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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an 04. 2024

8.샤넬 클미가 장롱행이 되는 이유

<샤넬 클미 캐비어 금장은 죄가 없다.>

 명품 후회템 상위권에서 늘 언급되는 백. *샤넬 클미.

(*래식 듐 캐비어 백을 줄여 부른 것. 대표적인 예물백이다.)


 누군가는 휘뚜루마뚜루~ 정장이나 캐주얼 모두 잘 어울리는 만능템이라 칭찬하고 누군가는 자기 스타일과 전혀 안 어울리고 들고 갈 곳도 없어 1년에 한 번 들까 말까 하는 장롱템이라 속상해한다.

세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는 와중에 샤넬 클미는 천만 원 중반까지 올랐다.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는 이 비용으로 오늘도 샤넬 클미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을 한다.


 먼저 우리는 명품 가방을 어떤 기준에서 사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오랫동안 갖고 싶어서 염원하다가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결혼 / 졸업 / 취업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어떤 명품백을 살 것인가를 고민해 본 적이 많이 없고 내가 평소 갖고 싶은 취향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추천하는 일반적인 선호를 우선순위에 두게 된다.

이해는 한다. 한두 푼이 아니니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고정도만 하는 것이 좋다. 결국 그 가방을 사용하는 것은 나 자신 아닌가.

남들이 좋다는 것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남들이 별로라는데 내 눈에만 예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장롱행이 된 샤넬 클미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을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해서 구입한 것이 아닌 남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것을 샀기 때문에 그 가치를 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원하는 취향에 부합하여 주도적으로 선택한 사람은 데일리로 아주 잘 쓰겠지만 대중적으로 타인에게 선호되는 취향을 기준으로 구입한 사람은 장롱템이 된다. 

대중성이란 건 어쩌면 나 빼고 나머지 사람들을 칭할 때도 많다.

브랜드에서 말하는 대중성이라는 것은 많은 취향의 평균값이라 그 누구의 취향이 아닌 경우도 있다.


 천만 원에 가까운 명품백을 구매하기 앞서 자신의 취향이 없다면 그 가방은 결국 모심템(모시는 가방)으로 그 역할을 다 할 뿐이다. 대중성과 타인의 취향을 기준으로 명품백을 구입한다면 그야말로 가장 '비실용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평균적인 사람들을 만족시켰던 메이저 취향은 '나'라는 단 한 사람의 마이너 취향에는 안 맞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명품백을 구입하기 앞서 세상 사람의 취향을 볼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스타일과 선호도를 가지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

타인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실패 없는 선택이 될 거라는 예측 소비는 오히려 나만 만족 못하는 쇼핑의 결과를 가져온다.


 취향이란 아주 개인적인 것이라 논리나 다수의견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모두가 좋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별로인 것이다. 

나는 모든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김치를 못 먹는다. 해외에서도 외국인들이 도리어 김치를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못 먹었다. 김치가 내 취향의 음식이 아닌것을 논리적이고 다수결로 납득할 수 없는 영역이다. 니가 대체 한국인인거 맞냐고 우스갯소리를 듣지만 예외 입맛이라고 내가 한국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개인 취향이란 이렇게 극단적으로도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명품 착용의 이유는 사회에서 성공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성이 되기 때문이다. 상류층 아비투스 중 자본영역을 가장 쉽게 가시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보여지는 데이터를 분석하여 타인을 빠르게 판단한다. 그런 점에 있어 착장의 고급스러움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후광효과(외모의 긍정성은 능력을 높이 평가하게 하기도 함)를 가져온다.

럭셔리 제품을 쓴다는 것은 성공과 함께 고급스러운 취향을 대변하며 그에 따른 개인의 노력과 업적까지 인정받게 한다. 


즉, 자신의 지위와 성취를 구구절절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보여지는 모습과 물건을 통해 취향과 계급을 드러낼 수 있다. 명품은 높은 가격과 제한된 생산수량으로 누구나 대중적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넬 클미는 비싼 값 치고 누구나 소유하는 편이라 의외로 희소성이 없다. 가격이 천만 원이 넘는데도 이 백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 "매해 가격이 올라가지만 스테디로 판매되는 클래식 백이니 꼭 사세요."는 수십 년간 캐리오버 되어 너도나도 드는, 명품으로써 희귀함이 전혀 없는 평범한 백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전 연령과 모든 시대에 통용된다는 것으로 포지셔닝이 되어 있긴 하지만.(악의 없음. 전 샤넬을 사랑합니다.)


 특히 명품백을 사는 이유는 중요한 자리에서 들기 위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결혼식, 동창회 같은 중요한 모임에 이 백을 메고 가면 모두 다 같은 가방을 들고 있어서 '샤넬 클미 동호회' 느낌마저 든다. 

중요한 자리에서 들기 위한 백이 오히려 너무 대중적이어서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남들과 같은 옷을 입으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느낀 경험이 있다면, 아무리 고가여도 너도나도 다 같이 들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민망한 기분일지 상상 가능하다.


