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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an 21. 2024

9.부유함은 감정이다.

<사치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스스로 한계의 선을 긋는 일일뿐>



 사치에 대한 가치 판단(주로 비난)은 명품을 알아보는 '안목과 감각'이 등한시될 때가 많다. 

럭셔리를 선택하는 소비자는 돈만 쓰는 멍청이로 여긴다. 럭셔리를 선택하는 뛰어난 취향과 예술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 무시된 채.


 "사치를 싸잡아 비난하거나~태도는 스타일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아름다움, 생산비용, 고급소재를 부정적으로만 치부하는 편협한 태도다." <아비투스>


 인터넷 악플처럼 어떤 것을 잘 모를 때 비난의 말은 쉽게 나온다. 

사실 그들은 럭셔리를 모른다. 그저 화가 내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럭셔리에 대한 서비스나 물건에 대해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고 잘 모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인지함으로써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러나 명품소비에 대한 비난은 상위로 도약하는 것에 스스로 발목을 묶는 상황이다. 비슷한 염가제품 수백 가지 보다 그 제품의 오리진인 명품 하나를 직접 써보는 경험이 낫다. 양질의 물건과 서비스에 대한 안목 부재는 성장에 필요한 내공과 경험의 부족이 된다.


 싸구려 술집 수십 군데 가서 수없이 많은 사람과 인맥 넓히는 생활보다는 돈을 모아서 단 한 번이라도 고급 호텔에 가서 좋은 음식과 최상급의 서비스를 경험해 보는 것이 훨씬 더 경험의 지평을 넓힌다. 

저렴한 술집의 비난이 아닌 다양한 레벨의 경험을 하지 않고 한 계층의 경험만 반복하는 것에 대한 얘기다. 마찬가지로 초상류층 역시 서민들의 술집 체험이 중요한 자산이 된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체 검열을 통해 자기의 생활 조건에 선을 긋기도 한다. 내 재정적 상황에, 내 눈높이에 이 정도가 충분하다는 한계 값을 스스로 만든다.

그러나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면 그곳의 아비투스를 경험하고 이해하여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들어봤고 인터넷에서 눈으로 봤던 것은 진짜가 아니다. 실제 눈과 몸으로 체험하여 체득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경험해 보기 전에 두렵고 어려운 것들도 해볼수록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여겨진다.

어쩌면 명품을 소비하고 고가의 서비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안 해봤던 거라 어색하고 과분한 서비스라 오히려 불편할지도 모른다. 

내 형편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하는 불안한 죄책감도 그 경험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가치를 찾게 되고 즐거움을 알게 된다. 반복적인 럭셔리 경험이 생활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되면 부정적인 부분보다 긍정적인 부분을 훨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런 걸 누릴 자격이 있을까에서 새로운 경험이 삶을 더 풍성하게 하고 다양한 시각과 폭넓은 지각을 갖게 된다. 

나는 이런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당당함이 생긴다.


 절약을 통한 만족  VS.  부유한 경험을 통한 만족 어떤 것을 선택하든 본인의 몫이다. 

그러나 통장에 돈이 많다고 해도 풍요로운 감정이 들기 쉽지 않다. 당장 내 생활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가상 화폐만으로 생활을 달리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다채로운 소비를 통한 경험은 지금 당장 생활을 풍성하게 하고 정서적인 부유함을 느끼게 해 준다.

부유함 역시 하나의 감정일 뿐이다.


 돈을 아끼며 스스로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계에 머물게 된다.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외면하며 유리천장을 손수 만들고 있다.

그보다 상위층은 돈으로 그에 응당한 경험을 얻고 훌륭한 아이템을 갖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돈을 무조건 절약하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잘 써서 나의 신체자본과 문화자본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돈을 아끼기만 하는 사람은 불필요한 지출만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꼭 필요하게 여겨지는 곳에서도 돈을 아끼며 자기가 그어놓은 한계 세계에 갇힌다.

상위층의 소비는 그 아랫사람들 눈에 실용성이 없어 보이겠지만 일상에 기쁨을 주고, 경험을 확장하며, 삶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기도 한다. 

