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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Mar 14. 2016

머그컵의 우주

그 완벽함

 요즘 카페를 가면 거의 대부분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준다. 그 빈들빈들한 종이 촉감이 손가락에 와 닿는 순간, 뭔가 풀이 죽고 만다. 기대했던 모카크림도 뭔가 좀 밍숭맹숭한 기분이다. 굳이 일회용성이니, 소비되는 소비자라니 그런 말을 끌어오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잔뜩 부풀었던 마음이 피시식 김이 빠진다. 아, 나오기 전에 머그컵에 달라고 부탁할걸.


 따뜻한 카페모카가 담겨 나오는 머그컵이 좋다. 다람쥐 도토리라도 되는 마냥 컵을 가슴팍에 끌어당겨놓고 두 손 꽉 차게 컵을 들고 홀짝이면 안온한 느낌이 든다. 추운 겨울날에 마시는 핫초코는 내 상상 속에서 항상 도톰한 사기 머그잔에 담겨 나온다. 엉덩이가 펑퍼짐한 놈이 좋다. 그런 아이들은 두 손으로 받치면 꼬옥 들어차 마음이 뿌듯해진다. 딱딱하기 짝이 없는데 푸근하다. 다 먹고 아쉬우면 컵 안에 코를 박고 냄새 맡는 것도 좋다. 컵에 남은 크림 자국과 코코아 자국을 빤히 바라보는 것도 좋다. 그냥, 괜히 좋다.


 결국 좋은 건 그런 작은 것들이다. 어떤 순간의 촉감, 냄새, 색깔, 그런 것들. 언어로 잡히지 않는 그런 것들로 난 행복해지고 또 슬퍼진다. 그런 게 좋은 데에는 이유가 없다. 뭔가 대단한 말로 의미부여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행복한 한숨을 내쉬면서 폭신함에 등을 비빌 수 있으면 된다.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한 이유를 알고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설명하고 뭘 쌓는 게 아니라, 그런 순간들이 우주에서 제일 완벽한 순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머그컵 하나로도 우주는 완벽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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