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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Nov 13. 2019

색청인으로 살기

소리가 색깔로 보인다는 것 

들어가는 말 1.



 제가 색청이 좀 있어요,     


 하고 입을 떼면 90%의 사람은 ‘색청이 뭐에요?’ 라고 묻는다. 색청은 일종의 장애다. 보통 인간 발달 과정에서 시각 반응을 관장하는 부분과 청각 반응을 관장하는 부분은 비교적 늦게 분리된다고 한다. 간혹 두 부분이 잘 분리되지 않은 채로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색청인이다.


 색청은 소리가 색깔로 보이는 장애다. 여기서 ‘보인다’는 말은 비색청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널리 쓰이는 것 같지만 사실 그리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빨간색 소리를 들었다고 시야에 빨간색이 끼얹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색청인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소리를 들었을 때 색깔을 같이 ‘느낀다’. 빨간색 소리를 들으면 빨간색을 ‘보는’ 대신 ‘감각(sense)’한다.  


 빨간색을 떠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모든 색청인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색청은 여섯 번째 감각과 같다. 시야와는 다른 차원에서 색깔들이 나타나고, 그것을 눈이 아닌 다른 더듬이로 감지한다. 마음에 떠오르는 심상들은 내 마음대로 떠올리고 지워버릴 수 있지만 색깔의 감각은 외부에서 밀려든다. 후각을 생각하면 좀 이해가 편하다. ‘나쁜 냄새’에 대한 생각은 지워버릴 수 있지만 어디선가 나는 ‘나쁜 냄새’는 지울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색청이란 내 의지대로 열고 닫을 수 없는 새로운 감각기관이 달려 있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색깔과 질감을 함께 느낀다. 빨간색 소리 중에서도 거칠거칠한 빨강이 있고, 플라스틱 표면처럼 매끈매끈한 빨강이 있고, 유리처럼 부딪히면 찰그랑거릴 것 같은 빨강이 있다. 형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가끔 나타날 때가 있는데 그건 진짜 형태가 보인다기보다는 ‘각이 졌다’, ‘둥글둥글하다’, ‘튀어오른다’, 와 같은 형태에 대한 느낌들이 마음에 불쑥 다가서는 것에 가깝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다음 반응이 뒤따른다.     


 우와, 신기하다.     


 내지는,     


 음악 들을 때 엄청 예쁘겠어요.     


 등등의 경탄.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색청을 ‘특별함’의 징표로 받아들이고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러고 나면 꼭 자기 목소리를 들으면 무슨 색이냐고 묻는다. 대체로 다 그렇다.      



 이런 반응을 보고 나면 사람들이 색청에 대해 정말 잘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놀랄 일도 아니다. 시중에는 색청에 대한 글이 얼마 없고, 영상이 몇 개 있지만 그것으로 색청인들의 삶을 짐작하기에는 왜곡된 부분도, 허술한 부분도 많다.


 색청인으로 살면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색청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항상 비슷한 소음이 났다. 그래서 밤에 누우면 하늘에서 둥그런 형광 빨간색과 네모난 파란색이 쏟아지고는 했는데, 그것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엄마한테 이를 털어놓자 엄마는 그게 비문증이라고 했다. 비문증은 눈앞에 먼지가 떠다니는 것을 느끼는 증상이다. 나이가 들어 진짜 비문증이 생겼을 때에야 그게 비문증이 아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비문증은 이런거다

 어머니에게 나는 비문증 때문에 밤에 잠도 잘 못 자는 아이였다. 그 뒤로 두어 번 색청 증상을 토로했지만,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나는 까닭 없이 예민한 아이가 됐다. 색청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색청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비색청인으로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 색청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본인도 뭔지 모르는 것을 비색청인에게 이해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직 쓸 수 있는 단어가 적은 미취학 아동, 그리고 유치원생이라면 더욱 그랬다. ‘특별한 척’을 한다는 뒷담화를 두어 번, 예민해서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점점 내가 느끼는 색청 현상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색청 증상은 무시하려고 노력했고, 내 예민한 성정이 자극에 과한 의미부여를 해서 나타나는 공감각이라 생각했다. 정말로 내가 ‘특별한 척’을 하기 위해서 색깔들을 상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색청인’이라는 말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색청’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스무 살이 넘어 라디오에 소개된 한 사연을 접하고서였다. 그 사연에 내가 느끼던 것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난 자주 스스로가 세상과 한 끝 어긋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어긋남이 나만 갖고 있는 존재적 결함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그 어긋남에 ‘색청’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내가 그래도 세상의 한 귀퉁이에 안착해 있는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사연을 읽으면서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그 뒤로부터 내가 가진 색청 증상에 대해 조금 더 자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게 뭐냐는 사람들에게는 그 라디오 사연을 찾아서 보여줬다. 그 사연을 읽은 사람들은 더 이상 ‘색청’이라는 증상의 존재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색청? 혹시 그거야?’ 하고 아는 척을 해오는 사람도 늘었다. 그 사연을 쓴 사람에게 항상 감사했다. 색청인으로 사는 것은 여전히 번거롭고 위태로웠지만 적어도 그 사연 덕택에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덜 불안했다.      


 그리고 재작년부터 점점 색청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헤드폰 없이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게 됐고, 시끄러운 술집도 보다 편하게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시험에서 실수로 틀리는 문제도 조금 줄었다. 그와 동시에 색청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 라디오 사연에게 내가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색청’이라는 장애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싶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색청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묻는 질문 하나를 뽑았다.      


 ‘이 노래 들으면 어떤 색깔이야?’      


 자주 외롭고 자주 버거운 색청인의 삶에서 음악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였다. 물감으로 가득 찬 욕조 안에 누워 존재하는 줄도 모르던 수많은 색깔들과 인사하다 보면 삶을 다시 살아갈 힘이 나고는 했다. 그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뮤즈의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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