무조건 아끼거나 상류의 소비를 비난해서는 이런 경험을 가질 수가 없다. 자기 한계를 그으며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기 위로만 하면 그 세계에 갇히게 된다.


 소비에 현실적인 유용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경험을 가로막는다. 실용성과 무관하지만 꼭 해봐야 하는 가치 있는 소비가 많다. 

삶에 풍성함을 주는 물건과 서비스에 대한 경험을 모르는 사람은 정신적인 만족을 값싼 것에서 찾기도 한다.

TV와 휴대폰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기도 한다. 단순히 보면 이런 전자기기로부터 기쁨을 찾는 것은 공짜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은 시간이라는 중요한 자본을 버리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그들은 정말 중요한 경험과 기회를 놓치게 된다. 

스스로를 아래쪽으로 머물도록 학습하게 된다. 실제 자본 계급 아래쪽으로 갈수록 전자기기에 대한 집착이 커진다.


 이렇게 절약만을 미덕으로 직접 몸은 안 움직이며 세상탓 하며 게으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더 문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지에서 최선을 픽하는 걸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왜 소유와 선택을 타인의 기준으로 비판이 시작되어야 하는가부터 생각해 보면 좋겠다. 

택시를 타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로써 내 시간과 신체에너지를 절약해 중요한 곳에 집중할 수 있다면 꼭 필요한 소비인 것이다. 

이런 선택을 단순히 비용의 크기로 실용적 소비다 아니다 판단하기 힘들다.


 사실 내면을 보라는 말처럼 허황된 유토피아가 없다. 내면을 보기 위해 타인에게 귀찮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서는 일단 겉모습이 먼저 합격해야 한다.

 "우리는 몸을 단지 껍데기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꾸미고 연출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들어있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다." <아비투스>


한국인의 명품 소장률이 높다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명품 소비가 잘못 일까?'


 비난은 '자기 월급보다 과하게 할부로 소비하고 카드빚 돌려 막는 극단적인 이야기'로 시작된다. 매번 이런 예시로 럭셔리 소비를 공격한다. 그러나 럭셔리 소비를 한다고 그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닿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명품 소비를 비난하기 위한 성급하게 일반화된 예시라고 보일뿐이다.


 급하게 조작된 여론으로 범죄도 아닌 럭셔리 소비를 근절시켜서 얻을 이익을 무엇일까? 

과거에는 소비와 소유물이 계급을 나누었다. 지금은 대체로 소비가 평준화되어 소유물로 계급의 차이를 인지하기 쉽지 없다.

어쩌면 다시 소유물로 차등을 주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일반 서민들은 럭셔리를 누릴 만큼 부를 소유하지 않았다는 프레임을 씌우며. 혹은 내가 못 가지니 너도 안 샀으면 좋겠다는 하향평준식의 삐뚤어진 마음?


 매달 스파브랜드에서 쇼핑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단 하나를 위해 1년간 돈을 모아 소비하는 게 차라리 합리적이다. 아끼고 아껴 럭셔리 소비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다. 럭셔리 소비자 모두가 무분별하다는 편견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스파브랜드에서 수없이 쇼핑하고 택도 안 뗀 상품을 과하게 소유하고 있다면, 오히려 잘 쓰는 명품 하나를 갖는 게 더 낫다. 심지어 스파 브랜드 쇼핑은 합리적이지도 않다.

 싸다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라고 연결될 수는 없다. 싸고 안 쓰는 제품일 바에야 비싸고 애용하는 제품이 더 효용성 있지 않을까? 

스파 제품은 곧 유행에 지나고 원단이 후져 오래가지 않아 집 한구석에 방치된다. 싸게 구입했으므로 쉽게 버려진다. 환경적으로도, 공정무역으로나, 생산국의 인력 착취 등 무척 문제가 많은 것이 스파 브랜드다. 

