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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un 04. 2023

25.남들 보기 이상한 부부라도 괜찮아

<틀대로 번듯하게 산다고 행복한 건 아닌데 말이지>


 부부의 형태에는 정답이 없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나는 기준과 정답이 있다고 잔소리 & 교육받으며 커왔기 때문에 이 틀을 깨고 나오기가 상당히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부부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사람의 성향이나 삶의 방식이 다양한 것처럼 그런 다채로운 사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족이니 더욱 복잡할 수밖에. 그래서 부부의 상황은 세상의 기준이나 타인에게 정답을 구할 수 없다. 진짜 정답은 두 사람 내부적으로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타인이 어찌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서 맞춤 조언을 해줄 수 있겠는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부부 형태에 대한 정형화된 기준이 어릴 때부터 주입되어 오는 듯하다.

 부동산 계획, 자녀 계획, 경제(노후) 계획, 성생활 계획까지 정형화된 틀을 따르지 않으면 너무나도 이상한 커플로 여겨진다. 이미 어릴 때부터 하도 주입당하다 보니 스스로가 주입받은 줄 인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당연히 결혼에 따른 출산과 경제계획까지 무의식적으로 척척해나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면 저런 한국 부부의 정석(기본적인 책임감 있어 보이는 삶의 방식)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너무 놀랄 노자의 상황이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에 있는 부부의 정형화된 삶의 방식이 옳은가 그른가는 내가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저 틀대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을 장담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자식에게, 혹은 배우자에게 너무 세상 잣대를 기준으로 억압하지는 말자.)


 저 틀대로 사는 것은 이미 살아본 선배인 부모님이 전수해 준 삶의 지혜로써, 인생의 큰 실패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 모두에게 맞는 행복을 만들어나갈 기준이라는 것은 확답하기 힘들다.


 사실 부부의 삶의 방식을 정형화된 틀에 끼워 넣으면 상당히 안정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이미 우리 부모가 그렇게 살아왔고 한국에서 굉장히 권장되는 가족운영 방식이긴 하다. 본인이 추구하는 다른 삶의 목적이 없다면 그냥 기본 틀을 맞춰 살기만 해도 얼추 평범하고 무탈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큰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니 정답대로 못 산다고 죄책감을 가지거나 무조건 무리해서 정답에 가깝게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부부가 지향하는 정확한 방향이 있다면, 기본 부부생활의 틀은 꼭 지켜야 하는 백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래 국제결혼이나 해외생활 등이 많아 저 오랜 기본 공식을 깨고 사는 부부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내가 속해있는 사회 그룹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있는 무리이기 때문에 저런 한국식 전형화된 부부의 삶의 형태를 선택하지 않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아마 내 삶의 기본 바운더리 바깥에서야 비교적 자유분방(?)한 가족의 형태를 발견하기가 쉬울 것 같다.


 나는 보수적인 공무원 집안 딸로 태어나, 안정적인 삶이 행복한 삶보다 중요한 미덕임을 주입받으며 컸다. 부모님이 원하는 국립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면서 서민층과 중산층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자유분방한 남편을 만나 한국의 정형화된 부부의 틀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삶을 얻게 되었다.


 우리 남편은 나에게 식사준비를 요구하지 않으며(본인이 원하는 음식이 있으면 알아서 사 먹고 오거나 배달시켜 먹음), 열심히 적금을 넣어 노후를 준비하거나, 공격적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하며 재산을 불리자고 하지 않는다.(물론 경제관념 제로라 돈 관리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긴 함)

 반드시 아이를 낳자는 생각도 없으므로 둘이서 재미나게 살고 있다.


 미국 서부에 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다. 주급을 받아 한주 쓰고 다음 주 주급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불행하게 허비하지 않는 사람들. 우리 남편은 이런 서부 스타일의 사람이다.

 본인은 동부 생활이 잘 맞았다고 하지만, 저 정도 한량적인 성격은 동부에서 적응하기 힘들 성격이다. 서부에서나 통용되는 성격으로 한국에서 살자니 상당히 특이한 종족으로 보인다. 그 태평한 성격이 부럽기는 하다.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생각이 전혀 없고 자유로운 마인드라 배우자로써는 상당히 괜찮다. 한국에서 기대하는 배우자로써 덕목기준은 내려놓고, 친구나 삶의 파트너라고 생각하면 꽤 적응해 같이 살만하다.


