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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트러스트 - 에르난 디아즈

by 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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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는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에 출간되었지만 미국에서는 2022년에 출간되었고, 2022년 미국 매체 최다 선정 올해의 책, 버락 오바마가 뽑은 올해의 책,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을 뿐만아니라 202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퓰리처상의 소설부문은 미국작가가 쓴 소설을 대상으로 하며 문학적으로도 뛰어나야 할 뿐 아니라 시대의식이 있어야 하고, 중요한 사회적/역사적/도덕적 문제를 주제로 다루면서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윤리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이민 문제, 인종 차별, 빈부 격차, 정치적 부패, 환경 문제, 원주민 권리 등)

또한 미국의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은데, [트러스트] 또한 미국의 경제적 붐과 공황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 20세기 초반의 미국 월스트리트를 무대로 한다.


소설은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채권"이라는 제목의 소설 속의 소설이다.

이 소설 속의 소설은 벤저민 래스크라는 금융인의 이야기로 그가 어떤 식으로 주식과 금융자산을 사들이고 매각하여 금융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는지를 그리고 있다. 벤저민은 1929년 대공황에서 자신은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주식시장을 망가뜨린 냉혈한 은둔의 괴짜로 묘사되며 그의 아내였던 헬렌 래스크는 정신질환으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2부는 '채권'이라는 소설에서 자신을 파렴치한 악마로, 암으로 죽은 아내를 정신질환자로 몰고 간 것에 대해 분개한 그 소설의 (소설 속) 실제 모델 앤드루 베벨이 이를 바로 잡고자 쓴 미완성의 회고록이다.

전체적인 흐름(즉 앤드루가 금융계에서 천재적인 감각으로 자산을 증식시킨 투자자였다는 점)은 비슷하게 가지만, 그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다. 앤드루 베벨 자신의 집안은 뛰어난 사업가 집안이었고, 천재적인 수학자로서의 재능과 그를 바탕으로 한 선구안을 가지고 투자에 성공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무엇보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였던 밀드레트 베벨은 미치광이가 아니아 암으로 생을 마감한 가정적인 여성이었다는 것.


3부에서는 앤드루 베벨의 회고록을 대필한 작가 아이다 파르텐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르텐자는 앤드루와의 인터뷰를 통해 앤드루가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앤드루의 입맛에 맞게 회고록을 쓰고 (또 어떤 부분은) 창조해 낸다. 회고록이 미처 완성되기 전에 앤드루의 죽음으로 회고록 또한 미완으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지만, 파르텐자는 앤드루의 삶의 진실에 가까워 질 수록 그의 아내였던 '밀드레드'의 실제 삶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앤드루가 그토록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축소하고 왜곡한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4부는 훗날 아이다 파르텐자가 발견한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다.

1부, 2부, 3부를 읽으며 양파의 껍질이 벗겨지듯 조금씩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이라는 부부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밀드레드의 일기를 통해 다시 한번 그동안 보여졌던 것들이 과연 사실이었는지가 크게 흔들린다.




철저히 내 관점에서 소설이 흥미로웠던 점을 몇가지 꼽아보겠다.


1. 리뷰

워낙 유명했던 책이라 인터넷에 리뷰들이 넘쳐나고, 그것들을 읽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리뷰들 중에 나는 책 말미에 있는 번역가 강동혁님의 리뷰가 가장 재미있고 수긍이 가며 충실한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의 해석을 하기가 힘들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찾아보니 해리포터 시리즈와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번역하셨다고 함. 다 너무 재미있게 읽은 소설들)

책을 다 읽고 나서 꼭 '옮긴이의 글'을 읽어보시길!


2. '라쇼몽식 서사'


책 뒤의 추천사에도 그렇고, 리뷰글들에 '라쇼몽식 서사'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라쇼몽식 서사란 1950년 일본의 아키라구로사와 감독의 영화 제목에서 유래했다.

이 영화는 동일한 사건을 여러 인물의 서로 다른 증언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서사구조를 사용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로, 진실과 주관적 인식의 차이를 탐구하게 만들고 독자가 여러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스스로 진실을 판단하게 유도한다.


결국 이 책도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언뜻 주인공처럼 보이는 앤드루 베벨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밀드레드에 대한 진실찾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이야기를 각자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며 엎어치고 메치고 버리고 갈아끼워가며 책의 제목처럼, 어떤 이야기를 가장 신뢰할만 한지... 어떤 이야기가 진실일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었다.



3.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 말은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첫번째 문장이다. (이 부분이 너무 책의 핵심을 잘 짚었다고 생각하고 공감하기 때문에 가지고 왔다)

여러가지 기록 중에서 살아 남아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취급받는 '역사'가 되는 건 그 중 승자의 이야기라는 것.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도 후세에 전해져 내려오는 것과는 달리 그 때 그 시절의 사연과 과장,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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