 오히려 샤넬 클미를 잘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런 특별한 상황이 아닌 평소에 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대중적인 클미는 도리어 중요한 자리에서 들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 대량 유통된 상황에 상당히 현타가 올 것이다.) 

진부하기 때문에 특별한 날은 오히려 과시가 어렵다.


 그럼에도 기왕이면 샤테크도 가능한 클미가 낫지 않나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른 가방을 살바에야 클미를 사서 샤넬 재테크를 하는 것이 낫다는 합리적인 오해를 한다. 샤테크가 가능하려면 구입하여 '새상품'으로 잘 보관하다가 가격이 오르기 전에 적당선에서 팔아야 가능하다. 

샤넬 제품에는 모두 구입 연도를 추적할 수 있는 시리얼 넘버가 있고 판매할 때도 00번대(=20XX년) 샤넬이라는 것이 꽤 중요한데 구매했던 시세에 따라 가격이 달리 책정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5백만 원에 산 샤넬 클미가 지금 천만 원이라고 900만 원에 팔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일단 사용한 제품이면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이 된다. 잘 팔아봐야 구매했던 가격 언저리의 본전 정도다. 

물론 샤넬클미는 다른 명품백에 비해 가격방어가 잘 되는 상품이다. 갑자기 큰일이 생겨 가방을 팔일이 있다면 샤넬 캐비어 클미 금장은 거의 구매가격에서 아주 약간 빠진 금액으로 판매할 수 있다. (다른 백들은 상태가 좋아도 반값도 채 못 받는 것이 현실. 중고로 되팔려다 화나서 소장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명품백을 되팔 것을 생각하고 산다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일이다. 어차피 모셔둘 것이 아니고 쓸 때마다 정서적으로 충만한 내 소장품을 원하는 것이라면 잘 써서 뽕뽑는 것이 재태크며 나에게 투자한 만큼 결과를 누리는 것이 이득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고 우리 집 금송아지를 장롱 안에 꼭꼭 숨겨둔다고 지금 당장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잘 사고 잘 써서 물건이 에이징 되는 만큼 내 마음에 만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명품도 모르겠고 내 취향도 모르겠는데 올해 안 사면 가격이 자꾸 오르는 것 같아 뭐라도 질러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있을 수 있다.

포모현상(fear of missing out)에 휩쓸려 타인의 관점에서 구매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안 사는 것이 되려 이익이다. 

그렇게 내 취향을 모르고 구입하는 것은 결국 손해를 초래한다. 

몇 백만원 더 올라도 천천히 내가 원하는 것을 고민하고 내게 어울리면서 좋아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한 뒤 결정하는 것이 절약이며 합리적 소비가 된다. 

잘못 사서 돈 낭비하는 실수를 저지를 바에야(장롱템 예정 각) 좀 늦게 몇백 비싸게 사도 잘 사용할 데일리템이 이익 아니겠는가.


 내게도 샤넬백이 있는데 그중 WOC는 은장 하드웨어로 샀다.(10년전 파리 봉마르쉐에서 샀기 때문에 원하는 재고는 종류별로 다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기본은 금장이며 국내에서 구하기 힘드니 무조건 블랙캐비어 & 골드 하드웨어를 선택하라고 했지만, 나는 금색이 노티 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장을 선택한 건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했던 큰 실수는 블랙 캐비어를 샀다는 것이다. 

견고함이라는 실용성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놓쳤다.(블랙 캐비어는 참 스크래치나 오염에 참 강한데 이상하게 잘 안 들게 된다.) 나는 비비드 하고 화려한 유색 가방을 좋아한다는 것을 잊고 실용성(남들 의견)을 따진 것이 판단 미스였다. 

그래서 다음 샤넬백을 구입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유색(쨍한 초록색)을 선택했다. 아무도 안 들고 다니는 색상이라 엄청나게 유니크하다. 명품이라면 오히려 이런 희소성이 있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 좀 더 멋져 보인다.

그중 가장 멋진 사람은 흰색 가방을 구입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보통의 상식선에서 흰색 제품은 관리도 어렵고 이염에 예민해서 구입하기가 꺼려진다. 오죽하면 멋쟁이는 백구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명품에서 가방 많이 팔리는 아이템은 지갑, 가방, 벨트, 스카프다. 

그다음으로 신발과 액세서리류가 이어진다. 신발은 가방이나 지갑류보다 손상이 많이 되는 소모품이라 구입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으며, 럭셔리패션 브랜드의 액세서리는 커스텀주얼리(모조보석)지만 시중의 파인주얼리보다 비싸기에 구입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커스텀주얼리는 팔 때 똥값이다. 안 팔고 소장하는 것이 현명하다.

의외로 의류 RTW(ready to wear)는 가장 수요가 없는 카테고리다. 가방은 구입하면 거의 한평생 들고 다닐 수 있는 견고함이 있지만 옷 역시 슈즈만큼 손상이 잘 되는 소모품이고 트렌드라는 흐름이 있기에 쉽게 지갑을 열기 힘들다. 그보다 저렴하고 빠르게 변하는 스파브랜드를 선호하게 된다.(자라나 산드로 매장에 가면 구찌, 미우미우, 샤넬 스타일이 다 있다.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제품도 많다.)


