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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Aug 27. 2022

02 방구석 세계 여행

   아이 키우고 살림하면서 타임머신 타고 세계 여행합니다

소설 번역하는 일을 오래했다고 말하면 수백 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몇 달씩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일이 지루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방구석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세계 여행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영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유학을 갔다 온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는 내게 프리랜서 번역가의 길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이었다. 발품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번역료로 받은 돈을 전부 다 조사비용으로 탕진하는 일도 많았다. 내가 셈이 정확한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일찌감치 이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 번역 일을 시작했던 1990년대 초중반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번역하다가 (종이)사전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 생기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미국문화원 도서관으로 달려가 정기간행물을 열람하고 도서를 대출했다. 그래도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동네 영어학원의 원어민 선생님들을 찾아가거나, 외국인회사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미국인을 소개받아 시간당 페이를 하며 답을 구했다. 인터넷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석기시대 얘기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다. 내가 과연 돈을 벌고 있긴 한건지, 이 일을 계속 할 수는 있을지, 계속 하는 게 맞는지. 아기가 잠들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했던 그 시절, 잠 한 번 푹 자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막막함 속에서도 일을 놓지 않았던 건 번역으로 만난 모든 책들이 나에게 하나의 우주를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번역 일은 집에서 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 엄마가 누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내게 선물했다. 아잔차 스님의 책을 번역할 땐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불교의 기본교리를 처음 이해했다. 벨리즈라는 남미의 작은 나라에서 조그만 동물원을 운영하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 주홍 마코 앵무새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국의 어느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번역하면서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도 상상 속에서나마 다녀보았다. 짐바브웨 작가가 쓴 소설을 번역할 땐 짐바브웨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학생을 직접 만나 아프리카의 흙바닥 양철 지붕 집의 구조에 대해 들었다. 경비행기 조종사인 주인공이 무심코 내뱉는 말들을 이해하기 위해 남동생에게 경비행기 조종사를 소개받기도 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는 사람과 집을 그대로 본떠 작은 모형으로 제작하는 ‘미니어처리스트’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번역 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알았을까. 소심한 모험가였던 나는 지난 25년간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모험을 하며 내 삶의 용적을 넓혔다.      


아무 준비도 없었던 내가 그토록 무모한 모험에 뛰어들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낯선 문화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여행이 자유롭고 방안에서 다른 나라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였다면 나는 번역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맨땅에 헤딩’이어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 아픈 줄도 몰랐다. 그러나 방구석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세계를 여행했다는 건 훗날의 깨달음이고, 한 공간에서 번역일과 집안일의 균형을 잡아가며 두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는 않았다. 전부 다 초보였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방해받지 않고 번역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날들도 있었는데, 일상의 무게를 견디며 번역했던 시간이 오히려 나의 자산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번역 일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집안일도, 육아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번역 일도 다 똑같이 소중한 배움이었다. 바라건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얻은 지혜도 나의 번역에 조금은 스몄을 것이고, 번역을 통해 만난 지혜도 나의 육아와 일상에 조금은 스몄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육아의 고충을 공상 과학으로 풀어낸 소설을 번역하면서 내가 좌충우돌 고군분투했던 육아의 시간들이 또 이렇게 양분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그 힘겨웠던 시간이 고마웠다.


나를 방해하는 그것이 바로 나의 삶이라고 했던가. 아니, 나는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엄밀히 말하면 나를 방해하는 건 없다고.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저 나를 가르칠 뿐이라고.      


그래서 인터넷이 있고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지금도 나는 방구석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세계를 여행한다. 번역은 여전히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오래된 배움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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