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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09. 2024

67.행복은 돈으로 살 수가 없다지만

<돈은 불행을 막아주는 것도 사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문제들은 돈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사항까지 적당한 타이밍에 돈을 안(못)써서 많은 문제에 봉착하고 불행에 빠지게 될 수 있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지만, 돈은 많은 불행을 막아주는 것은 사실이다.

해결 못할 불행에만 빠지지 않아도 삶은 평화롭고 준수하다.


행복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별것 아닌 문제들을 돈으로 해결하며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을 적당히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돈을 쓰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돈 = 물건 구입 = 사치'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부분만을 생각하면 소비의 부정적인 기능에 초점을 두기 쉽다. 돈을 쓰는 것은 무분별하며 절약만이 오직 미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돈을 물건으로만 치환한다면 돈을 쓰는 것에 물건의 구입 그 너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우리가 돈을 쓸 때는 물건 소유뿐 아니라 행복, 평화, 감사, 배움, 여유 등 비물질적인 것을 위해 투자할 때가 있다.

돈을 씀 = 물건 소유(물질) -> 나쁘다??

그럼 이건 어떨까?

돈을 씀 = 경험과 자유(비물질) -> 어쩌면 꽤 괜찮은 투자...?


돈을 쓴다는 것은 무조건 나쁘니 아껴야 하며 절약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돈을 잘 쓰는 것으로 삶에서 많은 부분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오며 느낀 것은 너무 아등바등 아낀다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적절하게 신체와 정신 자본을 위해 돈을 투자하여 마음은 여유롭고 즐겁게, 몸은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삶에 있어 현금보다 더 큰 자산이었다. 

몸과 마음이 섬세하게 관리되지 않고 통장에 모아놓은 돈만 많다고 삶이 윤택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소비와 투자는 더욱 여러 곳에서 가치 있는 경험과 기회를 얻게 한다. 잘 쓰는 만큼 좋은 것으로 되돌아온다. 그게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인 소비든 늘 나에게 여러 가지 신체와 정신에 긍정효과를 가져왔다. 돈을 투자한 만큼, 경험적 지식이나 정신적 만족에 있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돈을 아끼느라 그 좁은 세상에 갇히는 경우는 더욱 정체되고 고립되는 것을 보아왔다. 돈을 쓰지 않는 것은 세상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자기만의 세계 안에 갇혀 담을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이야 말로 에너지와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하게 물질/비물질에 소비하는 과정에서 그 흐름과 에너지는 나를 더욱 성장하고 자유롭게 만들어가는데 도움을 준다.

그런 소비는 양질의(남들 눈엔 과시용) 물건뿐만 아니라 편리한 서비스(남들 눈엔 불필요한 돈낭비)나 충만한 경험에 있어서 삶에 있어 상당한 이득을 준다. 돈을 적절히 투자하며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이용하며 유용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한 푼 두 푼 아끼며 절제하는 삶에서 얻은 통장의 잔고 숫자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숫자는 나를 도저히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그 돈으로 편한 일상과 즐거운 가치에 투자하는 것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예전 많은 드라마에서 부자와 부유층 가정은 돈만 알고 불행하며, 가난하고 돈은 없지만 화목한 가정을 이분법화하여 상징적으로 그린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내가 살아오며 엄청난 부자를 못 보긴 했지만 대체로 적당히 돈이 있는 상태의 집안이 행복하기가 쉬웠다. 돈이 없어도 바르게 크고 행복한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렇게 어린이가 무조건 성숙하기란 쉽지 않다.(드라마처럼 가난과 역경을 극복하여 행복하고 신분 상승하기란 사기캐에 가까울 만큼 어렵다.)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자식이 원하는 공부를 끝까지 지원하게 하고, 그들에게 알바가 아닌 취미나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며 남들보다 자기의 공부와 성장을 위해 더 많이 투자할 수 있게 한다.


 돈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좀 쓸 줄 알아야 돈이 부적처럼 불행을 밀어내준다. 돈은 많은데 쓸 줄 모르면 돈이 없는 상태보다 불행이 커지게 된다. 

돈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적절히 쓸 줄 아는 센스와 선택으로 인생의 많은 부분의 평화에 가까운 안정을 찾아갈 수 있다. 

비록 그게 행복이냐 반문할 수는 있지만 괴로움 속에 있지 않는 '평온함'이야말로 행복보다 인생 전체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적당하게 돈을 쓸 줄 몰라서 불편과 불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돈을 지키기 위한 희생 수단으로 여기게 되면 본인뿐 아니라 주변이 상당히 불행해진다.

애초에 잘 생각해 보면 돈은 모으고 지키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필요할 때 적절히 잘 쓰기 위해 노력해서 모은 것이 돈의 역할이다. 이게 역전이 되어 돈만을 귀하게 모시고 그것을 중요한 순간에 풀지 못해 그 목표가 바뀌게 된 것이다. 내가 직접 몸빵 하며 돈을 모시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돈에 있어서 소비와 저축의 목적전도현상.


목표 없는 단순 절약은 우리를 붙들어 맨다. 제자리에 멈추도록. 자신의 세계만 옳다고 믿고 갇히도록.

돈을 아끼는 것보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가치에 소비하는 것이 후에 훨씬 더 큰 자산이 된다. 통장에 찍힌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신체로 직접 체득한 신체자본(건강, 지식, 능력 등)이다. 

돈을 막 쓰라는 것이 아니라 쓸 때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그 돈이 쓰이는 것이 더 큰 투자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면 그냥 열심히 저축하면 된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마찬가지로 자신을 위해 그 돈을 재투자하는 것으로 사용하면 된다. 


