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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un 23. 2023

28.말을 아끼기 위한 글

<사실 나는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대나무숲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혼자 글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다. 

 말을 아끼며 살고 있는 내 삶의 분출구 용도로 쓰기 위해서였다. 하루에도 수천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며 내 마음속에 쌓인 감정을 말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한다. 

 입을 닫는 것이 늘 옳은 선택임을 알기 때문이다.

 평소에 말을 삼가는 스타일이라 할 말을 아끼고도 미치지 않고 멀쩡하게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일상에서 할뻔한 말실수를 많이 막을 수 있었다.

 할 말 못 해 답답한 감정도 글로 다시 한번 정제시켜 표현함으로써 내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타인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자기도 모른다. 나도 그럴 때가 많지만 글을 써 내려가며 차분히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왜 내가 불안했는지, 불편했는지, 미안했는지 스스로 납득하게 될 때가 많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 유독 말을 많이 한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퇴근 후 그날 했던 말들 때문에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있다.


 최근 말을 하도 많이 해서 후회스러운 마음이 드는 날이 몇 번 있었다. 그런 날은 퇴근하면서부터 참 마음이 무거웠다. 말실수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말에 대한 책임이 자꾸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말실수를 줄이기 위해 말을 아끼며 살고 있지만, 회사에 있다 보면 말을 안 할 수는 없다.

 나의 의견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그냥 함께 한탄하기를 나눠야 하는 상황도 많다.

 그러던 중에 내가 한 말에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거나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좋게 해결하기 위해서 나눈 조언이나 의견이지만 그것이 삶의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깊이 영향을 주는 것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하루가 끝나면 밤에 혼자 명상을 하며 그날 하루를 돌아본다. 특히 명상 중에서 하루를 거꾸로 돌려서 떠올리는 시각화 명상을 할 때는 상당히 괴롭다. 그 당시 별일이 아니었던 일도 밤에 생각해 보면 중죄 느낌으로 다가오곤 한다.


 요새 명상을 많이 하며, 스스로 반성을 많이 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대체로 밤중에 괴로운 마음이 자주 들곤 한다.

 나와 대화 나누었던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죄책감이 생긴다.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인데 어떤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내가 제대로 조언을 해주었던가 하면서. 

 그 책임감에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직 나에겐 그럴 깊이가 아직 없다는 것을 인지한다. 나 역시 하루하루 회사에서 버텨내기 벅차서 허우적대는 회사원 중 한 명일 뿐이다.


 그저 요가를 하고 명상을 통해 하루를 한번 더 반성하고 곱씹고 있을 뿐.

 명상의 시간을 통해 나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더욱 괴로운 마음이 많이 들어 이제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해묵은 감정을 다 털어내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이 시간을 견뎌내는 명상으로 언젠가 진짜 평화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아직까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내일은 더욱 조심하여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무슨 말을 해도 책임감 있게 조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내가 쉽사리 타인에게 무슨 말을 해도 될 자격이 되나 고민이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확실히 관계에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실수할까 봐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고, 편하고 자유롭게 있기 위해 혼자를 선호한다. 관계에 배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내가 나를 허용하는 범위가 굉장히 타이트하다는 느낌도 든다.

 다른 사람들의 실수가 불편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비교적 관대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나의 실수는 스스로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엄격함 때문에 괴로운 감정으로 나를 괴롭히며 살아간다.


 한 번은 친한 동료와 저녁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대체로 회식을 극도로 피하기 때문에 정말 특이한 날이었다.) 

 동료들이 취해서 업된 모습을 보는데 상당히 귀여웠다. 당당하게 즐기고 기분에 취해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이 굉장히 멋지게 보였다. 타인의 눈보다 지금 즐거운 나를 먼저 생각하는 그 용기가 나는 없다.

 나는 집 이외에 바깥에서 술 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두려워서 늘 스스로 억제하고 조절한다. 반면 집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음주를 즐기며 흐트러진 모습으로 지낸다.(사실 대학시절 생각해 보면 내가 술버릇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밖에서 사고 치지 말고 집에서 조용히 혼술 하는 것이 현명하긴 하다.)


 말은 안하는 것은 입이 무거워서는 아니다.

 내가 말을 아끼는 이유가 나의 두려움이라는 것을 안다. 말을 하고 싸움으로써 풀 수 있는 관계도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조차 피해버리고 싶다. 혹시 내가 실언을 할까 봐.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나를 용서해 줄까 걱정이 되고, 급기야 이 관계 자체를 잃게 될까 봐 두렵다.


 내가 작정하고 할 말을 할 때는 그 관계의 끝을 각오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대체로 그렇게 파국으로 치달았다.

 내 사주에 식신, 상관, 현침살이 있기 때문에 말을 상당히 날카롭게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정을 안하려고 한다.

 오늘도 날카로운 말을 숨기고, 조용히 혼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P.S.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미움 대신에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감정을 써 내려가면서 정신적인 해방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때로는 묵혀둔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내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친구도 없고 말동무 상대가 없더라도 조용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내려 가며 무료함을 달랠 수도 있다. 

 글쓰기는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외근 중 잠시 홀딩이 있을 때, 누군가를 기다릴 때, 긴 출장 시간 기차에서 무료할 때 나는 글을 쓴다.

 시간이 빨리 간다. 시간을 빨리 보내고 싶을 때는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

 물론 평소에는 글을 쓰다가 주말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리면, 오늘 뭐 했지 싶을 때가 있긴 하다.

 그리고 솔직히 글쓰기가 엄청나게 재밌는 일만은 아니라서,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루고 싶고 게을러질 때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너무 글만 쓰며 하루가 지나가면 그것도 참 허무하기도 하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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