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인미D Aug 05. 2023

32.일 더 하는 게 손해라고?

<대충 살아도 시간은 흘러가고, 남는 건 텅 빈 시간뿐>


 평생 노동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일 속에 인생이 있고 내가 있다.

 일과 나를 구분할 수 있을까? 일이 어쩌면 곧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반기를 들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일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쩌면 지금 하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철저하게 일과 나를 나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일과 나를 분리해 내는 것이 어렵다. 내 속에 어떤 것이 일인지 어떤 것이 내 일상인지 칼처럼 나눌 수 없고 둘은 한데 엉켜 내 삶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밖에 모르는 인생을 불쌍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삶에서 일이 곳곳에 스며든 인생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쉬면서도 일을 생각하고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포인트에서 일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일과 내가 대체로 하나라고 생각하고 일이 곧 나를 대표하니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이 나의 일인가?부터 시작해서 이것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빠르게 감정 소모를 포기하고 일에 몰입하여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내 에너지는 이 일을 타인에게 밀어내기 위해 쓰기보다 대체로 그 일을 훌륭하게 해결해 내기 위해 쓰는 효율을 가동한다.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일들도 스스로 방법을 찾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남의 일까지 더 했으니 손해 봤다는 느낌보다는 멀리 보니 늘 내 자산이 되어 남과 다른 경쟁력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내 일이 아닌데 해야 할 때 짜증이 안 난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그냥 해결해 버리는 것을 선택한다. 어째서 늘 범위가 애매한 일들은 내가 도맡아야 하는가 의문스럽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길게 보니 결국 나에게 손해가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 나는 사람에게 거리 두기는 잘하는데 일에서 거리 두기가 잘 안 되어서, 일이 망하면 내가 망한 듯 괴롭고 힘들다. 일에 대한 감정이입이 엄청나다. 

 이 정도 일에 대한 집착이면 일과 결혼한 여자로 볼 수도 있다. 이 집착은 회사일뿐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을 포함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일에 반쯤 미쳐살 수밖에 없는 원동력이었을지도. 


 워라밸을 딱히 나누지 않으니 생활과 일이 혼합되어 그냥 내 삶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20~30대 때처럼 일에 미쳐서 매일 야근하고 삶을 파괴하며 살고 있진 않다. 어릴 때는 솔직히 오히려 워라밸을 찾고 싶었고 일과 나의 생활을 완전히 분리하고 싶기도 했다.


 요즘은 칼 같이 퇴근을 하지만, 정서적으로 회사 일로 분리하지 않고 계속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시간들이다. 집에서도 회사일을 계속 생각하거나 계획하기 때문에 회사에 도착해서 많은 일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해내고 있다. 

 그리고 칼퇴근을 한다.(세상이 좋아져서 칼퇴한다고 아무도 눈치를 안 준다.)


 내 일만 하고, 귀찮은 건 미루거나 애매한 일들은 남일로 떠넘겨 편하게 살아도 좋다. 그게 직장인의 장점이라 생각하며 근무시간을 채우고 대가를 받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뭐가 남을까?


 일을 열심히 해도 인생과 시간은 흘러간다. 대충 해도 인생은 지나간다.

 시간이 지나서 뭔가 남길 원한다면 오늘의 시간을 대충 살다가는 나중에 되돌릴 수 없다. 남는 건 후회뿐.

 인생이란 오늘이 매일 쌓여 전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내게 맡겨진 일, 남이 기피하는 일조차 승부를 보면 언젠가 나에게 득이 될 때도 있다. 그게 지금 당장 눈에는 안 보이지만 10년, 20년 지나면 사람의 차원이 달리 보인다.


 같은 세월을 살아온 것 같고 저 사람은 나와 동갑이고 경력, 연차도 같은데 뭔가 달라 보인다면,

같은 시간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낸 것이다.


 시간을 붙잡는 방법은 없다. 그 시간 안에 내가 의미 있게 하는 것을 깊이 있게 채워 넣는 것일 뿐이다.

 시간을 텅텅 비워 흘러 보내면, 오랜 시간 뒤에 인생무상에 세월이 빠르다고 시간 탓을 할지도 모른다.

 

 오늘의 시간을 붙잡지 못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어떤 것으로 꾹꾹 눌러 담아 밀도 있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먼 미래, 시간을 놓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충 보내도 회사의 8시간은 흘러간다. 차장인데 신입사원처럼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빈 사람들이 있다. 대충 보낸 8시간이 평생 쌓여온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업무를 잘 해내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주변을 도와줄 능력도 없다. 

 옆에서 보기조차 안타깝다.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거나 심지어 스스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가여운 상태다.

 밀도 없이 살아온 '인생의 골다공증' 느낌이랄까?

 

 최선을 다해도 8시간은 흘러간다. 

 시간의 모든 구멍을 의미 있는 일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이다. 인생의 골밀도가 높은 사람이다.

 이들은 빈틈없이 8시간 이상을 매일 채우게 된다. 

 내 일, 니 일 편 가르기 하며 에너지를 쓰기보다 그 에너지를 모아 그냥 스스로 해결해 버리는 것에 힘을 쓴다.


 1년 후가 지난다고 해도 둘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금세 차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에는 한두 가지 정도 다르게 느껴지다가 그렇게 10년 이상이 지나면 탁월하게 다르다.


 회사에서 주어진 시간은 10~30년.

 제대로 보낸 사람과 대충 보낸 사람. 

 워라밸을 찾는 게 나쁜 것이 아니다. 업무 분장만 운운하며 내 일이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많은 것에서 의미와 배움을 찾는다는 삶의 태도가 있어야 삶의 많은 일들에서 밀도를 채워갈 수 있다.


