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바닷가를 걷다 보면 반투명한 돌들이 보인다. 자갈처럼 모양이 둥글둥글 하지만 파도가 한번 핥고 지나가면 반짝반짝하는 것이 보통 돌이라기에는 별나게 아름답다. 대개 초록색과 갈색이지만 간혹가다 하얀색도 끼어 있다. 미성년자 때는 그게 어디서 온 것일지 참 많이 궁금했더란다. 스무 살을 넘겨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소주와 맥주를 까기 전까지는 그랬다.
해변가 음주의 잔재
그러니까, 그 보석들은 깨진 소주병과 맥주병, 잘해봐야 매화수 병이었던 셈이다. 그 날카롭던 유리 조각들이 오랜 시간 연안에 앉아 파도에 굴러나갔다가 굴러들어오면서 해변의 보석들로 깎인다. 반쯤은 투명하고 반쯤은 불투명한 유리 조각들은 막상 주워서 유리병에 넣어놓으면 어두운 플라스틱 조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해변의 햇살과 바닷물이 없으면 조각들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
그래서 걷다가 그런 유리 조각을 발견하면 꽤 기분이 좋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정확하게 찾아서 빛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유리의 투명함을 간직하되 오랜 시간 갈고 닦여 단단해진 옹골짐도 사랑스럽다.
윤상의 노래를 들으면 그런 유리 조각으로 가득한 해변이 보인다. 그 조각들을 실에 꿰어 처마에 달아 놓은 바닷가 카페 생각도 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차그락 차그락 부딪히는 유리 조각들의 질감과 채도가 느껴진다. 윤상이 주로 쓰는 사운드들은 여타 제작자의 소리보다 투명하다. 고개를 젖혀 유리 조각을 햇살에 대고 들여다보면 그 뒤의 하늘색이 언뜻언뜻 보일 것만 같은, 그런 적당한 투명함과 적당한 불투명함. 서로를 뭉개지 않는 각 사운드의 단단한 독립성. 그리고 그것들을 정확한 자리에 깎아 넣는 시간과 수고가 그의 노래에 묻어난다.
EDM마저도 그렇다. <날 위로하려거든>을 듣고 있으면 오로라가 머리 위에 펼쳐진다. 그러다가 후렴에서는 반투명하고 단단한 수정이, 봄날에 피어나는 꽃처럼 땅을 뚫고 폭사한다. 이곳 저곳에서, 억눌러도 없어지지는 않는 눈물처럼 울컥울컥 터져 나온다. 그 위에서 윤상은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노래한다. 정말 위로하려거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괜찮아질 거라는 말, 이겨내라는 말 가시처럼 나를 찌르는 말 제발 날 그냥 내버려 둬 난 지금 세상을 잃었으니
세상을 잃어본 자만 세상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이해한다. 세상을 잃은 자에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자는, 세상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물론 언젠가는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괜찮아진 사람이 진짜 ‘나’일까. 괜찮아진 사람이란, 아마 내가 아니라 다른 세상을 얻은, 다른 사람일 테다. ‘나’의 가장 중요한 것들은 이미 나의 세상과 죽어버렸으므로.
그 죽음 앞에서는 어떠한 말도 무용하다. 어떠한 위로로도, 우리는 ‘괜찮아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괜찮아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그저 ‘견디는 데 익숙해지는’ 것들뿐이다.
그렇게 날 ‘내버려 두라’는 노래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다가 돌연 사라진다. 노래는 아무런 징조도 없이 급작스럽게 끝나버린다. 빛은 사라지고, 청자는 깜깜한 방 안에 남겨진다. 모든 위로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 누구의 소리도 가 닿지 않는 그러한 순간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노래의 마지막에 나는 그 사실을 다시 직면한다. 그 누구도 구원해줄 수 없는 견고한 절망이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위로받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날 위로하려거든>은 정적을 듣기 위한 노래다. 그토록 오랜 시간 들여 버린 음과 말도 뚫을 수 없는 그 정적에 대한, 어떤 빛도 새어 들어오지 않는 암실에 대한 서사다. 노래 내내 꿰어져 있던 수많은 유리 조각들이 정성스럽고 예뻐서 더 참혹한 결말이다. 파도가 열심히 깎은 유리 조각을 장식장에 모시지 않고 해변에 버려두듯이, 윤 상은 기껏 엮어놓은 음들을 모두 지워버린다. 그래서 그 너머의 순간에 관해 이야기를 해내고야 만다. 유리 조각이 장식장에 있을 때 보여주지 못하는 풍경을 해변에서 만들어내듯이.
그래서 윤상은 그 암실에 갇힌 사람들을 끝내 위로해낸다. 그런 암실이 있다고, 그걸 이해한다고.
<날 위로하려거든>은 2014년 가을에 나온 노래다. 우리는 2014년 봄부터 암실을 이고 사는 사람들을 안다. 그들에게 이 노래의 정적이 위로가 되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