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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25. 2024

11.남편의 제안. 89만원까지만 쇼핑해!

<패션에 미친 남자덕에 호강해 보네.>


지난 2023년 12월. 백화점 VIP 퍼플 등급의 유지를 위해 남은 금액은 89만원. 1년간 소비 금액을 통해 내년도 VIP 등급을 산정하는 기간은 단 4일이 남았다.

4일 이내 89만원을 채우면 내년에도 퍼플 등급이 된다.


평소에도 갖고 싶은 것은 미루지 않고 사온덕에(?) 4일 만에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것이 없는 남편이었다. 

그러나 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숙성구매를 지향하므로 갖고 싶은 것은 한가득 있다.

안사면 그만이지만 또 사려고 한다면 제대로 된 한 방을 지를 것이므로 남편은 상한선을 제안한다. 89만원까지만 자기가 내겠다고. 차액은 내가 결제하라고.


평소에도 남편은 나에게 선물을 많이 사준다.

퇴근길에 그냥, 혼자 여행을 갔다가, 출장 다녀오는 길에, 지나가다 보여서...그러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남편이 얼마를 버는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월급의 여부를 알지 못한다. 이 정도 선이면 보통은 이혼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정 살림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지만, 남편은 나에게 패션을 선물하고 있다.

결혼 초에는 이걸로 문제가 있었지만, 사람을 바꾸기는 힘들고 나는 남편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기로 했다.

나에게 돈이 아니라 선물을 주는 존재로.


아니 그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살다 보니 이쪽이 정서적으로는 더 이득이다.

남편이 열심히 돈을 벌어와 나에게 다 주고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고 둘이 알뜰살뜰 모으는 것은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 포인트에서는 이런 사소한 즐거움을 놓치게 될 수도 있겠다 싶다.(맞다. 정신승리 중이다.ㅠㅠ)

남편은 예기치 못한 선물을 잘 사 온다. 나라면 이 정도는 안 샀을 거 같긴 한 좋은 패션을 선물하며 본인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생활을 한다. 그가 쇼핑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기 것이 아닌 내게 줄 옷을 사는 것조차 굉장히 즐거워서 하고 있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쇼핑이라 딱히 뜯어말리고 있진 않다. 


돈을 어떻게 대하고 운영하는지에 따라서 부부사이에 마찰이 생길 수 있다. 한쪽이 지독하게 구두쇠라면 상대편은 고통이다. 그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

우리 남편은 경제관념은 없지만, 그 비용에 일부 와이프를 위한 선물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남편에게 월급이 아니라 고급 패션과 쇼핑의 기쁨을 받고 있다. 그가 혼자 자기 월급을 다 썼다면 나도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어쩌면 이미 남이 되어 돌싱라이프를 살고 있을지도...


경제상황이 어려운 편이 아니기에 남편이 번 돈을 없는 셈 쳤다. 어차피 내가 결혼 안 하고 싱글로 살아도 혼자 벌어서 이렇게 써야 했을 비용이다. 남편이 숟가락 하나 얹는 건 뭐 일도 아니다. 

게다가 수시로 깜짝 선물과 기쁨을 주지 않는가? 나의 쇼핑 메이트이자 퍼스널 쇼퍼다.


오늘도 남편은 퇴근길에 옷을 사 왔다. 얼마 전에 내가 이쁘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옷이다. 거기에 어울리는 다른 것도 포함해서 선물이 한가득이다.


남편이 "여보 제발 이거 입고 나와줘."라고 했다.

내 대답.

"여보 우리 따로 살아? 뭘 자꾸 입고 나와 달래? 어디에 나타나라는 거야?"

우리는 탐미주의자다. 아름답게 꾸며진 모습은 행복이자 평화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서로 자기 자랑으로 끝난다. 

남편은 이렇게 멋진 옷을 사 온 자기 안목과 센스를, 나는 이렇게 아무거나 실험적인 옷조차 소화하는 내 스타일을.


이게 사실 다 내 잘못이다.

나는 어릴 때 짠돌이와 패션이 후진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20대에 배우자를 선택하는 건 참 이르고 섣부른 일이라 생각한다......통이 큰 것과 재력이 뒷받침하는 것은 다른 말이다. 통만 크면 대단히 피곤하다.)

통이 크고 옷 잘 입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한 건 내 선택 아니겠는가? 사실 결혼하고 손 벌벌 떨며 돈 쓰는 거 하나하나 지적하는 남자와 살았더라면 더 큰 고통이 있었을지도.


아무리 봐도 지금의 선택은 내 취향저격의 최선이다.

