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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너의 유토피아 - 정보라

by 논니
너의 유토피아.jpg






'저주토끼'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새로 나온 단편소설집.

[타임]선정 2024 올해의 책이며 '공포스럽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통해 인류의 문명을 다룬다'라고 띠지에 적혀있다. 하지만 사실 그 말은 우리나라의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에서 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위에 함께 적힌 최진영 소설가가 한 말이 더 와닿는다. '분노하고 질문하며 멈춰 애도하고 다시 전진하는 인물들'.


작가는 2020년에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때에 있었던 사회적 이슈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썼다.

다양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신기하고 대단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단순히 '재미'와 '오락'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메세지까지 담고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단편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데(엄밀히 말하면 싫어하는 쪽에 가까울지도) 단편소설들은 캐릭터들의 서사가 찬찬히 구축되어 사건이 전개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뻗어나갔다가 허를 찌르기도 하는 장편소설과는 달리 어떤 한 찰나의 이야기 혹은 한 사건 단면만 보여준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인거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독자들이 알아차리길 바라는 메타포를 마구 심어놓는데, 나는 서서히 밀려와서 집어삼키는 감동(장편)을 좋아하지 내가 굳이 생각해서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려야 하는 건 별로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일단 작가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가 싶을 정도로 기발한 소재와 전개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고, 작가가 글을 잘 읽히게 잘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간중간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작가 특유의 어법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1. 영생불사연구소

제대로된 이성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조직이라고 생각할 '영생불사'를 연구하는 연구소에서(심지어 그 조직은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왔다) 98주년 기념식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야기.

어린아이도 말도 안된다고 할 일을 심각하게 수행하는 연구소의 모습이나, 그 안에서 꼰대처럼 (전혀 중요하지 않은) 어절하나하나에 집착하는 윗선의 모습이나, 기념식에서 벌어진 웃픈 일련의 사건들을 전개하며 작가는 온힘을 다해 그것들을 아닌척하며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도 저렇게나 우스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2. 너의 유토피아

인간은 모두 사라지고, 그들이 만든 기계 중 소수만이 살아남은(? 기계에게 살아남았다는 말이 가능할까) 디스토피아가 배경이다. 주인공인 로봇은 주인을 태우고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운송수단(아마도 자동차)였다. 뒷자리에 헬스케어용으로 만들어진 로봇을 태우고 다니는데 그 로봇은 끊임없이 '너의 유토피아를 0부터 10까지의 점수로 알려달라'고 말한다.

둘은 특별한 목적도 없이 계속 달리고,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다닌다. 기계의 특성상 전력이 다 하면 움직일수 없기에(결국 충전이 되지 않으면 그 기계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충전'이란 것은 그의 생존과 직결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 기계가 합쳐져 건물형태로 변한 괴물이 부품을 주는 대신 그 괴물에 연결되어 그 일부가 되면 평생을 충전 걱정없이 살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기계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고, 만들어진 목적 자체가 느리고 약하고 지적인 존재(인간)를 내 안에 태우고 멀거나 가까운 거리를 빠르고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동하는 존재이므로 다른 곳에 귀속되어 이동의 자유를 빼앗기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너는 어떻게 살래?라는 물음을 읽는 이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만 같다.

주변에 휘둘리거나 동화되지 말고, 눈치보지 말고, 다수에 귀속되어 편승하지 말고, 니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해! 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3. 여행의 끝

판데믹 시대의 최악의 끝에 대해 표현한 소설.


사람을 먹는(좀비가 아님) 전염병이 창궐하고 전 인류가 서로를 잡아먹는 상황에 처해 인류의 존폐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차원에서 감염되지 않았음이 확실한 사람들(각 분야 전문가들)만을 모아 우주로 보내는 프로젝트가 실행된다.

하지만 우주선 내에서도 감염자는 있었고('사람을 먹는'행동 외에는 모든 것이 정상이어서 감염자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그 안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참극이 벌어진다.

주인공과 그녀의 친구는 구명정을 타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결국 그녀도 감염자였고 친구를 먹어치운다.


4. 아주 보통의 결혼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한 인간과 외계인 부부의 이야기다.

인간인 남편은 외계인인 부인의 말을 믿지 못했고, 결국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의 말을 믿게 된다.

떠나고 나면 아무 소용 없어... 그리고 아무리 겉모습이 아무리 같아도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완벽히 대신할 수는 없어...


5. One more kiss, Dear

인간은 어째서 출생하고 성장하며 어째서 노화하는가. 그리고 어째서 죽어야만 하는가.

인간의 유한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


6. 그녀를 만나다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소설. 우리 사회에서의 트랜스젠더의 인권과 군대 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변희수 하사의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은 '변희수 하사를 기억합니다'이다)


7. Maria, Gratia plena

번역하면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이다. 2018년 프랑스 남부의 한 기차역에서 남성 경찰관이 자신의 아내와 두 아이를 근무용 권총으로 쏘아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하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다. 가정폭력과 그것이 한 아이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8. 씨앗

인간의 이기심과 과학발전과 산업개발에 따른 자연환경의 파괴, 그리고 대기업의 횡포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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