 내 남편인데도 내 눈에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남들 눈에는 어떠랴? 어쨌든 나는 자유를 얻긴 했으나, 가끔 이해 안 가는 구석의 의문까지 떠 앉고 살고 있다. K장녀(사실 난 장녀는 아니지만 형제가 어릴 때 기숙학교로 들어가는 바람에, 외동딸처럼 컸다.)로서 상당히 오랜 기간 성인이 될 때까지 어른들의 말을 하나도 거역하지 않고 고분고분 살아왔기에 이런 자유가 불안하기까지 하다. 사실 노후 준비 없이 오늘만 즐기는 삶이 무서우면서도 즐겁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먼 미래를 위해 착실히 투자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 행복한 사람도 있을 테고, 행복은 모르겠고 그냥 남들이 그렇게 하기도 하고 한국이 그런 흐름으로 흘러가니 별다른 생각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완벽한 미래 계획과 준비는 더할 나위 없이 잘하고 있지만, 당장 오늘이나 가까운 미래에 즐거울 것을 전혀 생각 못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한국의 정서상, 미래를 위해 현재를 굉장히 많이 희생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미래는 준비하지도 말고 욜로처럼 방탕하게 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부의(가족의) 형태는 정답이 없고, 모두 때라는 것이 다르며 상당히 다양한 방식이 있으니 어떻게 살면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지 스스로의 방법을 생각해 보고 강구해 봐도 좋을 것 같다. 

 한국 부부기준이 되는 가이드라인은 기본적인 삶의 외부 조건에 있어서는 실패하지 않게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에는 조금 인색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살아오며 하루하루 의심과 도전하는 마음으로 남들처럼 살지 않는 방법을 살고 있지만 대체로 우리 부부가 사는 모습에 만족하고, 10년이 넘은 아직도 남편을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며 즐거운 가정생활을 꾸려가고 있으니 믿어봐도 좋을 것 같다.

 남들처럼 산다는 것이 내 행복을 꼭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국의 부모님이 원하는 기준대로만 가정을 꾸린다고 정서적 행복까지 보장해 주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잘 가르쳐주었지만 행복할 방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팁을 주지 않았다. 아마 경제적으로 실패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행복을 포장한 형태로 살 수 있을 것이라 장담했을 듯하다.


 그러나 부모가 인증한 한국식 부부의 틀이 내가 원하는 완벽한 가정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주변에 그 틀대로 살아왔지만 행복이나 사랑이 없고 그저 힘들거나 불행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틀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보수적으로 동일한 삶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사회속에 있지만, 그 방법이 나에게 맞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부모님이 알려주신 부부의 가이드라인도 좋지만, 다 큰 성인으로써 이제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으로 이 가정을 꾸려봐도 괜찮다.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가정과 부부 관계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배우자와 협의하여, 한국이 지정한 정답에서 벗어나 사는 것도 방법이다.


 오히려 부모님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혀를 찰지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가정을 꾸리는 중이다.



 사실 부부의 관계는 둘이 맞춰 가야 하는 이인삼각 경주다. 내가 자유롭고 싶다고 자유로울 수 없고 둘이서 원하는 기준을 대화로써 잘 풀어야 한다. 

 사실 이 부부의 형태도 내가 원했던 가정의 모습은 아니었다. 남편과 맞춰 가고 이해하면서 중간점을 찾다 보니 이렇게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방법은 매해 달라지고 있고, 그것이 세상의 기준과 전혀 다를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방법을 위해 기꺼이 함께 선택해 나갈 것이다. 

 이 가정을 꾸리면서 내가 얻게 된 건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사는 용기이다. 
 나는 늘 남들과 똑같이, 그리고 세상의 기준 그 자체로 살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라, 이렇게 대책 없이 사는 것도 상당히 평화롭고 행복하긴 하다.

 이 가정을 꾸리는 것 외에 나머지 나에 대한 삶은 상당히 엄격한 생활로 유지되고 있으니, 가정이라도 평안해서 다행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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