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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권총의 도망자

고독한 타자왕

by LOVE BUG

서울이라 하기엔 애매한 변두리의 야간 대학교.

그마저도 사실 내 실력으로는 너무나 과분했던 그곳에서, 나는 웃기게도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피우고 싶지만 주변에 생떼를 받아줄 어른도 안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너무도 어이가 없다.

뒤통수라도 때려놓았으면 정신을 차렸을까?



컴퓨터학과는 내 상상과 전혀 달랐다.

게임기로만 썼던 컴퓨터에서 이제는 C#이라는 낯선 언어를 배워야 했다.

타자 600타로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은 어느새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강의실 맨 뒷자리는 늘 내 자리였다. 섞이지 못하는 물과 기름처럼, 나는 그저 혼자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내가 이런 초라한 대학교 왔다고 스스로에게 실망했지만, 내 실력은 현실보다 무섭게 초라했다.


그러니 주변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낮아진 자존감과 부족한 실력에 섣불리 다가설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상상 속의 나와 현실 속의 나의 괴리감이 커져갈수록 점점 학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괜히 TV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뒤척이다 지각하고,

어떤 날은 아예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와 달리 그 누구도 나의 출석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학교를 빠진 날은 큰 죄책감에 빠져, 내일부터는 학교에서 열심히 하리라 다짐하지만 상상 속의 나와 달리 현실 속의 나는 TV 친구 뒤에 숨어버렸다.


결국 나는 '쌍권총'이라는 이름의 F학점 두 개를 받아 들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때의 나는 변화하기를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내 삶으로부터 한 걸음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내 삶에서 도망자가 되기로 하였다.

도저히 잘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1년 휴학을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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