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란 적 없다는 마음의 거짓말
[찌질한 나에게 #4] 보상심리 1 (연애심리/남자심리)
# 망할 보상심리 1
그 망할 보상심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전에 보상심리와는 관련이 없지만 예전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을 해 보겠다.
몇 년 전 가까운 친구가 정말 마음에 드는 썸녀가 생긴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를 만날 때마다 미용실에서 스타일링을 받고 메이크업을 하고 만났다. 그렇게 처음 썸을 타고 사귀기 초반까지 그 친구는 그녀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 그녀를 만날 때마다 미용실 가는 것을 반복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그 친구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는 이렇게 자신을 좀 꾸며야 본인도 자신감이 더 생겨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어필될 것 같다고 했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는 말이다.
정말 마음에 들었고 잘 만나고 싶으면 남자는 꽤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리고 남자는 이 노력을 매우 행복하게 느낀다. 그렇게 그 친구와 그녀는 2년 정도 만났는데 그 친구는 2년의 시간 동안 그녀를 만날 때 매일 미용실을 가서 스타일링을 받았을까? 당연히 절대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와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미용실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집에서 스타일링을 하고 그녀를 만난다. 시간이 더 지나 어떤 날엔 편한 차림에 모자를 쓰고 그녀와 데이트를 한다. 이상할 것 하나 없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 아닌가? 친구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을 했고 그 결과 그녀의 마음을 얻었고 어느새부터 필요한 노력, 때에 따라 필요 이하의 노력을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렇다고 그 남자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니다.
시키지도 않은 노력.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 이야기와 보상심리에 대한 이야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연애가 그랬다. 나는 굳이 시키지도 않은 필요 이상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노력이 반복될수록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력이 커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바라는 것은 더 커지고 그 바람을 채워주지 못하는 상대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었다.
이 보상심리가 무서운 것은 정작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 섭섭한 마음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노력을 계속했다. 나의 섭섭함은 커져 가는데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마음에 크게 자리 잡아 마음 한쪽에 자리 잡은 섭섭함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섭섭함을 발견했을 때는 사랑이 작아지고 섭섭함이 점점 커질 때였다. 당연한 것 아닌가.. 섭섭함을 가리고 있던 사랑은 작아지고 사랑에 가려졌던 섭섭함은 커졌으니. 내 마음속에 있는 섭섭함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의 섭섭함이 이렇게 큰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의 노력을 몰라주는 상대가 미웠고 억울했다.
처음부터 무엇인가 바라고 했던 노력이 아닌데, 노력하면서 바란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인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은 어느새 사랑보다 더 커져있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가 더 노력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혼자 오버하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리고 남자의 노력도 가끔은 부담으로 다가왔었다고 한다. 나의 노력에 비해 상대방은 별로 한 게 없으니 그냥 하는 핑계 일 수도 있다. 남자의 섭섭함은 점점 커진다. 결국 지쳐 가는데 지치는 것도 부정했었다. 지친 게 아니야 바빠서 그런 거야. 요즘 몸이 피곤해서 그런 거야 라며 자신의 줄어든 노력의 원인을 다른 쪽에서 찾게 된다. 보상심리가 생기면 그게 보상심리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합리화가 따라오는 것 같다.
처음에 비해 한 없이 작아진 남자의 노력은 여자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든다. 대부분 여자는 사랑하는 쪽보다 사랑받는 것에 행복을 느끼기 마련이다. 남자의 사랑이 작아지고 있는데 여자가 흔들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여자는 천 원을 넣는 다고 콜라를 뽑아주는 자판기가 아니다. 당연히 아니다. 남자의 사고는 여자에 비해 단순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경험 해 보니 나도 내가 이 정도 일 줄 미처 몰랐다. 왜 남자는 보상심리에 빠져 사랑하는 여자에게 무언가를 기대할까?
대가를 바랐던 노력.
남자가 단순한 만큼 이 부분도 생각해 보면 정말 단순한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애의 시작이 남자가 을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현실적인 사고를 많이 하기에 연애도 일종의 투자처럼 생각한다. 내가 상대에게 투자하는 시간, 에너지, 감정, 돈, 기타 등등. 이런 투자는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어느 정도 돌려받는다는 착각에 빠진다. 특히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고 사랑하는 감정이 매우 큰 연애 초반일수록 이런 투자가 과한 경우도 꽤 있다. 사업이나 주식에 투자했는데 손해가 크거나 생각한 리턴이 안 돌아올 때 그 리스크를 투자한 본인이 그대로 감당해야 한다. 손해를 봤는데 얼마나 화가 날까? 문제는 이 심리가 똑같이 여자에게 적용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사랑해서 했던 노력이 나중에는 보상심리가 되어 돌아온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남자의 무의식 중 일어난다. 결국 단순한 남자는 내가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도 모르고 부정한다. 그리고 대체로 보니 애정결핍이 있고 외로움을 잘 느낄수록 보상심리가 더 큰 것 같다.
"난 할 만큼 했는데 도대체 넌 한 게 뭐야?"
처음부터 바라고 한 게 아니었다지만 저 말 한마디는 이미 충분히 바랐었고 나의 바람을 네가 채워 주지 못했다는 의미다. 펀드매니저에게 손해 봤는데 당신이 한 게 뭡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처음부터 바라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실 그렇다 쿨하게 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 같이 찌질한 사람들의 사랑은 쿨함과 거리가 매우 멀다. 사랑하기에 섭섭한 것이 나같이 찌질한 남자들이다.
예전에 내가 만났던 사람 중 매운 음식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간단한 식사를 위해 떡볶이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난 그 사람에게 맞춰 주기 위해 그리고 그녀를 위해 가장 매운맛으로 주문을 했다. 나는 매운 음식을 엄청 못 먹는 사람인데 그녀가 좋아하기에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당시 여자친구는 왜 매운 거 시키냐고 자기는 좀 덜 매워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를 위해 가장 매운맛을 시켰고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보아도 행복했다. 나는 너무 매워서 많이 먹지도 못했지만 참 행복했었다. 시간이 지난 후 바로 이런 보상심리 때문에 다툰 일이 있었다. 이건 그때 내가 했던 말이다.
“나는 너한테 맞춰 주려고 못 먹는 매운 떡볶이까지 먹었는데 넌 나한테 그것밖에 못해?”
여자친구가 매운 떡볶이를 무조건 먹자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을 여자 친구의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나는 그냥 찐따, 병신, 쪼다, 찌질이입니다.”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쉽게도 새로운 사람과 연애가 반복될수록 이 보상심리는 없어지지 않더라. 내가 그걸 인지하지 못했기에 이런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당신이 찌질함을 인정한 사람이라면 연애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앞서 말한 경우가 공감될 것이라 생각한다.
- 보상심리 1 끝.
보상심리에 대한 내용은 내일까지 연재됩니다.
다음 편은 보상심리에 대처하는 남자의 자세에 대한 내용입니다.
[시리즈로 연재되는 글입니다. 혹시나 공감이 된다면 블로그 카테고리에서 순서대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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