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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Nov 04. 2023

49.자기 연민의 고백

<울지 마. 네가 당당해지면 좋겠어.>


  나의 회사생활은 참으로 전쟁 같았다.

  열정적으로 미워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열정적으로 싸우고, 열정적으로 열망하며!


 이제 흐르는 대로 살고 싶다. 좋은 대로 싫은 대로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나의 지옥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싶은 나의 "까탈스러움과 예민함"에서 시작된다

 다~내 잘못이라는 거다. 내가 스스로 지옥으로 나를 밀어 넣고 있었다.

 탕비실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개인 텀블러들, 마시다가 치우지 않고 대충 올려놓고 간 빈 커피컵들, 화장실 선반에 널려있는 개인 위생용품들. 이런 사소한 것까지 나의 신경을 긁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탕비실에 남들이 전날 먹다 남긴 커피컵들과 아무렇나 두고 간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즐겁기보다 한숨을 쉬었다.(정말 대인배들은 이 포인트에서 감사와 행복을 느꼈을 테지만, 나는 소인배다.)

 화장실 선반에 개인 용품을 아무렇게 던져놓은 것을 보고 대체 왜 공공 공간을 개인공간처럼 막 쓰는지 그 무례함에 짜증이 났다.


 아무것도 아닌데, 혼자 상당히 picky한 상태였다.

 그냥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흘러가는 대로~ 신경 안 써도 되지 않나 싶은데. 모든 것을 바로 잡고 싶었다. 남에게 피해가 없도록. 올바른 형태로.

 (맘 편히 생각하면 조금만 기다리면 청소 여사님들께서 모든 것을 정비하시는데 뭘 그리 예민했나 싶다.)

 

 남들의 공공예절 따위야 어떻든 그냥 나는 즐겁게 나에게 집중하며 살면 될 텐데 타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의미 부여하여 속으로 늘 화를 내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게 편했고 그러면서 늘 행복했을지 모른다.

 난 이 바꿀 수 없는 다양한 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매 순간이 지옥일 테니까.

 아무도 이런 불편하고 사소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매번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나라서 짜증 나고 내가 가엽기도 했다. 내가 가여워지면 그때부터 엄청난 우울에 빠져든다.


 사실 나를 가엽게 여길 필요가 없다. 별것 아닌 것에 의미 부여하는 나약함을 인정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세상은 각양각색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유독 까칠하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나는 뭐든 바로잡고 싶은 결벽증이 있었다.(청결의 얘기가 아님) 올바른 행동과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결벽성이었다.


 싫으면 밀어내려고, 좋으면 좋은 티 내고 그걸 가지려고, 유난히도 세속적으로 노력했다. 

 이렇게 살기 위해 얼마나 매 순간 괴로웠는지 안다. 능력을 뽐내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친 모든 시간이었다.

 그럭저럭 잘 해내기는 비교적 쉬었다.

 남들보다 미리 준비하고,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끝까지 미루고, 마감에 쫓겨 대충 하다 실수하고, 게을러서 포기하기 때문에. 

 나는 세상을 쉽게만 생각했다. 내가 손 뻗고 움직이면 대체로 나의 것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오며 내가 노력을 하면 사실 못 가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더 지나치게도 최선을 다했고 매 순간 나를 너무 쥐어짜며 괴롭혀왔다. 

 시간의 기다림이 있기는 했지만, 끝내 원하던 것을 못 가진 적이 없고 매사 하고자 하는 건 다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움직이면 세상은 대체로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난 날카로운 칼 같았고, 차가운 얼음 같았다.

 못나게도 나약하고 게으른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부드러운 두부처럼, 따뜻한 엄마처럼, 말랑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처럼~자연스럽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엄마는 따뜻했고 고양이는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지금 나는 너무 세속적이고 속물스럽다. 

 지금 이런 성과를 내야 하는 세상에서는 무능은 죄악이고, 게으름은 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꼭 성과를 내야 할까? 

 무능과 게으름은 죄일까? 

 나는 요즘 이 가치를 달리 생각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물론 회사 CEO관점에서는 죄송합니다만, 팀장님 입장도 이해합니다만, 동료의 무능 탓으로 대신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팀원들에게 죄송합니다만.)

 사람은 원래 능력치도 다양하며, 인간성의 폭도 다양하다. 

 남이 나 같은 능력과 속도, 나 같은 배려를 가지기를 기대하며 이 지옥은 시작되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무능하고 이기적일까? 같은 판단으로....


 이런 수학적인 계산 마인드로는 도저히 이해심도 생기지 않고, 지금 삶이 행복해질 리도 없다.

 나는 경쟁하는 이 사회를, 승진과 성공의 가도를 달려야 하는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행복할까? 이 자리에 머물며,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시간 속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람은 모두 다 다르고, 속도도 다르며, 능력치나 개성이며 하고 싶은 꿈과 가치관의 방향도 제각각일 텐데.


