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

by muchlluv

휴지 같다.


얇아서가 아니라,

잘 찢어져서가 아니라,


물에 너무 잘 젖어서이다.

어떤 축축한 마음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밤.


어떤 조바심 그리고 어떤 의구심

어떤 걱정 그리고 어떤 부정

어떤 포기 그리고 어떤 용기


개척자 같은 사랑을 하는 그는 내게

생각이 많아지면 용기는 사라지는 법이라고 말했으나


그 둘의 역학관계가 내게는 어쩐지 적용되지가 않는다

생각에도 용기에도

그저 몰려오는 모든 것들에 무력히 젖어갈 뿐


깃털처럼 가볍게 세상을 날으며 누비며 살고자 해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도

그 깃털이 휴지로 만들어져 있다면 무슨 소용일까


수면 아래로 가라앉진 않지만

여전히 젖어가는 두 어깨는 무거운 나날

모두가 조금씩은 젖겠지?


작가의 이전글썸머 댄스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