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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un 14. 2023

27.배우자가 내편이 될 확률

<혼자가 외로워 결혼했더니 더 외롭다니 애석하군요>


  연애 관련 리얼리티 쇼를 보면, 혼자가 외로워서 연애를 원한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외로운 세상 한평생 함께할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 꿈이라는 사람도 많다. 지금은 괜찮지만 노후에 혼자 외로울 생각을 하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슬프게도 상대는 나의 외로움을 종식시켜 주지 못한다.

 게다가 결혼 후 배우자 덕분에 한평생 따사롭고 안정감 있는 가정을 가졌다는 사람을 몇 명 못 봤다. 주변 기혼자들에게 질문한 결과, 다시 돌아간다면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결혼 자체를 거부한 사람들도 꽤 많았다. (사실 다시 돌아가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비교적 잘 사는 커플을 보면 서로에게 무심하기도 하고 꽤 각자의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이다. 외로움에 발버둥 치는 둘이 만나 결혼하는 것보다, 혼자 잘 지내던 둘이 결혼해서 사는 경우가 더 안정적인 것을 많이 봤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사람은 아마 수많은 결핍을 상대를 통해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결혼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결혼 후 얻게 될 것만 생각하고 내가 이건 좀 잃겠다는 예측을 못한 것이다. 두 사람이 세상을 살면 혼자 사는 것보다 풍요로울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내 편을 하나 만들고 나 혼자만의 것이었던 것을 꽤 많이 잃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조금 더 편한 결혼 생활이 된다. 사실 배우자를 내편이라고 하지만 살다 보면 진짜 내 편인지 나는 체감하기는 어렵고, 남들 눈에만 우리 둘이 한편으로 보일 수도 있다.


 결혼 전 상상으로는, 결혼만 하면 한평생 전혀 외롭지도 않고 완벽하고 안정감 있게 살 것 같지만 오히려 결혼 후 사는 것이 허망하고 외롭다는 사람이 더 많다.(슬프게도 널리고 널렸다.)

 결혼 후에도 배우자가 내 편이며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정서적으로 굉장히 많은 희생이 있어야 배우자가 내 편이 될 수 있다. 이 세상 수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많이 노력하고 희생해야 얻을 수 있다. 그저 공짜로 손쉽게 내게 오는 것은 없다.


 나는 육아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자녀를 육아하며 가지는 인내심만큼만 배우자에게 쓴다면 대부분 큰 무리 없이 행복비스무리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자는 다 큰 어른인데 왜 나 혼자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나 억울한 소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공평함을 따지는 형평성 게임이 아니다. 

 순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더 준비된 쪽이 먼저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하면 된다. 그렇게 균형이라는 것이 유지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인지하는 것 말고 상대편도 다른 형태의 정신력과 에너지를 쓰고 있을 것이다.

 

 보통의 마인드로 결혼했다가는 배우자는 남도 못할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애시절처럼 나만 바라보던 존재가 결혼만 한다고 무조건 행복을 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고 상대에게 받을 생각만 한다면, 조금씩 그 관계는 균열이 생기게 된다. 뭐 대단한 것을 주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에도 침착하게 이해와 배려 하는 감정을 기본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원래 물질을 주는 것보다 믿음이라는 마음을 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결혼 생활 중 상당히 경계해야 할 태도는 내가 이 정도 희생했으니 너도 희생하고 배려하라는 강요와 바람이다.

 배우자를 무조건적인 내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냥 다 내려놓고, 마음을 넓게 가져야한다. 여기서 손해 본다 생각할 것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다른 면에서 그도 희생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확인할 길이 없으니 믿음으로 내가 선택한 배우자를 바라보면 된다.

 그리고 존재만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쓸데없는 의심이나 불평을 할 바에야 차라리 입을 닫는 것이 낫다. 

 긴 침묵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배우자를 밀어내고 싶지 않다면. 그저 내 성에 안 찬다고 내뱉는 이야기는 이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감정을 그대로 말로 꺼내는 순간 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만다. 평생 내편을 만들고 외롭지 않기 위해 결혼했지만, 오히려 남은 인생을 더 처절한 외로움과 분노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배우자가 내 편이 될 확률은 내가 하기에 꽤 많이 달려있다. 