 나는 삶을 즐기며 다른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방법을 알고 싶다. 

 내 프레임으로 재단하거나, 편견으로 판단하며 한숨 쉬고 싶지 않다. 그럴수록 마음이 너무나도 지옥이며 나에 대한 연민만 커지고 있다.


 나는 너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과주의 인간이 된 것이 아닐까? 

 학생시절, 각양각색의 다양한 친구들을 아무도 미워한 적이 없다. 다채로워서 모두 다 사랑스러웠고 나는 대학의 모든 시절이 행복했다. 그리고 모든 이들로부터 말도 못 할 관심과 사랑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매일같이 맘 속으로 전쟁하고 미워해야 살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한심하게 여기는 마음으로는 당최 행복하기는 힘들다.


 나의 은퇴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은 이 회사 생활을 의미 있고 평안하게 보내고 싶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옹졸함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모든 직장 생활을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있는 그대로를 인정을 해보고자 한다.(용서와 이해까지는 아직 좀 어렵다.)

 

 무능과 무례는 죄일까? 이것은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다. 게으르고 싶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사실 이타심이야말로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생겨난 성향이긴 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모두 개인주의인 것은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아직 미성숙한 인간이다. 자신의 본능을 먼저 챙기는 현상을 이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인간사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무례에 화가 나는 이유는 내가 배려해 줬는데 나에게 그 배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였다. 그러나 꼭 타인도 나에게 예의와 상식을 갖춰야 할까? 

 타인을 재단할 필요 없다. 내가 예의를 지키는 것은 내가 그렇게 살기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예의를 지키고 배려를 하면 된다. 돌려받을 계산을 하는 순간 서로 불행해니 지니까.


 미움과 배척만이 정답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열고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려고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기엔 너무 지친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며 그 인생을 판단할까?


 요가 수련을 할 때 마음속에 드는 불편한 감정을 없애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인지하고 흘러가는 대로 두라고 한다. 우리도 세상을 살며 불편한 모든 것을 없애고 바로잡을 필요가 없다. 그럴 수도 없을뿐더러.

 그저 인지하고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된다.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면서.


 나의 악착같은 모든 시간을 보상받고 싶듯, 남들도 열심히 살아주길 바랐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헐랭이도 필요하다. 모두가 악착같은 사람이라면 세상이 얼마나 빡빡할까? 

 헐랭이의 유연성도,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심도, 세상 다양한 순간에 꼭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내가 판단할 이유가 있을까?


 이 세상에 인간이 열 명이 있다면 십인십색, 백 명이 있다면 백인백색.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내가 키우는 세 마리의 고양이 모두 너무다 개성 있게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나로 통일하고 바로 잡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있는 대로 인정한다.

 그들이 모두 다르고 다양한 모습들도 제 각각을 사랑한다. 이 세상에 십인십색이 아니라 천인천색이 있어도 나는 모두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싶다. 고양이의 다채로움을 인정하듯이.


 다양하다는 세상 이치를 인정하고, 바로잡고 고치려고 헛마음 쓰고 싶지 않다.

 미움은 이해보다 괴롭다. 이해를 통해 인정을 하면 미움보다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하지 않을까?


 요새 우울한 이유는.

 나는 지금 자기 연민에 심각하게 빠져있었다. 

 저런 사람과 일하는 나 불쌍해, 저런 애들이 못하는 모든 일까지 수습하며 고생하는 나 가여워, 일이 너무 몰렸어. 이렇게 고생하는데 아무도 알아주고 위로해 주지 않는 인생 슬퍼.


  그러나 남의 완벽성에 기대할 필요가 없다. 

 나 스스로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의연하고 당당해질 때, 나는 늘 자신감 넘치고 멋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저 남과 비교할 것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서, 멋지고 수려하게 해내면 될 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안정화 & 정상화시켜 내 생활을 잘 가동할 때 나는 당당했고 멋졌다. 

 나는 나 잘난 맛을 빨리 되찾아야 자뻑하며 행복할 수 있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을 때는 얼굴조차도 세상 못 생겨 보인다.




 요즘 몹시 초라하고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 못난 말과 행동을 했기에, 나는 더없이 많은 고민을 했다. 더 이상 미움에 빠져 나를 괴롭히지 말자고.

 그저 중간자 입장에서 세상은 다양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된다. 


 늘 품위를 지키고 싶었지만 요새 너무 품격이 떨어져, 그와 더불어 내가 너무 못나 보인다. 

 명상을 하며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그 감정을 제거한다거나 바꾼다가 아니라 그저 그렇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듯이 있는 그대로 두고 싶다. 불편한 건 인지하고 흘려보내면 되고 감정을 실어 괴로울 필요는 전혀 없다.


 보고 싶다. 내가 아끼던 육아휴직 간 후배. 나를 있는 그대로 환호하며 사랑해 주던 제자들.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 주던 모든 이들이 그립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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