내 뜻대로 알뜰살뜰한 남자를 선택하지 않아 놓고, 월급을 나에게 달라고 요구하는 건 모순일지도 모른다. 사실 끼리끼리 만났다고 생각한다. 나도 경제관념이 뛰어난 편은 아니므로.

남편은 그 나름대로 나와 즐겁게 사는 방법을 쓰고 있다. 쇼핑의 즐거움을 실천하면서.

덕분에 나도 즐겁다. 


그냥 이대로 있는 대로 삶을 받아들이면 남편이 예쁜 옷도 사다 주고 예쁘다고 박수도 쳐준다.

월급만 포기하면 나머지는 행복할 뿐.

가진 건 많지 않지만 참~ 통만 크다. 



백화점 VIP가 대체 뭐길래? 


백화점 VIP가 뭐길래? 가끔 등급기준 미달로 소비 내역을 판매(거래)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게까지 VIP등급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아래의 VIP 혜택들은 일부분이며, 정말 쇼핑을 하는 것에 최적화된 배려과 고급스러운 경험들이 많다.

직장에서도 백화점 VIP에 대해 궁금해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이게 글로 써서 단편적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또 경험하는 것은 입체적인 상황이라 다르게 느껴진다. 피상적이지만 대충 아래의 저런 느낌이라는 것......


우리도 500만원 이상 남았다면 내년 퍼플등급을 포기하고 한 단계 아래 오렌지로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89만원으로 엄청난 혜택을 놓친다는 건 바보 같은 일 아니겠는가?

1+1이나 세일 상품이라고 해도 현혹되지 않는 나지만, 등급 얘기는 다르다. 투자해서 상향할 가치가 있다.

쾌적하고 양질의 쇼핑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있어, 수능 등급과 내신 등급만큼 소중한 것이 VIP 등급이다. 


-라운지 혜택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다. 쇼핑을 하다가 라운지에 가서 간식과 커피를 먹으며 조용히 쉴 수 있다. 수선을 기다리거나 특정 브랜드 입장 웨이팅을 걸어놓고 시간 보내기 좋다. 

라운지에 여성전용 별도 파우더룸이 따로 있으며, 세면대 옆 세정 관련 좋은 화장품이 수시로 바뀐다.

라운지 공간에는 이름 모를 비싼 작가들 작품들이 걸려있다. 수시로 바뀌는 것을 보면 라운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자주 사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훌륭한 작품을 가이드라인 없이 바로 앞에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프라이빗 커뮤니티룸 예약.

백화점 내에 있는 회의실 같은 공간인데, 8인까지 착석 가능한 넓은 공간이며 2시간(4인) 예약해서 조용하게 대화하기 좋다. 물론 라운지의 음료와 간식을 룸으로 서빙해 주는 혜택은 동일.

작년에 시부모님과 식사 후 여기를 예약해서 조용하게 담소를 나눴는데 너무 편안하고 좋았다. 조명이 좋아서 인생샷도 찍어드렸다. 이 공간은 향도 좋다. 

호텔에 가면 로비층에 특별하게 블랜딩 된 향기로 숙박 경험을 극대화하는 오감 마케팅을 하듯 라운지 공간도 좋은 향을 유지하고 있다. 요새 롯데는 쇼핑공간에 있어서도 향기를 잘 쓰고 있다.(특히 5층 남성전용 명품샵이 있는 곳의 향이 너무 좋다.)


-주차와 발레서비스.

명동 주차가 얼마나 지옥인가. 주차비도 비싸고. 백화점 주차장에 진입하기 위해서 1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러나 VIP는 차량 2대가 롯데 전점, 전일 주차 및 무료 발레까지 해준다. 쇼핑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따뜻하고 시원하게 기다리면 차를 바로 앞에까지 갖고 나와 주신다. 차를 넣고 빼기 위해 고생이나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편안하게 집까지 고고~(나는 차가 없으므로 패스되는 서비스)

특별한 날엔 차 안에 꽃과 카드도 넣어주신다.


-연간 10% 할인한도.

이게 생각보다 크다. 상시로 적용되며 세일 상품에 중복 이용가능하다. 한도가 끝나도 자기 포인트를 차감하여 계속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아주 일부 명품 매장도 할인이 된다.


-문화센터 50%할인, 프라이빗 행사 초청, 기념일과 각종 선물들.

VIP는 남편이름으로 되어있는데 본인만 혹은 동반 시에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 못 갔지만, 한옥에서 프라이빗한 요가클래스도 있었다. 왜 배우자 양도가 안 되는 것인지. 

대부분의 행사는 평일 낮에 이루어지므로 직장인인 나는 방문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긴 하다.


