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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Aug 03. 2020

나와 닮아서 좋아했다.

본적은 없어도 들어본적은 있는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내가 '막돼먹은 영애씨'라는 드라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재수를 준비할 때였다. 공부를 마치고 도서관에서 나와 계절보다 일찍이 내린 눈을 맞으며 집으로 갔다. 따뜻한 집에 들어갔을때 엄마는 바닥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웃긴지 목이 쉬어갈 정도로 깔깔 웃으면서. 나도 같이웃고 싶었다. 그 드라마에 빠지게 된것이 그때부터였다.


수능 시험은 역시나 허무하게 끝났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준비했던 시험이라, 결과가 좋을리 없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는 흔한 그 말을 확인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막돼먹은 영애씨는 시즌 14가 진행되던 때였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깔끔하다는 꽤나 정직한 성격때문에 시즌1부터 차근차근 보기로 했다. 모든 시즌을 한달도 안되는 시간에 다 보았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방학만 되면 tving을 결제하면서 잠을 자든, 집안일을 하든, 다이어리를 쓰든 늘 그 드라마를 틀어놓고 살았다. 


어느 회차를 틀어놓아도 어색함이 없고 편안한 드라마였다. 주변사람들에게는 드라마 속 '영애씨'가 마치 내 친구인것처럼 그녀의 얘기를 늘어놓았다. 17편에 걸친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에서 느끼는 자잘하면서 큰 순간들과 비교하기 딱 좋았다. 그녀와 그 주변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아서, 그 드라마가 좋았던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한 속마음의 이야기를,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하는 영애씨가 부러웠다. 영애씨의 용기도 부러웠다.

그리고 그녀와 다른 내가 밉고 싫었다. 무섭고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작은 화면속에서 비춰지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나 엿보면서 집안에 들어 앉아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내가 행복하다는 합리화에 빠진 내가.


그렇게 영애씨에 빠져 구경만 하는 구경꾼으로만 살아가다보니 문든 내 인생이 불쌍해졌다. 뭐든지 시도해보고 다쳐도 좋을 이 나이에, 무서워서 도망가는 꼴이 얼마나 한심했던지. 그렇게 내 일상의 일부였던 영애씨를 꺼보자고 다짐했다. 그녀도 이야기속에서 자기 나름의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나도 세상밖을 나와서 나만의 전쟁을 치르자. 그렇게 이 드라마는 나에게 위안과 방어막이자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아쉽게도 시즌18 방송은 올해 예정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손에 앞으로 나아갈 몇십년의 인생이 달린 그녀와 함께 나도 올 한해를 달려보고자 한다. 시즌18이 시작될 즈음, 나도 조금 달라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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