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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un 24. 2023

29.여름엔 아아 대신 아티

<얼죽아의 민족이지만 카페인이 걱정이라>


 나도 20대엔 밤 10시에 커피를 마셔도 잘 잤다. 요즘은 저녁 9시가 되면 커피는커녕, 전자제품도 멀리하고 호흡과 명상을 하며 숙면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럼에도 깊이 잠에 못 드는 날도 있고, 새벽에 일찍 눈을 떠져 그냥 회사에 빨리 갈까 고민하기도 한다.


  특히 한 여름밤에 시원한 아이스커피의 맛을 즐겼지만 이제 그런 일탈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더운 여름밤 시원한 음료가 당긴다. 

 그렇다고 시원한 탄산음료를 마실수도 없다.(탄산의 카페인, 당분, 합성첨가물 등의 문제점 때문에 탄산을 먹지 않는다.)


 그렇게 여름밤 시원한걸 뭘 마실까 고민하다가, 아이스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아이스티는 립톤의 달달한 홍차믹스 파우더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려는 아이스티는 냉침이나 급랭으로 잎차를 내린, 당분이 없는 자연 잎을 우린 차를 말한다.


 홍차나 녹차에도 미량의 카페인이 있긴 하지만, 카페인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허브티가 있다. 허브티가 어렵다고 생각할 것도 없다. 그냥 서양에서 즐겨 먹는 전통차 정도로 생각하면 쉽다. 한국 각지에서 나는 우리 차 역시 외국인 눈에는 허브티로 보인다. 연근차, 연잎차, 감잎차, 질경이차 같은 우리 차도 건강하고 맛있는 것들이 참 많다. 

 허브티 중 하나로 민트티가 있는데 한국에 비슷한 박하차가 있다. 같은 속에 포함되는 품종이다.


 처음 급랭 차를 마신건 아주 더운 여름 일본에서였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홍차 가게가 많고, 가게에 들어가면 수십 가지의 홍차 중에서 마시고 싶은 차를 고를 수 있다. 뜨겁고 진하게 가향 홍차를 우려낸 뒤 쉐이커에 얼음과 차를 넣어 순간적으로 차게 만드는 것이 급랭차다. 

 급랭차는 커피로 치면 에스프레소와 비슷하여 향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물론 뜨겁게 내려 마시는 차가 맛과 향이 가장 좋다.)

 그 길로 나는 일본 백화점 티샵에서 여러 가지 블랜딩 된 가향차를 구입했다. 가향차는 녹차나 홍차에 꽃이나 허브를 블랜딩하고 향이 입혀져 있어 차를 향기롭게 즐길 수 있게 한다. 보통 냉침으로 내린 차는 향이 약하기 때문에 가향차를 이용해 만들어 먹으면 상당히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집에서 내가 즐겨 마시는 아이스티는 주로 냉침 법이다. 냉침은 잎차(티백도 가능)를 유리병에 넣고 하루정도 냉장고에서 천천히 우려내는 방식이다. 커피로 치자면 더치커피와 비슷한 추출 방식이다.


 하루 전날 미리 잎차를 병에 넣어놓기만 하면 다음날 퇴근 후 저녁에 아주 시원~한 차를 마실 수 있다.

 여름용 티로는 민트나 레몬이 블랜딩 된 차가 좋다. 민트는 굉장히 특이한 허브인데, 더운 날 먹으면 열을 내리고 추운 날 먹으면 열을 내도록 도와준다. 최근 구입한 녹차에 레몬이 블랜딩 된 TWG 차를 냉침으로 마시고 있는데 느끼한 식사 후 탄산 보다 더 상큼하고 좋다. 

 식사 후 입가심으로 콜라를 찾았다면 그 대신 아이스 민트티나 녹차에 레몬이 블랜딩 된 차를 추천한다.


 요 근래에 아베다에서 나온 컴포팅티를 냉침으로 먹고 있다. 늘 뜨겁게 마시던 차였는데 더운 요즘 냉침으로 한번 만들어봤더니, 특유의 감초가 굉장히 진하게 우려져 나와 단맛과 함께 과도하게 땀 흘린 운동 뒤에 마시면 순간적으로 기운이 솟는다. 당이 땡길때 초코 대신 감초차를 강력하게 권한다.

