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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Jan 03. 2021

#1 다모임, <아마두>

 21살 ‘여름에’ 대만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대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싼 비행기 가격에 혹해서 그랬지 싶다.     


 여름의 대만은 정말, 정말, 정말 더웠다. 35도에 육박하는 온도도 온도였지만, 공기가 사우나처럼 축축하기 그지없어서 내 어깨에 얹히는 공기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5박 6일짜리 짐을 지고 뻐끔뻐끔 숨을 쉬다 보면 여행이고 나발이고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수십 번도 더 들었다.     

여름 + 대만 = 덥다. 아주 덥다.

 그랬으니 넷째 날, 숙소로 길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4일간의 강행군으로 체력은 바닥나 있었고, 유일한 동아줄이었던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닳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숙소 이름을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와 12시의 태양을 받아 뜨겁게 달아오른 정수리뿐이었다. 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었던지라 영어를 못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익스큐즈 미,” 하고 다가가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나거나 그냥 가던 길을 휘적휘적 갔다.     


 대여섯 번 그렇게 거절당하고 나니 기운이 빠져 길가의 한 가게 앞에 아무렇게나 털퍼덕 주저앉았다. 멍을 때리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내 등을 쿡쿡 찔렀다. 비켜 달라는 말이겠거니, 하고 일어나면서 “쏘리-”하고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그런데 허리를 들고 보니, 가게를 보시던 중년의 여자분이 손가락으로 내 손의 종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종이를 보여드리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리시더니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땡큐, 땡큐,” 하면서 내려놓았던 짐을 허겁지겁 둘러메고 그녀를 따라갔다.     


 그렇게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10분 정도를 걸었다. 그녀는 가끔 고개를 돌려 내가 잘 따라오는지만 확인하시고, 복잡한 대만 길바닥을 거침없이 걸어갔다. 숙소로 가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납치당하는 건 아닌가, 오만 생각이 다 들 때쯤, 그녀는 불쑥 멈춰서서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사진으로만 봤던 내 숙소였다. 반쯤 혼이 빠져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으니까, 아주머니가 활짝 웃었다. 딱딱하던 표정이 일순간에 흐무러지며 하얀 이가 드러났다.   


나는 그 웃음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낯선 타지에서 환대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건 내가 한국에서 나와 친밀한 이들에게 받던 호의와는 아주 다른 감각이었다. 친구에게, 부모에게, 애인에게 받는 애정은 내가 바로 그들의 친구이기 때문에, 자식이기 때문에, 연인이기 때문에 주어진다. 오랜 시간 동안 확립된 관계에 기대어 우리는 애정을 주고받는다. 그 애정은 ‘내가 나라서’ 받게 되는 애정이다. 내가 아닌 옆집 아저씨에게는 베풀어지지 않는 호의다.     


 그러나 내가 그날 받은 호의는, 이유 없이 베풀어진 일방적인 선의였다. 아주머니와 나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도, 특별한 애착 관계도 성립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the one(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one of them(불특정 다수 중 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아주머니는 내가 아니라 내 친구가 그 거리에서 길을 못 찾아 쩔쩔매고 있었더라도, 그 친구를 위해 해가 쨍쨍한 시장바닥을 걸어갔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히 그 이유로 그때까지 무섭기만 하던 대만이 조금 편해졌다. 다음에 또 길을 잃고 나를 도와줄 친한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저 내가 곤란하기 때문에, 내가 곤란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것이고, 또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서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들이 나에게 선의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믿음은 세상을 한 뼘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나와 가까운 자들이 주는 사랑과는 다른 방식의 안정감을 선사하고, 나 또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


     

내 곁의 노래, 저 멀리의 노래     

 대체로 노래는 청자를 위로하기 위해 ‘내가 네 곁에 있다’고 노래 부른다. 가끔은 나의 친구가 되어, 부모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설렘과 애틋함과 슬픔과 상실을 이야기한다. 윤복희의 <여러분>은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이자 ‘너의 친구’임을 자처하고, 청자는 이를 들으며 눈물짓는다.     


 그러나 <아마두>는 오히려 노래하는 자와 청자 사이의 거리를 벌린다. <아마두>라는 가사는, 사실 ‘네가 잘됐으면 좋겠지만, 안 되어도 어쩔 수 없고’라는 무책임한 선언이다. <아마두>의 노래하는 이들은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으며, 너와 나 사이의 긴밀한 관계의 서사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아마두>의 래퍼들은 노래 어디에서도 나의 연인, 부모, 친구, 또는 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그저 나와는 완벽한 타인의 자리에 서서 나에게 ‘잘 될 거야, 아마도’라는 가볍지만 따스한 마음을 건넬 뿐이다.     


 그 거리감에서 나는 대만에서 느낀 낯선 이들의 선의를 읽는다.     

 사실 나는 너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새해에는 더 좋은 일이 더 많을 거야, 아마도.    

 나의 행복을 책임지지 않고, 책임질 수조차 없으며, 나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막연하게나마 빌어주는 행복의 노래는, 연인의 입장에서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바라는 건 너밖에 없다(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고 노래하는 캐럴과는 색다르게 각별하다.


 우리는 모두 다 같이 크리스마스를 맞고, 새해를 맞으며, 나이를 먹는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함께 하는 몇 안 되는 일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나를 모르는 이들의 낯설고 따뜻한 선의를 생각한다. 그리고 또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볼 일 없는 무수한 사람들의 새해가 행복하고 따뜻하길 빌어본다. 우리가 서로의 선의에 의지해 세상이 따뜻함을 믿는다면, 그 믿음으로 인해 세상이 정말로 따뜻해지지 않을까.          


 눈과 겨울바람 냄새가 나는 힙합 캐럴에서, 그 후덥지근했던 대만의 웃음을 떠올린다. 모두 행복하길. 해피 뉴 이어.      


모두들 잘 될거야. 아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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