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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짱 Dec 20. 2023

수시 합격한 딸에게.

대학이 뭔지


어른 세계는 매정한 면이 참 많은데, 그중에서도 12년의 결실을 오직 대학 하나로 판단하는 우둔한 생각은 분명 고지식한 어른들의 잘못 일게다. 속물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고 나 역시 세월이 흘러 중년에 들어서면서 그따위로 고지식한 부류의 초입 단계에 접어든 건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되는구나.



너라는 존재를 처음 알았을 그때를 떠올려 본다. 밤샘 야근이 며칠째 이어진 날이었지. 세상 모든 우선순위가 바뀌는 첫 시작이었기에 모든 걸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지. 그때의 발걸음은 분명 어제와는 다른 발걸음이며 어깨엔 이제 막 돋아난 깃털에도 무게감을 느낀 바로 그 첫날이야.



20대 중반을 넘긴 나이인데도 처음이 참 많았어. 나의 외모를 닮은 아기를 처음 만나 품에 않았고, 아기는 통통하고 예쁜 줄 알았는데 빨갛고 생각보다 앙상하다는 걸 처음 알았고,  분홍치마를 입고 있는 아기인데도 아들이냐며 물었던 첫 당황스러움. 첫돌이 되기도 전에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너무 작은 아기라서 링거를 맞기 위해서 손등이며 이마에까지 바늘을 찔렀어야 했던 날, 표현이라곤 웃고 우는 것뿐인데 분명 아프다며 울고 있는 너보다 내가 더 격하게 울고 싶었던 첫 슬픔. 대신 아프고 싶었고 모든 걸 감내할 수 있다는 첫 감정이 일었어.



웃음이 많았던 너. 행복의 전염도 상당히 강한지라 그 행복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어. 그 아픔이 있기 전까지 말이지. 희귀질환 난치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땐 세상에 그런 낯선 이름의 병명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어. 우리 가족에게 이런 시련을 준 하늘의 누군가를 무척이나 원망하기도 했지. 네가 제일 힘들었을 거라는 것도 알고, 네 엄마도 참 많이 힘들어했어. 그렇지만 나는 어떤 내색도 할 수 없었어. 그래야만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 처음이기도 했지.  



강한 자가 오래 사는 게 아니고 오래 산 자가 강하다는 진정한 의미를 알았어.  무슨 피검사는 그렇게 많이 하는지 하루에 4~5번이나 수시로 몸에 바늘을 찔러야 했기에 그 고통에도 너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 강한 약을 써야 했고 야위어만 가는 너의 모습을 본 네 할머니가 울음을 터뜨리며 너를 계속해서 쓰다듬을 땐 난 더 강해져야 한다는 다짐을 했었어.



가족 모두가 너를 중심으로 바뀌었지. 건강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식품은 모조리 치웠고 식단도 건강식으로 모두 바뀌었어. 싱겁다는 건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는 처음이었지. 너보다 8살이나 어린 동생은 누나의 아픔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진 못했지만 어린아이 티를 내지 않더라고. 미안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고맙기도, 네 동생은 가족의 의미를 빠르게 알아차린 처음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고마움도 잠시, 설상가상으로 나의 위궤양 진단으로 네 엄마의 고통을 더 가중 시킨 처음이기도 했네.



술을 끊고 정기적인 헌혈을 시작했고, 식단 관리를 적기 위해서 블로그도 시작했지. 말로만 떠들지 않기 위해서 무언가 했어야 했어. 그리고 네 엄마가 블로그엔 절대로 너의 아픔을 언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말했기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었는데 오늘만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넌 치료를 위해서 매일 면역 억제제 약을 먹어야 했고, 매달 주사제 치료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했지. 네 엄마의 끈질긴 관심 덕에 전문 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차도가 있었을 때의 처음을 기억해. 모두가 환하게 웃었어. 마치 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지.



그렇게 2년이 흘러서 고3이라는 시간을 맞이했고 너는 수험생, 나와 네 엄마는 수험생 부모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지.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통해서 자식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세상이 되었는데, 건강하기만 하면 바란다는 마음도 대학 입시라는 중요한 관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입시생 부모의 마음으로 돌아가더라.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상위권 대학에 도전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결국 난 내려놓지 못했구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 건강을 다시 찾은 네 모습에 무얼 바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



고등학교 3년 동안 시험 결과는 성적이 좋은 단 한 과목만 보여준 너. 나도 세상을 살아보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걸 믿어 의심하자 않게 되었지. 그렇다고 늘 옳은 사람이 승리하는 것도 아님을 알지만, 사람이라면 반드시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나쁜 행동은 반드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 분명하게 알았으면 좋겠다.



나의 DNA가 조금은 우세했는지 나처럼 유독 수학을 좋아했던 너. 네가 체력적으로 힘이 덜 드는 직업을 원했지만 이과를 택했고 전자과나 소프트웨어학과에 욕심이 있었던 너를 보면서 굳이 말리진 않았어. 그래, 의사선생님 말처럼 어떻게 찾은 건강인데 남들처럼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라는 말, 나도 공감했기에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어.



수능을 치던 날, 그날 비가 많이 내렸어. 수능 한파라는 말도 옛날 말이 되어버렸나 봐. 아침을 먹고 홀로 문을 나설 때 "감" 이란 한 마디가 매우 인상 깊었어.

가다. 오다의 줄인 말 '감 / 옴'  조금 웃겼어.



나와 네 엄마는 네 동생을 학교에 보내고 우산을 들고 남산에 걸어 올라갔지. 네 엄마가 조금 힘들게 걷고 싶다고 했었거든. 이해되었어. 그날은 유독 사람이 없어서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 우산을 부딪히지 않아서 좋더라.



수능 성적 발표 날 때까지 건드리지 말라는 너.
수시 넣고 발표 날 때까지 실컷 놀겠다는 너.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에 간다 부산에 간다 떠들며 계획을 잡았지만 시험 결과에 따라 함께 할 수 없음을 알았던 너는 이제 막 성인의 관문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었을게다.


수시 발표를 듣고 울었다던 너.
나도 엄마도 마찬가지였어. 나와 네 엄마의 눈물이 너의 눈물보다 조금은 짜지 않았을까.
걱정한 바와 달리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행복한 고심을 해야 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웃었어. 어제만 해도 말도 못 붙이게 하더구먼.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학에 붙은 걸 축하한다.

애 많이 썼다.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부담도 준다.



그럼, 난 이만 적금통장 깨러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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