 사람의 능력은 아주 고차원적인 프로젝트와 주요 업무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일들은 큰 뼈대라면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들은 그 골조를 유지해 주는 살과 근육 같은 작은 요소들이다.


 "나는 이런 사소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팩트는 이런 사람에게 중요한 업무를 줘도 능력이 안돼서 못한다. 자기 상상 속에서 능력의 객관화가 안된 과대망상증일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적성을 자꾸 다른 데서 찾고 싶어 하기도 한다.

 물론 일 말고 다른 데서 찾아도 좋다. 빠르게 새로운 꿈을 다시 찾아가는 것도 멋진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일을 계속할 거라면 '일은 일. 나는 나.'라고 자꾸 구분하는 것은 내 삶에 득이 될 것이 없다.


 사실 대체로 일을 대충 하고 미루는 사람들은 다른 데서 적성을 찾지도 못한다. 그냥 대충이 습관이고 여기 말고 다른 곳에 파라다이스가 있다고 착각한다. 파라다이스는 오아시스처럼 우연으로 발견되는 행복의 장소가 아니다.

 늘 내가 가진 곳 있는 곳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다 보면 이곳이 나의 파라다이스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사람은 정작 좋은 곳에 있을 때 좋다고 느끼지 못하며 그곳에서 벗어나 추억할 때 좋았었지~라고 떠올리게 된다. 

 지금이야 매일 사람과 일에 치어 여기가 지옥이다 생각이 들겠지만, 은퇴 후 나의 찬란했던 직장생활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 지을 수 있으면, 나는 파라다이스에서 살아간 사람인 것이다.


 이곳 말고 다른 파라다이스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야 실력발휘 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을 상상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여기서 별 볼 일 없다면 다른 곳에서도 할 말이 없다.


 화사는 누가 떠밀어서 다니는 곳이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곳에 입사하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본 것은 본인이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 해도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곳이라는 거다. 

 본인이 그중에 잘하는 일이라고 선택해 놓고 그런 곳에서도 실력 발휘를 못 한다면?

실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데 삶의 나머지 부분도 어영부영 대충대충일 가능성이 높다.


 실력 발휘라고 대단한 게 아니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할 생각 하면 별게 없다.

 그저 맡은 일을 미루지 않고 깔끔하게 끝내는 것이다. 물론 대단히 유능한 포지션이 필요한 업무도 있지만, 대체로 맡겨진 일만 무탈하게 꼬박꼬박 해내는 것만으로도 중간은 간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 중간도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다 큰 성인인데 무능과 게으름으로 점철되어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본인 통제도 안 되는 사람들을 보며, 저래 가지고 집에 가서 애들 교육은 어떻게 시키는지 정말이지 궁금한 사람들이다. 본인은 본능대로 막살지만 자녀에겐 엄격함을 강조하는 일관성 부족한 모습일 수도 있다. 


 다들 미루는 것이 습관이 된 세상에 맡은 일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미리 하는 것은 인생 미션일지도 모른다. 특히 주변에서 대충대충 쉬엄쉬엄 하는 것을 보고서 절대로 동요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큰 내공이 필요하다.


 남들이 자는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다.

 탁월함은 늘 남들보다 한발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백 걸음도 아니고 딱 한발 사소한 시간의 누적일 뿐이다.

 이게 지금 당장은 눈에 안 보여도 인생 전체를 관통할 때 당신은 남들과 달라 보인다. 이것이 아우라며 내공이다.


 본인의 우월성을 말로만 말하는 사람은 그 착각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유능함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인정할 때만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본인은 대충 하는데 엄청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이다. 게을러서 미루다가 하루하루 쫓기듯 사는 것을, 열심히 했다로 착각해서 '나는 인정받을 가치가 있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의 크기를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행동의 결과로 오해한다.

 그러나 자기 객관화를 제대로 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냉정하게 돌아보면 된다. 내 능력으로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금이야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 능력의 크기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먹고살고 있다. 그러나 회사를 벗어나 자신의 맨몸으로 세상에 부딪힐 때도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삶이 허무하고 외롭다면 시간을 대충 텅 빈 채로 흘려보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삶의 충만함은 남이 대신 채워줄 수 없고 내가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보낼 때 만들어질 수 있다. 

 매일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나의 시간을 빈번하게 만들어갈 때 나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대충 흘러가게 방치하며 버린 시간 속에서 만족이나 보람은 없다.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내 무의식이 진실을 알고 있다. 

 사는 게 무의미하고 재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는 스스로 충만한 시간을 만들지 않아서이다.
 내 인생의 시간에서 나의 것은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낄 때 허무함이 생긴다.


 그런데도 아직 뭔갈 더 하는 게 손해라고 생각이 든다면, 나중에 허무를 이길 수 있는 정신승리 방법이나 미리 공부해 둘 것을 권하고 싶다.


P.S.

 우리는 하루를 통으로 날리고 빈둥대는 나를 보며 휴식 잘했고 기특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오늘 하루 잘 보냈네?라는 생각이 들 때는 대체로 내가 어떤 일을 몰입하여 결과를 얻어낼 때이다. 하루의 시간을 촘촘하고 후회 없이 보냈을 때야 말로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무기력해서 쉰다. 쉬다 보니 무기력하고 내가 싫다. 그래서 더욱더 쉬게 된다는 굴레를 스스로 절대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단 한 번이라도 힘을 내서 무언가를 조금씩 더 해보다 보면, 노는 나보다 사랑스러운 공부하고 성장하는 나를 만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31.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친구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