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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un 30. 2023

30.같은 회사인데 사람마다 온도가 다르다

<대충모드 빌런이세요?>


 누군가에게는 회사 일이 그냥 돈벌이 수단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책임감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자신의 아이덴티티 자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드라마에서처럼 일 자체가 자신의 적성에 맞고 일과 힘께 성장하는 것을 꿈꾼다. 적어도 취준생이었을 때 우리는 모두 일로써 성취감을 느끼고 성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 직장생활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 그들은 일탓, 회사 탓을 하며 자신의 일이 정성을 들일만큼 별 볼 일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함정은 이런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을 주면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팩트다.

 업무가 중요하다고 해서 모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일을 더하면 손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 그 일을 통해 능력을 개발하고 성장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회사일이라는 것이 매번 중요한 일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이 잡일을?' 싶을 때도 있다.

 하찮은 일을 맡게 되었을 때 스스로의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그 일 때문에 이제 모든 회사일은 대충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습관적으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되고 만다. 


 사실 사람들은 '대충과 정성'을 스위치처럼 잘 이동하지 못한다. 삶 자체를 대충이라는 키로 설정해놓고 보면 사실 일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을 '대충 모드'로 살 가능성이 높다.


 원래 사람의 디테일은 사소한 것에서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여 차별화를 보여주는가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런 모습이 쌓여 내가 탁월해지고 더 나은 곳이나 본인이 생각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갈 수 있게 된다.


 운이 좋아 처음부터 좋은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게 됐다고 다 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도 대충주의 빌런들이 판을 치고 있다.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이 일의 주인(책임자)이 나리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은 메인이 아니라 보조로써 남을 돕는 아주 작은 톱니바퀴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업무마다 다르지만 앞에서 직접 정면으로 맞아가며 달려가야 하는 일도 있고, 뒤에서 조용히 백업하며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일도 있다지만 기업에는 그냥 대충 아무 생각 없이 월급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한편 현재 상황이 안 좋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지금 현재 자기가 생각하는 중요한 일을 못하고 있다고 이 상황이 영원히 불변인 것은 아니다. 이것을 모두 회사 상황, 외부 상황으로만 돌려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문제가 될 뿐. 

 사람의 자리는 언제든 '내 자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현재 안 좋다고 미래에도 안 좋을 거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좋은 상황을 미래로 연결하는 것은 본인의 방치 밖에 없다.

 나는 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지만 지금 내 일이 너무 하찮아서 대충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매일 대충 사는 사람에게 시간이 흐른다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갈 수 있을 리 없다.

 

 "먹고살려다 보니 이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기에 그냥 월급만 들어오면 된다. 나는 대충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잡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적어도 회사에서 보면 이런 수동적이고 의타적인 사람들이 꽤 많다. 

 수치적으로는 80~90% 정도라고 한다. *파레토법칙이 여기서도 통용이 된다.

 함께 일하기 상당히 피곤하다.


 같은 일을 하지만 나는 그냥 서브일 뿐, 당신이 주체가 되어서 다 해결해 주세요 라는 마음으로 웅크리고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 일은 누군가가 주인이 되어 대체로 다 끌고 나가야 한다. 

 10~20%의 사람이다. 

 리딩하는 20% 일지 끌려가는 80%가 될지 본인의 선택이다.


 이런 온도차는 업무 형태가 다를 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팀에서 같은 일을 해도 사람마다 일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무게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일 하나 더 디테일하게 하는 것보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개인사를 돌보는 것에 우선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일단 내가 맡은 일들에서 빈틈없이 마무리하려고 개인사를 소홀히 할 수도 있다.

각자가 인생에서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같은 월급 받고 누군 더 고생하고 2-3배 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준대로 선택하면 된다. 

 삶에 중요한 것이 개인사인지 개인의 성장인지. 10년 뒤 세월이 흘러 내가 후회하지 않을 나의 인생 방향을 잘 선택하면 된다. (그저 가정도 대충 일도 대충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둘 중에 하나는 제대로 하고 있길.)


 사실 지금 편히 책임을 피해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할 것 없다. 10년만 지나도 본인이 대충 보내버린 젊은 시절과 현재의 무능을 후회하고 미래를 막막해할지도 모른다.


 오늘을 욜로~ 즐기며 대충 회사 다니면 미래에 골로 간다는 웃긴 말도 봤다.

 실제 회사에서 시간만 쌓고 무능한 상사들이 꽤 있다. 그들은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를 아랫사람 탓을 하지만 사실은 본인이 존경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남 탓이 아니라 본인이 인생을 낭비하고 자신을 방치한 죄다.


 평생 자기가 해온 일에서 실력을 키우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한 대가는 은퇴 후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전혀 다른 곳에서 돈벌이를 찾아야 하거나 혹은 못 찾고 비참함 속에 세상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런 비참한 중년을 방지하고자 젊은 시절을 뼈 빠지게 산건 아니다. 그저 매사 독하게 사는 건 내 성격이자 삶의 방식일 뿐이라 그렇게 지냈다.

