 용광로에서 꺼낸 쇳덩이 같았다.
결국 첫날 점심, 나는 직원들과 고등어를 먹으며 뜨거운 작별 인사를 했다.
청소 전문 업체
교회 장로님이신 사장님을 따라 간판도 닦고, 빵공장도 청소했다.
"젊은이, 잡초처럼 질기게 살아야 해..."라는 사장님의 철학 강의는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화답했다.
아마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장가를 들은 것이리라.
(많이 철없고 부족했음에도 사장님 덕분에 많은 일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서점
책을 찾고 포장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여기서도 나의 '느림의 미학'은 빛을 발했다.
똑같은 일을 하는 친구보다 항상 두 배는 늦었으니까.
휴학 1년, 수많은 F를 받으며 깨달은 것도 있지만
여전히 나는 도망자였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최후의 도피처,
그곳은 바로 군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