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오다니
나는 왜, 어떻게 해서 미국에 오게 되었나.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되겠다.
나는 음악대학 작곡과 졸업을 앞두고 겨울방학 동안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피아노, 작곡, 반주등을 가르치며 용돈정도만 벌면서 자질구레한 음악잡지와 영어 잡지 굿모닝영어, 일본 어학책들을 사고 방에 가득 쌓아두고 가끔 한 번씩 펼쳐보며 뿌듯해하는 철없는 대학생이었다. 나는 사춘기도 조용하게 보냈고 그렇게 논다고 소문난 음대에서도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숨어 다닌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하고 제자들 양육하는 것에 푹 빠져 교회누나가 더 어울렸던 나였다. 대학교에서 그래도 한 번은 대학생들의 모임이 어떤 것인가 보고 싶어 4년 동안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술파티였다. 있는 동안 머리가 아파오고 기가 빨리고 정신이 어질 해서 빨리 빠져나온 게 전부였던 첫 대학모임이었다. 과모임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다행히 작곡과는 선후배 기강이 그리 세지 않아서 생존하며 다닐 수 있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작곡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냥 교회에서 사는 것이 좋았다. 제자양육 가고 한센병원 가서 환자들이랑 이야기하고 봉사 가고 예배반주하는 것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러던 중 유럽에 선교를 가게 되면서 영어를 배워야지 선교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마침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기가 한국에 들어와 내 친구랑 썸을 타길래 나도 친구랑 만날 때 같이 만나 이것저것 미국라이프에 관한 것을 물어보았다. 내 친구는 나에게 미국 코네티컷 그 남자사람 친구가 공부하는 곳에 같이 유학 가자고 제안하였다. 나도 어차피 유학 갈 거면 한 명이라도 아는 곳에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그러자 하고 했다. 문제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말이 어학연수, 유학 쉬운 것 같아도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특히 물질적인 후원이 없으면 돈을 벌지 않고 항상 축내는 대학생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난 항상 해외로 빠져나가기 전에 부모님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야 할 땐 글로 내 의견을 어필한다. 그래야지 좀 더 구체적으로 진실되게 나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더 진정성 있게 보인다. 또한 얼굴대 얼굴의 말재주도 없다.
그렇게 부모님을 글로써 마음을 설득하였고 나는 비행기표를 끊어서 친구랑 미국 코네티컷에 오기만 을 기다렸다. 물론 그 사이 유학을 맡아 도와주는 회사에 돈도 많이 들어갔고 이것저것 서류상으로도 조율이 많았다. 결코 쉽지 않았음은 확실하다. 출국날짜는 1월 12일인데 가기 전날부터 눈이 너무나 많이 내렸다. 결국엔 연기가 되어 기다리다 며칠 만에 출국하게 되었다. 미국 공항에 내렸다. 미국도 한국처럼 눈이 많이 왔다. 밤이라서 도시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꿈의 땅이라 생각했던 미국도 그저 그렇게 사람이 사는 평범한 땅으로 보였다.
남자사람친구가 사는 코네티컷에 그리고 그 애가 다니던 예일대학교 근처에 호텔을 잡아서 들어갔다. 남자사람 친구가 마중을 나와 인사를 해주었다. 나는 내 친구와 내 남자사람친구의 오고 가는 기운에서 먼가 좀 다른 느낌을 느꼈다.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불길한 기류였다.
To be continued. 2화 곧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