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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Oct 09. 2023

6.취향의 노예, 난 호불호 강한 인간

<얇은 지갑과 값비싼 취향>


 갖고 싶은 것이 없다는 사람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어떻게 갖고 싶은 게 없을 수가 있을까? 

 나는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대체로 참아내는 것으로 마음을 욕망을 의식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소유의 욕망이 없는 상태가 때로는 상당히 부럽다. 자기와의 싸움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니.


 이 욕망은 내 직업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 있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다 이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갖고 싶은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을 했던 사람도 디자이너이다.


 나는 너무 갖고 싶은 것이 많고, 다 사댔다가는 진심 파산 각이다. 

 그 와중에 취향이 확고해서 아무거나 막 살수도 없다. 내 마음에 들기도 쉽지 않지만, 한번 마음에 들면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다. 수십 년간 짝사랑할 인내가 있다.


 진짜 원하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어이없지만 생각보다 내가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이다.


 갖고 싶은 것들은 대체로 너무 비싸서 막 살수가 없기에 마음속 위시리스트에만 담겨있다.

 이 위시리스트는 수십 년에 걸려 달성되기도 한다.

 사고 싶다고 당장 사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 사골 우려내듯 검토하여 결정을 내리니, 나는 쇼핑중독이거나 충동쇼핑이 아니라고 생각 중이다. 의외로 나는 신중한 소비를 하는 편이다.


 그렇게 그 물건을 구입하기까지 10년이 걸린 제품도 있고 20년이 넘게 걸린 제품도 있다.

 갖고 싶은 것을 10년 넘게 마음에 품는다는 것이 제정신인가 생각될 수도 있다. 

 10년 이상 어떤 물건을 짝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수년간 좋아하고 그리워했다가 잊었다가 또 생각나고 갖고 싶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스리는 그런 것이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다가 수년 뒤에 드디어 갖게 될 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10년 전에 샀으면 반값에 샀겠는데?'

 살까 말까 고민하며, 나에게 필요할까, 내 경제력에 사도 되는 것일까를 심사숙고하며 구입을 결정하기에 걸린 시간이다. 

 오랜 시간 고민해도 갖고 싶은 마음은 변치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충동 취향이 아니다. 

 그렇게 충동구매가 아닌 숙성 구매를 한다. (숙성구매라는 말은 없는 말이지만, 하도 오래 고민을 하고 사다 보니 숙성 구매라고 스스로 생각해 버렸다.)

 

 내가 마놀로블라닉 한기시를 처음 본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보석 달린 파란색 새틴 구두가 너무 갖고 싶었다. 그렇게 늘 마음속 위시리스트에 저장되어 있다가 작년에야 구입했다. 20년 넘게 한결같이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다. 20년 넘게 고민했으면 이제 가져봐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신발, 상당히 발이 아프다.(ㅠㅠ)


 많은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나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것을 샀다는 것과 자기가 그 물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왜일까? 정신머리가 없어서? 

 아니다. 그 물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극도로 낮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염원하며, 너무너무 갖고 싶은 마음으로 구입을 하면 그 물건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어디 위치에 어떻게 보관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기억되고 있다.


 나는 물건(브랜드)이나 쇼핑을 좋아하는 것치고는 생각보다(?) 소장품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떤 브랜드나 물건들에 탐미주의적인 취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엄청난 맥시멀리스트는 아니다. 솔직히 쉽게 펑펑 구입할 재력이 안된다. 그래서 신중한 고민을 통해 숙성 구매를 한다. 

 그렇기에 그 물건이 내 집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좌표 파악이 된다.


 지인이 그랬다.

 의외로 전인미는 사소한 물건을 안 산다고. 쓸데없는데 돈을 안 쓴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인미는 미.니.멀.리.스.트.라고 하며 그 애매한 평가에 서로 웃어버렸다.


 나는 작은 데서 돈을 막 쓰지 않는데, 평소엔 거의 지갑을 열 일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정말 사소한 잡동사니에 돈을 꽤 많이 쓴다. 

 나도 갖고 싶은 것을 과감하게 선택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이것저것 사며 물 새듯 돈을 썼다. 그중에 의미 있고 소장할 만큼 가치 있는 물건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대충 산 잡동사니 중에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물건은 거의 없다.


 쓸모없는 것을 구매하는 소비행동을 지양하고 나름 미니멀라이프를 살고 싶었을 때 오히려 취향에 집중했다.

 확실하게 갖고 싶은 것을 딱 하나 소유하면 대체품 여러 가지를 갖고 싶은 욕망이 줄어든다.

 무의미한 백가지 물건이 있어봐야 한 가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이길 수 없다.


 

 취향이 확고하니 쇼핑에서 선택의 초고속화로 시간을 상당히 아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에 있어서 고민하는 시간은 짧다. 나는 매장에 들어가 쇼핑하는 사람 중에 가장 빠른 시간에 결제하고 떠나는 고객일 것이다.

