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걸까 회사원이 되고 싶었던 걸까>
초면에 만난 사람이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보통은 회사원이라고 소개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냐고 물으면 그제서야 디자인을 한다고 말합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 자체로 나를 남들과 다르게 구분 짓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단골 멘트1. “그림 잘 그려요? 초상화 좀 그려줘요” - 못 그립니다. 대학 입시미술 이후로 제대로 그림을 그린적이 없고 작업은 모두 맥으로 합니다.
단골 멘트2. “집 엄청나게 잘 꾸몄죠?” -no, 회사 다니고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서 집은 쓰레기통 같은데...
단골 멘트3. “공부 못해서 미술 했어요??” - 아니오 공부 잘했는데.. 그림이 좋아서.
단골 멘트4. "좋다면서 왜 그림 못 그려요?" - 살다 보니 안 그린 지 오래돼서.
단골 멘트5. "나 사업할 건데 로고 하나만 그려줘 봐. 명함도 해주고. 포스터도 쉽잖아?" - ..........
이런 오해의 시선 충족시키지 못하는 답변 민망합니다. 저도 그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월급쟁이 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내 업이 디자인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디자인할 때는 열정적으로 하고, 내 직업이 멋지기도 하고,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것 자체로 내 인생에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참 좋다고 '마음속으로 혼자 조용히'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교육을 하는 디자이너, 교수, 교사, 강사가 여기에 속합니다. 창작과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 작가가 많습니다. 공무원인 디자이너, 공공기관 혹은 국가기관 소속인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원인 디자이너, 크게 기업체와 에이전시(디자인 전문회사) 소속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중 회사원 디자이너는 단연 서비스직이라는 생각 합니다. 수많은 이해관계를 수렴하여 디자인 결과물로 만족시켜야 합니다. 에이전시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해,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사내 수많은 의사결정권자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디자인을 열심히 수정해야 합니다.
디자이너로써 크리틱(디자인 평가, 품평)에 감정을 이입하면 버티기 힘듭니다. 회사란 칭찬을 하는 자리가 아닌 어떤 실적을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어떤 시안도 한 번에 통과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기업에 소속된 이상 내 생각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전략을 반영하여 수차례 수정이 필요합니다.
크리틱은 누군가를 비평하는 것이 아닌 더 설득력 있고 전략적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물론 내 자식 같은 디자인이 욕을 먹고 있으면 가슴이 많이 쓰리기는 하지만 의연함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과 상반되는 의견으로 시안 수정을 해야 하더라도 일단 작업을 착수하면서 수정내용을 내 생각과 조화롭게 적용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무조건 안된다고 대답하거나, 디자이너가 아닌 비전문가의 의견이라고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면 나만 괴롭습니다. 그들의 모순되지만 다양한 의견을 디자인 언어로 해결해 내는 것도 디자이너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회사대표도, 작가도 아닌, 동료들과 함께 힘을 합쳐 성과를 만들어 가는 회사 사람입니다. 물론 주로 디자이너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어줘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는 합니다.
그렇기에 회사원 디자이너는 서비스직의 열린 마인드를 갖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내 창조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작가적인 마인드만 갖고 있으면 너무 힘들고 자괴감을 가지게 될지 모릅니다.
저도 신입 때는 너무 열정이 넘쳐 내 생각, 내 디자인을 이해 못 받는 상황이 너무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 오해는 학생 때 시작된 것 같아요. 학생 때 디자인은 너무 작가주의였습니다. 내 멋에 취해서 디자인을 하고 야작(밤샘 야간작업)도 많이 했습니다. 대학교 작업은 디자인과지만 예술가처럼 창의성 위주의 창작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신입사원 때 좌절을 많이 했어요. 회사 전략은 내 작업의 창조성을 방해하는 규제 같았어요.
그런데 생각을 바꾸면 원래 디자인이라는 것이 어떤 기준과 방향 아래에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었던 거죠. 그러려고 회사에 입사한 건데 조금 오랜 시간 오해하고 방황했던 것 같아요. 바운더리가 있는 건 제약이 아니라 전략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찾아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것도 역량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작가가 아니라 회사원임을, 내 포지션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창작하고 싶으면 작가가 되어야 했던 것이었죠.
이런 디자이너가 수동적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여 적용한다는 것은 또 내 나름대로의 문제 해결력과 디자인 안목을 거쳐야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결코 이분법적으로 이것을 수동적이라고 나눌 수는 없습니다. 어떤 틀 안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솔루션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한정 상상하기보다 오히려 틀 안에서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회사원은 바로 그 테두리 안에서 창의력과 센스를 부려야 합니다.
내 시안을 설득하고 주장하는 것만이 능동적인 디자인일까요? 많은 수정 의견을 반영하여 내 나름대로 다시 그것을 디자인 결과로 다듬어 내는 것 역시 능동적인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능동, 수동의 차이가 아닌 개발 방법의 차이로, '순수 작가의 크리에이티브로 이루어진 디자인 vs. 많은 이들의 전략을 담은 디자인'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에도 순수시, 참여 시가 있듯이 디자인에도 작가의 창의력을 표현하는 작가적인 디자인과 회사의 전략을 담은 상업적인 디자인이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회사의 전략을 담은 그 바운더리 안에서 크리에이티브를 표출하면 됩니다.
기대하는 것만큼 무한정 크리에이티브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틀 안에서 나름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내가 작가가 아니라 회사원이라는 것을 인지하면 내가 해야 하는 디자인 방향성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튼 회사원 디자이너로써 잘 버티려면 수용을 잘해야 합니다. 줏대가 없는 것과 다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지를 다듬는다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기획자도 의견을 전혀 듣지 않는 고집쟁이 디자이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구난방 의견들이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힘들더라도 하나라도 반영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를 높이 평가합니다. 여기도 사람이 함께 지내는 곳이기에 너무 내 디자인에 대한 아집을 부리면 다 같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늘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받아서 내 디자인에 적용해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직장생활에도 좋습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디자인이라면 그냥 일이다 생각하고 그것대로 타협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친 듯이 내 맘대로 창의력을 표출하고 싶다면, 집에 가서 혼자 개인 작업 하면서 한을 풀면 됩니다. 또 집에 가서 본인 거 편하게 하라고 멍석 깔아주면 안 하는 디자이너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회사 일에 내 욕망을 투영하려고 하면 모두에게 좋지 않습니다.
회사원으로써 작가 마인드를 장착하고 접근하면 괴로움이 시작되기에 나의 포지션이 어디인지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아이덴티티를 오해하면 회사에서 하는 디자인이 모두 무의미해 보이고, 디자이너로써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잃게 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디자이너가 존재하고 필요합니다. 그중에 내 자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디자이너의 자존감을 찾아갔으면 합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내가 몰입하고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기억하면서,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정성을 다해보면 좋겠습니다.
뒷이야기>>>>>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일 시키면 열받죠?
저도 속으로 욕하면서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의연하지는 못해요.
근데 디자인 일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게 윗분이 말도 안 되는 방향을 제시해서 어쩔 수 없이 수정을 하고 있지만 나는 몰입을 하고 있고, 심지어 재미까지 느끼는 저를 보면서 진짜 이것이 천직인가? 내가 변태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것으로 수정했는데 의외로 결과도 잘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속으로 또 나에게 칭찬을 해줍니다. '네가 개떡같이 말한 거 내가 찰떡같이 만들어 내느라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