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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Nov 16. 2019

도마 -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     


멀리멀리 가던 날

데려온 노래는 들리지도 않고

날아오를 듯이 가볍다가

고갤 떨구면 가장 낮은 곳으로     


이유도 없이 나는 곧장 섬으로 가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섬으로 가네

조심하며 걸어도 발소리는

아무도 없이

개만 운다     


이유도 없이 나는 곧장 섬으로 가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그 섬에는

조심하며 걸어도 발소리가

아무도 없이

개만 운다     



 드문드문, 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색청인의 삶에서 드문드문한 순간은 희귀하다. 보통 자극은 결핍되어 있다기 보다는 과잉되어 있다. 드문드문 한 것들 보다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것들이 많고, 적어서 아쉬울 때보다는 많아서 피곤할 때가 많다. 주체가 잘 되지 않는 더듬이 하나를 더 달고 있으니, 더듬이를 하나 더 켜기보단 끄고 싶은 순간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삶에서 ‘드문드문’이라는 단어를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은 값지다. 드문드문 이라는 단어를 ‘드문, 드문’ 이라고 소리 내어 발음해보면 ‘문’ 하고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흰 색 도화지에 붓으로 점을 하나씩, 띄엄띄엄 찍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찍힌 점들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지, 그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온전하게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여러 색깔이 겹쳐져 그 안에 하나하나의 선은 보이지 않는 그림과는 달리 명확하고 편하다.      


 온갖 색으로 점칠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런 드문드문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도마의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를 듣는다. 노래는 자주 침묵한다. 그리고 그 침묵을 청자와 함께 듣는다. 조심하며 걸어도 발소리가, 하고 잠깐 동안 숨을 죽이는 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나 또한 숨을 죽이고 침묵 속에서 내 발소리를 찾아 듣게 된다. 정적은 평소 의식하고 있지 않던 소리들을 의식함으로써 체감되기 마련이다.      


 침묵하지 않는 순간에도 노래는 드문드문하다. 쪼개 듣지 않아도 어떤 소리들이 노래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앙상한 노래라는 점이 그렇다. 기타 하나, 관악기 하나, 그리고 목소리. 간단한 음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기타는 모래색깔로 띄엄띄엄한 발자국을 찍는다.      


 소리의 드문드문함은 타자의 드문드문함과도 닮아 있다. 정적을 원하는 마음은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비슷하다. 정적은 대화의 부재고 타자성의 부재다. 소리는 공기가 충격을 받아 진동할 때 난다. 소리를 듣는다는 건 그 진동을 받아들여 내 몸의 일부분도 진동시킨다는 의미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대화란 ‘나’와 다른 사람의 말을 몸 안으로 받아들여 내 세계가 휘저어지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다. 자극에 지치면 정적을 찾는 것처럼, 타자와의 충돌이 지칠 때 우리는 섬을 찾는다. 섬은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섬이다. 섬에는 ‘나’밖에 없다. 그리하여 적막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도마의 노래에는 그 섬이 있다.      


 어떤 섬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참 어렵다. 자아가 약하고 불안할 때 도망치듯 들어가는 섬이 그렇다. 도마는 노래에서 ‘날아오를 듯이 가볍다가 고갤 떨구면 가장 낮은 곳으로’ 처박힐 때 이유도 없이 섬으로 간다고 말한다. 나 또한 그렇다. 세상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다가, 아주 사소한 것으로 모든 것이 가치가 없어 보일 때, 나는 약하다. 나를 부정하는 말 한 마디, 짧은 무관심에도 내 세계가 허물어진다. 그럴 때 나는 타자를 견뎌내지 못한다.     


 그럴 때 섬으로 들어간다. 아무도 없는 곳에 웅크리고 앉아 개가 짖는 소리를 듣고, 내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들어간 섬은 나오기가 어렵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생채기들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다. 그럴 때 섬은 선택보다는 습관이 된다. 습관적으로 벽을 쌓고, 습관적으로 침잠해 혼자가 된다. 그렇게 자꾸만 ‘이유도 없이’ 섬으로 간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가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 마냥, 어떠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마냥 섬으로 간다.     


 거기서 섬은 그냥 ‘섬’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섬’이 된다. 그건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그럴 때 나는 혼자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갈 용기가 없어서 섬 안만 걸어 다닌다. 걷다 보면 내 발소리가 난다. 혼자 걷는 사람 소리가 난다. 아무리 조심히 걸어도, 바삭 바삭 하고 모래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결국 섬은 적막하지 않다. 섬에는 내 외로움과 우울과 불안이 있다. 타인이 견디기 힘든 만큼 섬 또한 견디기 어렵다. 그 사실을 실감할 때, 나는 항상 절망한다.      


 그렇게 드문드문한 노래를 들으면서, 사실 정말로 드문드문한 순간은 없다는 사실을 되새김질한다. 조심하며 걸어도 발소리가 - 하고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숨을 멈추고 내 소리를 듣는다. 그래, 내 소리가 여기에 있구나. 어디로 도망쳐도 떼어놓을 수 없는 나의 실망들이 여기에 있구나.   

   

 정확한 실망은, 가끔은 안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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