 후회스럽고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지만 대체로 사실 만족하고 있다. 삶을 낭비하지 않아서.

 자식을 낳고 키우는 보람은 모르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나를 보석처럼 반짝반짝 만들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대리 시절, 갓 신혼 나는 매일 야근을 했다.

 나는 남편이 자고 있을 새벽에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 있으면 그는 이미 자고 있을 때가 많았다. 며칠 동안 깨어있는 모습을 만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삶의 시간이 빠른 반려고양이들의 청춘을 함께하지 못하고 이제 시니어로 내 곁에 있다. 그 시간들이 참으로 아깝고 너무 미안하고 속상하다.

 그러나 그 당시 내 커리어가 중요했고 이 일을 나 말고 누가 할까 싶은 마음도 많았다. 내 개인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해 주변에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 사이에 참으로 많은 것을 해냈고 후회 없는 시절을 보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워라밸을 왜 지키지 못하는지 상황을 탓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일들을 모두 제대로 해내야 하겠다는 것에 집중했다.

 특히 평생 공무원이던 부모님은 나를 아예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 일에 미쳐 사는지.(사실 일에 미친 건 아닌데 그 시절 어른들은 나에게 일에 미쳐있다고 표현했다.)


 모든 것을 밸런스를 중심으로 적절하게 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 후회 없이 나를 내던지며 커리어에서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일상의 시간들이 꽤 많다고는 생각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한번 제대로 미쳐서 일에 빠져보는 길을 선택할 것 같다.


 너무 애석하게도 한 명이 일에 미쳐있으면 가족들의 희생이 많긴 하다.

 그래도 오랜 시간 조용히 기다려준 남편에게 고맙다.

 그리고 늘 새로운 일을 한다고 하면 응원해 주고 별달리 터치 안 하고 그저 it’s up to you 라고만 해주는데도 엄청나게 힘이 났다.


 그렇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혼자 맘대로 살라는 것은 아니고 배우자와 잘 협의해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면 된다. 상대편이 불편하다면 잘 타협하고 조율은 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남편은 불편함이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들은 이제 다 큰 자식의 생활사에 대한 판단을 내려놓으시면 된다. 내 자식은 왜 이렇게 바쁜가. 너는 왜 남들처럼 여유 있게 못 사냐? 야근하면 야근 수당주냐?(안 줌. 포괄 임금제임)

 등등의 어르신들의 의견은 그냥 살포시 무시하고 지금 배우자와 잘 협의하며 살면 된다. 내가 부족한 것은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부분으로 보상과 보완하고 각자 부부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래서 내가 유지하고 있는 좋은 부인의 태도로는 잔소리 별로 안 하고 간섭 안 하고 연락 거의 안 하고 자유를 주는 삶을 남편에게 준 것이다.(물론 내가 바빠서 잔소리할 시간도, 간섭할 에너지도 없긴 하다.)

 누가 농담으로 이런 말까지 했다.

“전인미씨 남편은 바람피우기 참 좋은 조건에 있네.”

 오히려 나는 우리 사이의 적당한 자유와 신뢰가 그런 불필요한 소모(외부에서 위안과 행복 찾기)를 불필요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저런 개똥 같은 발언은 그저 무시하고 넘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부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야 서로에 대한 믿음과 행복한 삶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짧고 굵게 재밌게 대화하고 각자 일할 때의 시간을 존중하고 있다.


 남편의 지지 덕에 나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육아는 못했지만 2배 3배로 나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다들 부캐가 몇 개 냐고 묻고 있다. 돈 벌이는 하나지만 쓸데없이 부캐만 많다. 나머지 부캐는 경제력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게 아쉽지만.

 나도 현대판 르네상스맨이 되고 싶다.


P.S.

 열심히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이 하나 있다.

 내 열정이 누군가를 불편하고 짜증 나게 할 수도 있다.

 대학시절 상상마당 마케팅 스쿨에 있을 때였다. 그룹별로 과제 주제가 있었다. 열심히가 체질이라 팀을 리딩하며 과제를 잘 풀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익명의 저주 문자를 받았다. 

 니 나대는 꼬락서니 역겨워서 탈퇴한다고.(발신자제한으로 문자가 와서 누군지는 모름.)

 열심히 하는 것이 전체의 기준을 상향화해서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다 같이 잘하기보다 다 같이 대충 하고 전체 기준을 하향평준화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첨 느끼게 됐던 사건이다. 

 나는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어 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나는 못하지만 남도 다 같이 못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내 기준에서는 내가 부족하다면 스스로 더 노력해서 내가 성장하고 발전할 것 같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노력이 귀찮아 남들도 다 같이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직장생활에서도 종종 느끼고 있어서, 내가 무언가 더 해나갈 때 욕을 처먹기도 한다. 너무 앞서도 지탄받기 마련이다.

 한국사회에서 적당히 욕 안 먹고 앞서기엔 부조장이 최고다. 팀장보다 선임이 짱이고, 사장보다 부사장이 최고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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