 요즘은 지정 매니저가 있어서 내게 어울리는 옷들을 미리 추천을 받고, 매장에 가서 준비된 옷들을 입어보고 어울리면 구매하고 그렇지 않으면 과감히 구입을 포기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것이 어울리는지 몰라 쇼핑 사냥을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의미 없는 아이쇼핑을 가장 싫어한다. 남들은 내가 쇼핑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구입할 목적 없이 구경만 하는 쇼핑의 시간이 상당히 아깝다

 여자 친구들이 이것저것 구경하는 쇼핑을 하자고 하면 나는 그 시간이 상당히 고통스럽다. 솔직히 왜 그런 쓸데없는데 시간을 낭비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아무도 나에게 쇼핑을 가자고 권하지 않는다. 

 내 쇼핑 스타일은 사냥감을 빠르게 포획하는 포식자의 모습일 뿐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쇼핑을 위한 리서치(아이쇼핑)는 인터넷을 통해 이미 집에서 완료했다. 현장에 나가서는 착장 하기, 확인하기, 결제하고 구매하기의 목적만을 이룰 뿐이다. 현장에서 이제 드디어 처음으로 아이쇼핑을 시작해 볼까라고 고민해보지 않는다.


 비교적 명품을 많이 사는 편이지만 샐러리맨 봉급으로 파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부분에서 소비의 욕망을 아예 없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택과 집중의 밸런스를 맞추는 소비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면 차라리 갖지 않겠다는 마음이면 쓸데없는 것에 들어가는 소비를 막을 수 있다.


 이런 직진 쇼핑 때문에 내 생활의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순간이 꽤 있다. 

 명품관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와서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 명품을 걸치고 호텔에서만 밥을 먹을 것 같지만 현실은 방구석 라면 한 그릇이다. 쇼핑 후 라면은 최고다! 

 백화점과 아웃렛 VIP이지만 차가 없다. 지하철과 버스, 택시를 타고 다닌다. VIP전용 주차장에 차량 2대가 무료로 발레파킹이 되지만 나는 뚜벅이다. 이 뚜벅이 VIP는 백화점에서도 예측하지 못한 고객일 것이다.

 

 샤넬 지갑을 지하철 개찰구에 태깅할 때도 느껴지는 감정이다. 내 손에 샤넬이 있지만 나는 지하철을 타는 뚜벅이다. 이런 모순적인 삶이 상당히 이상해 보일 수 있다. 

 우리 부모 세대라면 엄청나게 비판을 할 것이다. 

 몸치장 그만하고 집 넓혀 투자하고, 차를 사라고. 근데 그건 부모님의 행복이고 내 행복은 지금 내 몸에 부착되어 있는 것들인데...


 좋아하는 것만 엄선하여 선택하다 보면 오히려 생활의 물건이 컴팩트 해진다. 

 맥시멀리즘으로 보이지만 사실 자기 취향을 명확하게 알면 미니멀이 가까운 소비가 가능하다.

 좋아하는 물건을 선택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물건이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맥시멀리스트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미니멀리스트의 쇼핑 법이다. 


P.S. 1.

 사실 회사에 입고 갈 수 없는 드레스를 사면, 꼭 한번 입고 싶어서 호텔에 놀러 간다. 그래서 호텔에 갈 때 옷을 여러 벌 챙겨가서 상황에 따라 갈아입는 형태로 즐긴다. 호텔 방문복, 라운지 방문복, 조식복 등....

 좋은 곳에 딱 어울리는 좋은 옷을 입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이것이 바로 성공의 맛??? 

 물론 호텔에 갈 때 역시 차가 없으므로 특별히 택시를 탄다. 옷 가방에, 치렁치렁한 옷에, 불편한 구두를 신고 대중교통은 무리다.


P.S. 2.

 2022년 드디어 마놀로블라닉 한기시를 가졌다. 백화점에 가서 초록, 파랑, 실버, 그레이 등 온갖 색상을 다 신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사이즈가 없었다. 결국 보라색을 가지게 된 연유는 아래와 같다. 

 그때가 초여름이었는데 지금 사전 예약을 하면 내년 1월 중순에야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원래 명품이야 몇 달 전의 프리오더는 익숙한 일이지만 이런 스테디셀러조차 6개월 넘게 기다려야 하다니. 

 20년 만에 드디어 결심하고 사러왔다구요~6개월 뒤라니요?

 그때 마침 남편이 해외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런던에 사이즈가 있어서 바로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호기롭게 회사에 신고 갔는데 발뒤꿈치가 다 까져서 퇴근할 때는 다른 신발을 갈아 신고 왔다. 

 그렇다. 나는 차 없는 뚜벅이. 발이 편하기로는 레페토를 능가할 게 없다.

 사진에서 신고 있는 흰색 레페토는 무려 13년째 신고 있다. 유리구두 마놀로블라닉은 택시 타고 놀러 갈 때 발에 끼우는 용도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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