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 같다.
얇아서가 아니라,
잘 찢어져서가 아니라,
물에 너무 잘 젖어서이다.
어떤 축축한 마음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밤.
어떤 조바심 그리고 어떤 의구심
어떤 걱정 그리고 어떤 부정
어떤 포기 그리고 어떤 용기
개척자 같은 사랑을 하는 그는 내게
생각이 많아지면 용기는 사라지는 법이라고 말했으나
그 둘의 역학관계가 내게는 어쩐지 적용되지가 않는다
생각에도 용기에도
그저 몰려오는 모든 것들에 무력히 젖어갈 뿐
깃털처럼 가볍게 세상을 날으며 누비며 살고자 해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도
그 깃털이 휴지로 만들어져 있다면 무슨 소용일까
수면 아래로 가라앉진 않지만
여전히 젖어가는 두 어깨는 무거운 나날
모두가 조금씩은 젖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