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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Dec 27. 2020

0. 버스커버스커, 벚꽃엔딩

나에게는 너무 어렵도 무서운 평론

어렸을 때 나는 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노래를 듣는 게 좋았고, 노래에 대해서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내가 아는 한에서 그런 일을 하는 작자라고는 음악 평론가밖에 없어서였다. 그래서 중학생 때였나, 평론이라고는 한 글자도 읽어본 적 없으면서 장래희망 칸에 ‘음악 평론가’라고 써서 냈었더랜다. 그 해에 담임선생님이 직업탐색활동을 숙제로 내주고서야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평론 잡지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나는 십여분 만에 희망에 부풀어 펼쳐 든 잡지를 힘없이 내려놓아야 했다. 잡지는 너무 어려웠다. 처음 보는 음악 전문 용어들이 한 단어 건널 때마다 등장했다.      


그러나 내가 실망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글들을 흐린 눈으로 넘기다가 내가 당시에 사랑해 마지않던 2ne1의 ‘Go Away’에 대한 평론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시금 신이 나서 글을 읽었다. 그런데 혹평이 펼쳐졌다. 5점 만점에 1.5점의 점수도 따라붙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평론가한테 뭇매를 맞는 것만 같았고, 끝내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 날 나는 평론가의 꿈을 포기했다. 그 이후로 ‘Go Away’도 이전만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래도 못내 미련이 남아 나이가 들어서도 누가 평론을 썼다고 하면 깔짝깔짝 찾아 읽고는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도 평론은 항상 나에게 어려웠다. 평론가들은 어떨 때는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 ‘싸구려’라 했고, 어떨 땐 도통 좋은지 모르겠는 음악을 ‘시대의 명곡’이라 추켜세웠다. 나는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예술의 가치도 알아보지 못하는 ‘안목’ 없는 사람이 되어 엄한 선생님한테 질책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면 어여쁘던 것들이 조잡해 보였고, 나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점차 포기했다. 나는 여전히 노래를 듣는 것이 좋았고, 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가 겪었던 그런 경험을 하게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당시 나는 ‘벚꽃엔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찾아 들은 적도 없는데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질리도록 틀어주니 괜시리 반감이 생겨 도무지 듣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디서 본 댓글 이야기를 해줬다.

 ‘후에 봄이라는 계절이 사라지면 벚꽃엔딩을 들려주며
이게 봄이었다고 말해도 될 정도’래.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이 나왔다. 내 굳건한 고집이 깨지는 소리였다. 벚꽃엔딩은 우리 모두가 공유한 봄이었다. 한국에서 산 사람이라면, 봄에 ‘벚꽃엔딩’ 안 들어본 사람은 없으리라. 10년 후에, 20년 후에, 나는 그 자리에 있는 누구와도 ‘벚꽃엔딩’을 들으며 2010년대의 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터였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하는 장범준의 목소리와 그 뒤에 따라오는 멜로디언 연주에서 너도, 나도, 다 함께 그때 봄 공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리라.     


그 생각을 하자, 노래가 듣고 싶어 졌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벚꽃 엔딩’을 들었다. 그러자 그저 시끄럽기만 했던 노래에서, 내 여러 봄이 들렸다. 혼자 도서관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울음을 터뜨렸던 봄날이 있었고, 내 첫사랑과 대학교 중앙 잔디밭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봄날이 있었다. 코 언저리가 시큰해졌다. 이미 지나가버린, 이제 다시 오지는 않을 봄들이 생각났고 매년 봄이 되면 그 노래를 찾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애틋해졌다. 그리고 그런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느껴본 봄’을 사람들과 함께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따뜻했다. 시대를 풍미한다는 건, 아마 이런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노래라는 뜻일 게다.    

  

그 한 줄 덕분에 나에게 ‘벚꽃엔딩’은 봄을 기억하고 공유하는 노래가 됐다. 리뷰라는 건, 비평이라는 건, 이럴 때 가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같은 작품에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고민거리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리하여 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글을 쓰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살짜쿵 얹어서, 각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다. 자기 전에 노래 한 곡 들으면서 찾아 읽을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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