 물론 상대편이 결혼하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이상적인 인간이 아닐 수도 있고 배신과 변질을 거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의 원인도 일부 안타깝게 나에게 있을 수도 있다. 

 나의 그릇이, 나의 인성이, 나의 조건에 맞는 사람은 그 사람이었을 것이다. 로또복권이 아닌 이상 나와 엄청나게 다른 백마 탄 왕자를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그도 마찬가지로 내가 공주는 어니었을 것이다.)

 사람은 꽤 끼리끼리 만나 결혼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멀쩡한데 상대가 이상하다거나 모든 원인이 상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아주 가끔 구제불능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일반 상식을 갖춘 보통 사람끼리의 결혼에서 누구 하나만 모든 잘못을 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결혼의 문제가 모두 상대에게 있고 배우자가 내 인생을 망쳤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도 당신을 안 만났다면 더 좋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뭐 애초에 부부 생활에 잘못 먼저 파고드는 것부터가 잘못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은 니 잘못 내 잘못 따지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부분 상황을 편안하게 내려놓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나하나 감정이입하여 시시비비를 따지면 자신만 괴롭다. 

 살면서 모든 관계에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상황을 무심하게 잘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슬기로운 부부 생활을 하는데 준비가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꼬치꼬치 따지는 습관이 있다면 당장 버리는 것이 좋다.

 이미 내가 선택한 배우자이니 좋은 부분을 생각하고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내 마음을 먼저 다스리는 것이 이 관계에 더 도움이 된다.


 내가 온전한 성인으로 정신이 건강하지 않고 자신의 (싱글)생활에 만족하지도 않으며, 현재 딱히 행복하지도 않는데 결혼만 한다고 무조건 상대편이 행복을 가져다줄리 없다

 내 인생의 만족과 행복이라는 숙제를 배우자에게 맡기게 되면 결혼 후 서로가 너무 힘들뿐이다. 내가 혼자서도 스스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때 상대를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기고 그로 인해 행복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어차피 서로 바쁘고 힘든 세상이니, 서로를 갉아먹는 말이나 행동을 자제하고 그냥 믿고 무심하게 바라보며 살면 나도 편하다. 더불어 이 무심한듯 편안한 시간이 쌓이면, 말을 안해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될때도 종종 있다.

 결혼을 안 했으니 유토피아 같은 소리 한다고 할 수 있지만, 10년 넘게 한 남자와 (생각보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다시 돌아가도 결혼은 할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사실 다른 사람과 결혼했어도 잘 맞추고 살 수 있었을 거라는 발칙한 생각을 해본다.



P.S.

 배우자를 내편으로 만들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 보통의 정신세계를 유지하고선 쉽지 않다.

 단단히 마음먹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남편을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여보 미안)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에게 돈 벌어와라, 집 청소해라, 나한테 애교 떨어라 같은 것을 명령할 수도 없고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존재만으로 나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그렇게 남편을 바라보면, 백수가 되어 날 통장으로 생각하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든, 말 거는데 대답을 안 하든 딱히 속상할 일도 없다. (고양이는 날 통장으로 생각하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말 거는데 대답을 하지 않지만 전혀 속상하지 않다.)

 그저 남편도 "존재만으로 완벽한 반려동물"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상당히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남편은 고양이와 다르게 인간이라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그 말들을 내 속으로 아끼고 수십만 번 안에서 곱씹어 없애버려야 이 남편은 내편으로 남아있게 된다.(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도 완벽하게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못 막을 때가 있긴 하다.)


 아무튼 친구 같은 남편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별달리 불편한 얘기를 서로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상대는 무슨 얘기를 해도 달라지지 않으니 날 선 얘기는 그냥 접어두자. 

 이제 기혼자로서 우리 생에 남은 과제는 이해와 받아들임이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만 괴롭다!

 그리고 나면 당신은 평생의 내 편 배우자를 얻게 된다. 

 다만 속이 좀 답답할 때가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나만의 일기장에 털어놔도 좋다. 그래서 일기는 꼭 써보는 것을 권한다. 화는 글로만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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