-그 외 호텔 식사권, 숙박권, 명절 선물

VIP에게 지급된 포인트로 몇 가지 서비스를 고를 수 있다. 호텔 식사권이나 숙박권, 명절 선물을 선택할 수 있다. 숙박만 생각해도 이미 89만 원을 회수하고도 남으므로 남편은 현명하게 나에게 투자했다고 생각한다.


-VIP AVENUEL 퍼플 카드

에비뉴엘 퍼플카드는 PP카드는 아니지만 공항 라운지 이용 서비스를 연 2회 포함하고 있다. 

더 상위 등급(에메랄드/블랙)으로 가면 PP카드를 별도 제공해 준다.



그 외 꽤 많은 혜택이 있지만, 디자이너로써 가장 영감이 충만했던 것은 아래 두 가지 VIP행사였다. 

글감도 많이 떠오르고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충돌하던 나름 혼란스러웠지만 참신한 경험이었다.


* P데이(The Private day : 백화점 휴점날 VIP 고객만 초청하여 쇼핑과 이벤트를 하는 날)

부자가 되려면 부자들이 노는 곳에 가라? 그러나 어디 부자들 가는데 쉽게 가기가 쉽냐고. 그래도 비교적 VIP가 되면 그들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다.

P데이에는 드라마에서 보듯 명품 쇼핑백을 여러 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1년에 명품 하나를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본다면 격세지감에 기함을 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명품 쇼핑백을 잔뜩 들고 다니니 말이다. 이날 샤넬 쇼핑백은 유니클로 쇼핑백만큼 흔하게 보인다.

게다가 VIP를 위한 기념 선물이 있는데 이걸 또 인터넷으로 따로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다. P데이는 동반 1인만 같이 들어갈 수 있는데, 모르는 사람을 거래하듯 데리고 입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동반자는 VIP선물을 받지 못한다. 본인 한정 1개 증정.

P데이에 각각의 의류매장 안에는 VIP 고객들을 위한 별도의 간식 / 음료 등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명품매장은 평소에도 음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명품이 아닌 일반 매장들도 이날에는 다과를 제공하고 있다.

직원들도 3배 더 친절하다. 이날 고객들은 구경을 하러 온 사람은 없다. 무조건 소비를 할 고객인 것이다.

더불어 하이엔드 럭셔리 몇 군데를 제외하면 프리미엄 명품 정도는 10% 정도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상품권 리워드 행사도 쏠쏠하다. 사야 할 명품이 있다면 이 날 구입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가 된다.


* 롯데 VIP (단독 퍼플등급) 초청 영화 상영

영화 시작 전 라운지 직원들은 영화관 대기실에 출동했다. VIP들에게 선물 증정과 스낵류를 챙겨주기 위해서 직원과 고객으로 로비가 몹시 붐비는 상황이었다. 

대기를 하며 주변을 돌아봤는데 그날 그곳에는 단일 공간 가장 비싼 곳이 되어 있었다. 대기 공간에 많은 명품 착장인들이 모였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사실 공짜 영화를 보려 온 VIP이지만 대충 몸에 걸친 옷과 신발, 가방 모두 명품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날 그 공간에서 다양한 한정판 및 신상 명품을 실사로 관찰할 수 있었던 재밌는 경험을 한 날이었다.


-부자들도 공짜는 좋아하며 위로 오를수록 비율은 줄지만 진상 보존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

연간 백화점에 7천만원 이상 쇼핑을 하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이지만, 2만원도 안 되는 영화를 공짜로 보기 위해 주말 아침 백화점에 나와 있다는 부분. 

공짜를 마다할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적극적이라고? (평소라면 안 갔겠지만 보고 싶었던 영화였기에 억지로 갔다. 공짜보다 외출이 더 귀찮은 나다.) 

대기 중에 어린아이 케어를 잘못하여 다른 손님과 충돌사고가 있었는데 어른들끼리 무식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사람은 재력에 맞는 교양 아비투스가 아직 덜 형성된 졸부근성이라며.


-서민적인 취향도 추억도, 폭넓은 소비 스펙트럼 중 하나일 뿐.

P데이날 VIP들은 수많은 명품을 구입했지만, 시간 맞춰 나오는 무료 케이터링을 위해 줄을 열심히 선다는 점이 재밌었다. 

특히 붕어빵 간식줄이 인기가 좋았는데, 아니 우리가 붕어빵을 평생 못 먹어 본거 아니잖아요? 

세계적인 CEO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햄버거는 그냥 햄버거일 뿐이다."

아무리 위로 올라가도 즐겨 먹던 소박한 간식에 금을 뿌릴 수는 없다. 상류층이 된다 해도 그냥 같은 평범한 햄버거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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