'그건 니가 책임질 자식이 없어서잖아.'라고 소비를 과하게만 오해하여, 거창한 소비패턴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적당한 소비는 대단히 큰 비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쓸 때 쓸 줄 아는 사소한 비용도 포함이다. 

작년 봄 어머니와 해운대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버스킹을 하는 청년을 만났다. 오랜만에 어릴 때 즐겨 듣던 올드팝송을 듣고 흠뻑 빠졌다. 팁을 주고 싶었지만 현금이 없었다. 마침 어머니 지갑에 만원이 있어 기타 뚜껑에 넣어드렸다. 어릴때도 어머니는 어딘가에 가서 좋은 것을 먹거나 경험하면 쿨하게 직원들에게 팁을 주셨다. 한국문화에 이상할 수 있지만, 감사를 표현하고 서로 기분이 좋아지는 작은 소비다.


야근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탈 것이냐 지하철을 탈 것이냐 사소한 고민 중이라면 새로운 관점에서 소비를 생각할 수 있다. 단돈 2만 원의 가치를 멀리 보고 소비의 결정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택시를 타면 집까지 30분, 지하철을 타면 집까지 1시간. 당연히 택시를 타고 귀가하여 30분이라도 더 자는 게 낫다.(빨리 귀가해서 휴대폰 보고 시간 버리기 말고 '쉬는 것'을 선택했을 경우임)

2만 원을 쓰고 신체 자본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루 7시간 이하로 수면을 취하는 세월이 길어지면, 중년 시점에서 여러 가지 대사 관련 질병이 발병한다. 푹 잘 쉬어주는 시간과 건강을 2만 원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돈을 더 쓴 것처럼 보이지만 10년 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드는 병원비가 더 크다. 게다가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고, 그렇게 잃은 건강은 돈을 들여 치료해 다시 회복한다 해도 아프기 전과 같은 상태가 되기 상당히 어렵다. 신체 자본을 잃고 돈도 계속 써야 하는 상황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인생의 많은 순간이 이렇게 돈의 소비로 기회를 지킬 수 있다.

세상에는 돈이 안 드는 공짜의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비용이 안 든다고는 할 수 없다. 돈 대신 다른 게 써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돈을 안 쓰기 위해 내 '노력과 시간'을 더 들이며 장기적으로 내 건강이나 성장의 기회(시간)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절약이라고 보기 힘들다.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정신적 불행을 막기 위해 돈을 쓰면 대체로 잘 해결이 된다.

돈을 아끼고 지키느라 지갑을 닫으면, 결국 온몸을 정통으로 스트레스나 문제 해결에 내던질 뿐이다.

돈을 아끼느라 더해진 애쓴 정신력과 노동력이 더 손해가 될 때가 있다. 스트레스는 신체를 해치게 된다. 돈으로 막아질 스트레스라면 쓰거나 그냥 없는 셈 그 돈을 버리는 게 낫다.


돈에 대한 본전 생각을 버리는 게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쉽다. 

예전 홍콩을 여행할 때 택시를 탔는데 중국인 기사가 거스름돈 사기를 쳤다. 싸워서 그 돈을 받아낼 것이냐? 나는 마음의 평화와 시간을 세이브하는 것을 선택했다. 어차피 영어도 못하는 중국인 이민자와 싸워서 이겨낼 깡이 없었으므로 깔끔하게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타러 갔을 뿐이다. 잃은 돈에 대한 분노나 싸움으로 그 시간을 소요했다면 마음 상하고 시간 버리고 야경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돈을 포기하고 시간과 마음의 평화를 지켰다. 그리고 홍콩 야경을 구경하고 전망대에서 식사하는 즐거운 경험을 가졌다.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은 약간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돈이면 다돼? 는 아니지만, 돈으로 대체로 불필요한 정신적 소모를 막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약간의 소비 투자로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하고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래서 쓸 때 써야 한다.


신체 자본이 돈 몇 푼보다 중요하다. 피곤하면 어떤 것을 해보겠다는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건강을 지키는 필라테스나 PT에 투자를 하고, 맛있는 유기농이나 비건식사를 하는 것은,

당장은 돈을 많이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큰돈이 나갈 것을 아끼는 작은 투자이다.

게다가 평소에 신체를 위한 소비 투자를 하지 않으면 10년 내에 돈도 많이 들고 이미 건강이라는 신체 자본도 잃게 된다. 돈도 잃고 건강도 잃은 후 뒤늦게 돈만 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한번 잃은 신체 자본(건강)은 처음상태로 되돌릴 수가 없다.


신체 자본은 인생 전반에 있어 삶의 질을 높이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다.

물리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사소한 불편을 제거하기 위한 소비도 중요한 것이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을 위한 소비에 있어도 당장은 손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적절한 투자가 필요하다.  비록 합리적인 소비라고 판단되지 않을지라도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면 투자할만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돈은 100% 행복을 약속하진 않지만 적어도 불행에 빠지지 않게는 한다. 

적절한 소비 선택으로 나의 심신의 안녕을 유지하는 것은 현명한 소비다. 나를 갈아 넣어 모은 몇 천만원보다 가치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나이가 든 지금, 나는 내가 옳았음을 안다."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은 냉소적이지만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돈으로 아주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돈만으로는 행복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우는 것보다는 택시에서 우는 게 더 낫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요즘 사람들은 이 글을 변형하여 벤츠에서 울고 싶다. 샤넬백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울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돈만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하게 잘 쓰며 신체 자본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자산이 된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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