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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Oct 16. 2023

46.활기찬 집순이의 일상

<딱 집에 있기 좋은 날씨다>


 날이 좋아지면 모두들 외출을 하고 싶어 들썩들썩하겠지만,

좋은 날씨를 보며 나는 다른 생각을 한다.


"아~ 딱 집에 있기 좋은 날씨다."


 이 좋은 날씨에 밖에 나가면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나는 오늘 평온하게 집에서 뒹굴거려야지.

 행복하다.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은 혼자 놀기이다.


 집순이라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향적으로 바깥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집에 있을 때 더욱 무기력해지기 쉽다.

 집순이에게 '집은 주 활동무대' 즉 가장 나답게 즐기기 좋은 홈그라운드이다. 활동복은 잠옷이다. 

 집순이는 집에 있을 때 가장 활기찬 사람이 된다.

 

 집에 있어도 혼자 제대로 놀기 위해서는 무척 부지런해야 한다. 쉬는 날이지만 기상시간을 조정하지 않고 새벽에 일어난다. 

 독서를 하고 골프를 친다. 다녀와서는 글을 쓰거나 넷플릭스, 독서를 순서대로 진행한다.

 요즘 생긴 취미(?)는 아침 먹기이다. 어린 시절에도 아침은 안 먹었고 직장생활 내내 아침을 먹지 않았지만 최근에 주말 아침에 밥 먹기가 아주 재밌는 일탈이 되고 있다.


 나에게 아침을 먹는 것은 자기 관리가 안 되는 느낌이 있었다. 난 공복을 찬양한다. 

 배가 부르면 일을 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말에는 집중할 일도 성과낼 일도 없지 않은가? 새벽부터 공을 치고 왔으니 아침을 먹는다. 건강식은 아니다. 라면이다. 

 제대로 즐기면서 놀기는 '길티플레져'만한 것이 없다. 아침 라면, 건강에 무척 안 좋겠지만 행복하면 됐다.


 이렇게 실컷 놀고 시계를 봤는데 11시다. 이 순간 다시 한번 가슴이 뛴다. 한참 놀았는데 정오도 안 됐다니. 배가 부르니 누워서 책을 보다 보면 스르륵 잠이 든다. 

 꿀맛처럼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도서관 가기, 밀린 빨래 하기 미션을 한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넷플릭스를 보다 보면 늦은 오후가 된다. 

 

 이제 요가를 할 때다. 요가를 하고 촬영을 끝내고 나면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났다.(요가 영상은 개인적인 기록용임. 역시 혼자보기 및 비공개 인스타 업로드용이다.)


 지금까지도 제대로 신나게 놀았지만 대망의 놀이 타임은 지금부터다. 

 세상 가장 재밌는 혼술타임

 보고 싶었던 넷플릭스와 유튜브 영상과 함께 혼술을 즐긴다. 신나게 혼술 시간을 보내면 밤에도 꿀잠을 잔다. 오랜 시간 불면이 있었지만, 밤시간 혼술타임으로 인해 꿀잠을 자게 됐다.

 그 와중에 명상을 들으며 잠에 든다. 반쯤 취해 명상을 시작하다가 언제 잠드는지 모르게 잠 속으로 빠진다.

 음주명상이라니 상당히 기이한 취미지만, 이 리추얼이 있어야 잠에 잘 든다.


 하루종일 혼자 놀면 무료하고 심심하지 않을까? 

 사람에 따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혼자 놀기 위해 많은 취미들을 개발해 왔다. 물론 그런 취미를 배우는 과정에서 바깥활동(교육)이 불가피했지만 장기적으로 혼자임을 가능하게 해 주기 위한 일종의 투자였다고 생각했다.


 뭔가 무기력하고 처지는 느낌이 들 때, 요가를 한번 더 한다. 주말에 요가를 여러 차례 나눠서 하기도 한다.

 요가는 집에서 혼자 놀기 위해 정말 잘 배웠다 생각이 드는 취미 중 하나다. (요가를 취미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정신이 무기력해질 때는 머리서기를 하면 힘이 생긴다.