 아베다티를 만난 건 수년 전 룰루레몬 요가클래스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고 쭉 즐겨마시는 차가 되었다. 아베다는 세계적인 뷰티 브랜드인데 블랜딩차가 나온 다는 것은 역시 이너뷰티도 신경 쓰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국내엔 티백만 팔다가 이제는 루스티(loose tea/잎차)도 팔기 시작한다.


 가끔 기분에 따라 내 마음대로 블랜딩을 하기도 한다. 

 홍차에 콘플라워 꽃을 섞고 어울린만한 허브를 넣어서 내려먹으면 나만의 유니크한 티가 된다. 블랜딩차라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 원하는 허브를 이것저것 섞어서 입맛대로 찾을 수 있다. 

 가끔 욕심이 과해 허브를 이것저것 너무 많이 섞어서 한약처럼 진한 사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맛도 엄청나게 쓴데, 한약이라는 게 사실은 다양한 허브를 섞어서 먹는 약이니, 그저 이 DIY 블랜딩티도 약이다 생각하고 꿀꺽 마실 때도 있다.


 아직 국내 차 시장은 굉장히 작다. 차를 즐기려면 유럽이나 일본에 가야 했고 국내에선 차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요즘은 백화점에 많은 해외 차들이 구비되어 있으나 아직도 많은 제품은 직구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대부분 믹스커피를 마셨지만 지금은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듯, 지금이야 아이스티는 립톤 믹스나 동서 녹차 티백밖에 모르는 사람들도 머지않아 다들 다양한 차 세계에 빠져 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녹차 티백만 마셔본 사람들께 꼭 세작(녹차)을 한잔 내려드리고 싶다. 자연의 잎이 얼마나 맛있는지.


P.S.

 어릴 때 차가 너무 좋아서 신혼여행 때 어르신들 선물로 쿠스미티(대용량 홍차 루스티)를 사 왔다. 패키지도 예쁘고 무엇보다 상당히 비싼 차였다. 

 그러나 한국 중년 아재들이 고급차를 알리가 없다. 

 신입사원이던 남편이 직장 상사에게 쿠스미티를 선물했지만, 퇴사할 때 그 상사 서랍에서 포장도 안 뜯은 채 나뒹굴고 있는 쿠스미티를 봤다고 했을 때. 하~뭘 아는 사람에게 줘야 하는데. 저 비싼걸. (심지어 퇴사하는 거니 이판사판 훔쳐오라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파리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백화점 식품관 온갖 티샵들을 돌며 수십만 원어치의 한국에서 못 구하는 차를 양팔 가득 샀다. 그리고 체크인 시간이 안되어 호텔 로비에 짐보관을 맡긴 후 룸에 짐을 올려달라 요청 후 다시 쇼핑을 다녀왔다. 저녁 무렵 호텔 방으로 돌아왔을 때 여행캐리어 외에 쇼핑한 봉투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프론트에 내려가 내 짐을 찾아달라고 했지만 그런 건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고 불리하니까 갑자기 불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는 영어를 잘하던 직원이었는데 갑자기 영알못 시전.

 그렇게 내 마음속에 수십만 원의 프랑스 차를 도난당한 슬픈 사건이 떠오른다.


 한국 아재의 잎차가 뭔가요?부터 시작하여 프랑스인들의 홍차사랑&도난 사건...아직 주변 사람들과 차 문화를 나누기에 시기상조라 혼자 열심히 즐기고 있다. 그래도 요즘은 캐주얼하게 티세레머니를 즐길 수 있는 곳이 꽤 많아져서 즐겁다.

 사실, 글로벌 기업 스타벅스도 자사의 차사업 티바나 운영에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차가 커피처럼 대중화되기에는 상당히 매니아적인 측면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비슷한 카테고리인데 유난히 사람들이 차에 관심 없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알면 이걸로 사업 한번 해보고 싶은데 몰라서 그냥 차만 즐기는 소비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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