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완벽한 번역을 ‘지향’할 뿐

by 빗방울


번역은 살림하고 아이 키우며 느끼는 일상의 행복과는 결이 다른 기쁨을 준다. 그리고 결이 다른 고통도 준다. 나의 고통은 주로 완벽한 번역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것인데, 연차가 쌓일수록 오히려 그것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깨달음만 선명해질 뿐이다.


원문에 집착할 땐 내가 너무 고지식한 사람 같고, 유려한 문장에 집착할 땐 내게 너무 룰이 없는 것 같다. 작가의 편에 서서 모호한 문장을 모호하게 지켜내면 독자들을 외면하는 것 같고, 독자의 편에 서서 함축적인 문장을 친절하게 풀면 네가 문학을 아냐고 작가가 멱살을 잡을 것 같다. 편집자의 요구를 반영할 때엔 내가 줏대 없는 인간 같고 내 주장을 관철하려 하면 내가 소통 불능의 고집 센 번역가인 것 같다.

아름다운 문장을 좇다가 오역의 범주에 들어서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고민 끝에 다소 투박하게 번역해 놓으면 편집부에서 좀 더 매끄러운 문장을 제안하고, 내가 좀 과하게 멋을 부렸다 싶은 문장들을 편집부에서 정직하게 되돌려놓는다.


번민의 시간은 초보 번역가 시절에 다 지나와서 이제는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물 흐르듯 우아하게 번역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고민의 시간은 여전히 길고 확신의 기쁨은 지속되지 않는다. 완벽한 번역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번역은 그저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읽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바로 내가 만나는 모든 작품의 ‘반짝임’을 사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책을 만날 때마다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내가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바로 그 ‘반짝임’을 찾아 다치지 않게 보물 상자에 넣어둔다. 반짝임은 작가를 작가이게 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독특하다 못해 기괴한 문장일 수도 있고, 번역가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했나 싶을 정도로 끝나지 않는 긴 문장일 수도 있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풍경 묘사일 수도 있다. 그런 반짝임이 없는 작품은 만난 적이 없다. 물론 무엇을 작품의 ‘반짝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 또한 번역가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나의 번역을 원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고 덕분에 내가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건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내가 아무리 이 일을 사랑해도, 이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었던 건 나 혼자만의 결정일 순 없었다.


책 표지의 ‘빗방울 옮김’ 은 빗방울의 생각과 판단을 거친, 빗방울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번역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내게 번역을 맡겨준 편집자의 생각과 판단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과 판단은 완벽할 수 없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음’이야말로 번역의 숙명이 아닐까. 그 숙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일은 오직 고통뿐일 것이기에.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어느 작가 선배는 삶과 글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고 내가 보기에는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 내가 그 선배에게, 선배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완벽하게 일치하긴 어렵겠지. 다만 그런 삶을 지향할 뿐.”


그 선배의 표현을 빌어 나도 이렇게 말해본다.

“내 번역이 완벽할 순 없겠지. 다만 완벽한 번역을 지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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