 뭔가 무료할 때는 요가 동작들을 몇 가지 이어간다. 몇 해 전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것은, 정말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혼자 건강하게 놀기의 정점을 찍어준 활동이다.

 몸을 찢고 구기고 몸을 가지고 노는 것만큼 유익한 놀이가 없다. 다음날 근육통이 생기면 오히려 뿌듯한다. 오랜 시간 요가를 했더니 웬만하면 근육통도 안오기 때문이다.

 

 혼자 요가하기는 누군가에게 요가를 배우기 위해 인파를 헤치고 요가원에 갈 필요가 없다. 혼자서도 안전하고 즐겁게 나를 가르치며 챌린지 하며 수련을 할 수 있다. 내가 선생이자 학생이다.


 집에 있다고 무기력한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엄청나게 활기 있게 보낸다. 오히려 남에게 기를 뺏기지 않고 오롯이 나를 즐기기 좋다.

 내가 원하는 하루를 완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들이다. 일주일에 딱 2번. 그나마 남편이 놀러 가자고 조르면 일주일에 1번만이 혼자 놀기를 완성할 수 있는 날이다.

 24시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퇴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럴 깜냥은 아직 안되고 주말이라도 혼자 집순이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이렇게 잘 놀고, 잘 쉬고 월요일에 회사에 가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유리처럼 맑은 정신이 일에 몰입하기 최적의 상태로 회복된다.

 어떻게 보면 회사생활을 잘하기 위해 잘 충전하는 주말시간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름 충전도 되고 혼자 하는 유흥의 시간이 무척 만족스럽다.

 쓸데없이 밖에 나가 고생하고 에너지를 빼고 싶지 않다.


 혼자 재미있게 못 놀아본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시간이겠지만...방법을 알게 되면 너무너무너무 재밌다.

 

 집순이로 하루를 신나게 놀면 이득이 많다.

 심신이 모두 건강하게 회복되는 상태를 경험한다. 집에서는 놀면서 컨디션 관리도 할 수 있고 놀다가 지쳐 잠을 자도 되고 차려입고 꾸미지 않고 대충 잠옷만 입고 편하게 있을 수 있다.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히던 일과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오로지 조용히 혼자 놀 수 있는 자유~

 물론 사람에 따라 가족구성원이나 생활 상황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겠지만, 혼자 노는 시간은 어떻게든 잘 확보해야 한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혼자가 된다. 

 혼자임을 못 견디는 사람으로 적응해 살아버리면 나중에 정말 혼자일 때 남은 삶이 괴롭게 된다. 젊어서 힘 있고 시간 있고 돈이 있을 때 혼자 잘 노는 사람이 되면 나중에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할 것도 없고, 혼자가 된다고 해도 인생을 아주 맛깔스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사실 혼자 즐기는 것이 진짜 인생의 맛이다.

 그 안에 슬픔, 외로움, 기쁨 모두 혼자서 다스리고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알게 된다. 자꾸 남과 바깥 상황에 기대기만 해서는 나를 데리고 제대로 즐겁고, 재밌게 살아내기가 어렵다.


 P.S.

 변화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모든 스케줄이 루틴처럼 이루어진다. 현대판 칸트처럼 주말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최근에 굉장히 유동적으로 주말 유흥시간들을 운용하고 있다. 

 꼭 요가는 오전에 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낮잠은 아침에도 잘 수 있다거나.(낮잠은 정오 이후에 가능하다는 규칙은 없잖아. 오전 10시에도 낮잠은 잘 수 있다.) 오늘도 오전 10시 책을 읽다가 짧은 낮잠을 잤다.

 요가 시간을 오후로 미루니 식사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평생 안 먹던 아침식사를 주말아침에 시작하게 됐다. 

 이것이 별것 아닌데, 왠지 짜릿하게 재밌다. 너무 사소한 일탈이라 어이없지만, 내가 설정한 삶의 방식에 금기를 깨는 맛도 보통 재밌는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게 바로 혼자 노는 맛이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스스로 규칙을 깨는 일탈.

 사실 혼자 잘 못 놀 때는 규칙만 수백만 가지였다. 그러나 혼자의 장점이 뭔가? 계획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 속으로 타협만 하면 된다.


 다들 혼자 놀기의 백미를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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