 그러나 희소성 있게 명품 좀 쓰는 취향의 럭셔리를 뽐내고 싶다면 이 '쓸모없음'에 돈을 쓰는 것이 더욱 부각된다. 명품 가방을 사는 것보다 명품 옷을 입거나 명품 헤어밴드를 끼는 것이 더욱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명품 액세서리 중 헤어밴드는 가장 쓸모없는 축에서 상위권이라 생각한다.

명품 매장에서도 가방을 사는 고객보다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구입하는 고객을 더 높이 우대하여 VIP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명품옷 한 벌이면 보세옷 백 벌 이상을 구입할 수 있는 고액이기에 구입이 쉽지 않고 진입장벽이 높다. 그만큼 명품 의류를 소비한다는 것은 특권층임을 상징할 수 있다.

특히 샤넬 헤어밴드는 몇 개 들어오지 않아 구매하기가 심하게 어렵다.(남편이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부탁했지만 아직도 득템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샤넬백 보다 샤넬 헤어밴드가 어쩌면 더 럭셔리를 보여주기 좋다. 나름 가방은 쓸모를 목적으로 하는 제품이지만 헤어밴드는 없어도 그만이다. 

희소한 것은 바로 이런 비실용적이고 소모품에 해당되는 카테고리며 비실용적인 것에 투자하는 것이 럭셔리의 가치를 강조하기 더 쉽다. 가방 천오백만 원에 비하면 헤어밴드 150만 원은 큰돈이 아니게 보이지만 실용적이지도 않고 없어도 될 아이템에 150만 원은 역시 부담되긴 하다. 

한마디로 명품 좀 샀다는 과시라는 영역을 최적화하기 위해 샤넬 클미는 정답에서 한참 멀어진 선택이라는 거다. (물론 우리들은 과시나 허세보다 자신이 좋아서 샀을 거라 생각한다^^)


 자 이제 내가 가방을 사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부의 과시라면 다른 비실용적인 카테고리의 선택이 옳을지도 모른다.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취향의 부합이라면 클미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나만의 취향을 고려한 가방이라면 내 착장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가방에 맞춰 전체 옷 스타일을 다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건 비용과 시간이 꽤 들고 스타일을 찾기까지 시행착오가 좀 있다.


"명품백 입문이면 클미를 사라!"

"앞으로 명품 살일 없고 평생 단 하나의 명품백을 선택한다면 샤넬 클미 추천!"이라는 말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노노노노노우~.

입문일수록 절대 클미여서는 안되며 단 하나의 명품백을 소장한다고 하면 클미는 더더욱 아니다.

샤넬 클미야말로 수많은 가방 옵션이 있는 사람이 하나 정도 가져볼 만한 스테디 제품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한다.

단 하나의 명품백만 가질 수 있다면 정말 내가 원하는걸 딱 하나 잘 선택해야 한다. 남들이 추천하는 보편적인 가방이 내 취향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딱 하나를 선택하는데 타인의 관점과 평균적인 취향값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하나라면 더욱 내가 좋아하는 걸로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며 내가 정말 좋다면 실용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정말 좋아하는 것에 실용이나 논리적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 때가 많다.

타협한 선택이 늘 문제가 된다. 실용성이라는 이슈는 늘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실용성과 아름다움은 대체로 상충하는 상황일 때가 많기 때문. 그래서 취향을 중심으로 보되 실용성은 배제할수록 만족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샤넬 클래식 미듐 캐비어를 아주 찰떡으로 소화하는 사람도 있다. 샤넬 클미가 엄청난 취향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남의 말을 듣고 구입한 그 가방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다.

샤넬 클미는 죄가 없다.

내 취향을 모르고 비싼 값 치른 내 판단 오류가 문제랄까?

나는 명품 구입에 앞서 길게는 20년을 고민하고 구입한 상품도 있다. 물론 즉각 하루 만에 결정한 제품도 있지만 내 쇼핑 취향을 잘 알고 있기에 실수가 거의 없다.(가끔 하긴한다.)




명품 좀 사본 언니 말 잘~들어봐. 

클래식이 좋다면 당신이 정말 원하는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타인의 관점에서 선택된 샤넬 클미 보다는 어쩌면 샤넬 시즌백이 가격이나 희소성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고, 그보다는 본인 취향의 타 브랜드 제품이 훨씬 나을 수 있다. 

1,500만 원 가까이하는 가방이기에 더욱더 자기만족이 담겨있어야 한다. 샤넬은 장인을 통해 한 땀 한 땀 만들어지는 에르메스 가방과 다르며 나름 양산되는 가방이기에 더욱 신중해야 현타가 안 오고 후회가 적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남들이 단지 추천해서인지 객관적으로 생각하자.

지금 천만 원을 융통할 수 있고 무엇을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고 당장 명품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 안 사면 손해 본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히 내가 갖고 싶은 게 뭔지 고민을 해보길 바란다. 

안 사도 그만이라는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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