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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마우스 - 아트 슈피겔만

by 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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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트 슈피겔만이 13년에 걸쳐 완성한 그래픽 노블로 199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만화책으로 퓰리쳐상을 수상한 것은 이 책이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1. 개요


1) '마우스'는 그래픽 노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그래픽 노블의 문학적 위상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2)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참혹한 경험을 묘사한다.

3) 그림은 마치 판화를 찍은 듯한 느낌의 흑백이다.

4) 유태인을 쥐(마우스)로, 독일군을 고양이로, 폴란드인을 돼지로 표현했다.

(너무 끔찍한 내용이라, 아마 실제 인간으로 그렸다면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5) 이 책은 저자인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과 어머니 아냐 슈피겔만이 실제로 겪은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블라덱이 아티에게 이야기해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하기전 프롤로그에서 유년기의 아티가 친구들과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끈이 끊어진 아티를 친구들이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가버려 울면서 집에 가자, 블라덱이 "친구? 네 친구들? 그 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거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것으로 책이 시작한다.

나는 블라덱이 이 말을 한 컷을 보면서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어떤 시절의 이야기를 할 것인지 알기 때문에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울지... 이토록 강렬한 프롤로그가 또 있을까.


2. 생각해 볼 지점들


1)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보고 나서 한바탕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인 것이 주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일단 한번 관련 이야기들을 보고 나면, 불편하다고 피하지 말고 힘들더라도 제대로 역사를 들여다보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 최면에 걸렸던 사람들, 의미도 모른채 자각없이 시대의 흐름에 동조하여 가해자가 되었던 사람들, 옳지 않음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방관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당장 살기 위해 친구와 이웃을 밀고했던 사람들.

속절없이 핍박받다 사라져간 사람들, 살아남으려 발버둥 친 사람들, 살아남았기 때문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던 사람들.

목숨걸고 그들을 지켜주려(지켜준) 사람들, 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달라고 부탁하던 사람들.


그 때 그 시절의 그 사람들을 이야기만으로 '조금이나마' 이해했다는 건방진 말을 절대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2) 다른 세상을 살아온 아버지와 아들간의 간극


아버지인 블라덱은 나치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홀로코스트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만약(또 전쟁이 일어나 끌려가는) 대비하려 하고, 절약하고(뭐라도 가지고 있어야 뇌물이든 대가든 줘서 살아남을수 있다는 생각), 뭐든지 움켜쥐고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 면이 보인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심지어 재혼한 처까지도)을 신뢰하지 않고 의심하게 되고, 종전되고 수십년이 지나 안정된 환경에 살면서도 잘 때는 늘 악몽에 시달리며 소리를 지른다. 누가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냥 그건 지나간 과거일 뿐이라고 이제는 그만 잊으라고, 누가 그렇게 그에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인 아티의 내면은 어떨까. 물론, 교과서에나 나오는 그 끔찍한 역사를 부모가 몸소 겪은 것이기에 더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긴 하겠지만, 본인이 직접 겪은 것은 아니기때문에 '이제 그정도 했으면 그만 하라'는 마음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의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인 히스테릭함과 피폐함을 가지게 된 부모 밑에서 자란 그도 분명 피해자 일 것이다.

(본문에서 엄마인 아냐가 자살할 당시를 그린 만화를 보고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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