윤리적으로 운영해서는 싸게 대량생산 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20~30대 시절에 스파브랜드에서 샀던 수많은 옷, 신발, 가방은 지금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이것들은 유효기간이 짧다. 그렇다고 돈을 아꼈던 것도 아니다. 차라리 수백 개를 살 돈으로 명품 하나를 구입했다면 아직도 잘 쓰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도 20대에 명품 구입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돈을 아낀 건 아니며 질 보다 양으로 승부 보는 쇼핑을 했다.


 본디 우리 민족은 아름다운 것을 사랑했으며 꾸미고 치장하는 것을 즐겼다.

세탁 시설이 미비했던 시절 흰 옷을 즐겨 입고, 실크 한복으로 멋을 부렸다. 

갓은 또 어떤가? 실용성보다는 아름다움에 초점을 둔 예술품에 가깝다. 조선시대 갓끈 장식에 관해서도 기능보다 멋 부리기에 치중되었다며 그 사치스러움을 비난하기도 했다. 우리는 예부터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아름다운 물건의 오리진을 찾아가면 대체로 명품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

대량생산된 매스제품들은 조금씩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비용, 기술, 생산의 한계는 100% 명품과 동일한 제품을 재현해 내기 힘들다.

*럭셔리(하이엔드 명품) / 매스티지(준 명품) / 매스(대량생산된 일반제품)


 꾸미고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는 민족 사상이 명품에 대한 큰 관심과 소유로 드러나게 되었다.

우리의 교육열과 평균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은 지식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또 다른 모습이다. 이에 따라 지나친 교육열과 사교육에 대한 비난이 어쩔 수 없이 생겨왔다.

우리의 미에 대한 열망과 치장에 대한 높은 관심도는 지나친 명품 소장욕구에 대한 비난과 함께 한 세트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실 일반 중산층 혹은 서민층으로써 명품을 딱히 못 가질 이유는 없다. 

인간관계를 돈으로 환산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불필요한 관계를 줄여나가기만 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 이것을 사치라고 칭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선택과 집중 투자의 관점에서 더욱 현명하다. 자신의 삶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물 새듯 헛돈을 쓰거나 소모적인 인간관계에 치중하기보다 하나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 비해 명품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비난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늘 최고와 최선을 열망하는 것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도 우리의 교육열은 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탑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선진국도 아닌 나라가 어떻게 저렇게 교육에 관심이 많을까 하며 신기하게 바라본 나라도 많다.

먹기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조차 부모들은 논밭과 소를 팔아 자식을 도시로 보내 교육을 시켰다. 우리 수준에 맞춰 교육에 대한 욕구도 포기해야 했을까? 아니다. 우린 늘 최고를 원했다.

현재 수많은 저소득 나라들의 어린들이 학교 대신 일터로 보내지며 얼마나 많은 착취를 당하며 교육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그렇게 영원히 가난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상황을 볼 수 있다.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품을 소유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야 할까?

안목이 높은 사람들이며, 물건이든 지식이든 자신 한도 내에서 가장 최고를 꿈꾸는 '열정적인 민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더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을 열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절약과 소박함만이 정답은 아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해답이 있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선택하고 풀어갈 뿐이다.


저렴한 물건만 사 모으는 것이 고고함이나 절약의 미덕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소비력이 있어야 경제도 움직인다.


 돈은 어떻게 가치를 두고 쓰느냐에 따라서 양이 달라진다.

나는 평범한 공무원집 딸이지만 우리 부모님은 꽤 통이 큰 사람들이었다. 다른 집들은 돈을 알뜰살뜰 모으며 2~3 주택에 투자하며 살았지만, 같은 월급으로 우리 집은 다방면에 소비를 했다. 

부모님의 소비 투자를 통해 어릴 때부터 여러 곳에서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알뜰살뜰 모아 아파트 한채 물려주신 것보다 값진 문화적, 신체적 아비투스였다고 생각한다.

좋은 곳에 가서 자주 외식을 했고, 여러 뮤지컬이나 내한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다. 아버지 동료들은 우리 집보고 월급이 다르냐고 우스갯소리로 물어보기도 했다. 대신 우리는 부동산 투자를 안 했다. 그냥 살고 있는 집 단 한 채일 뿐 나머지는 모두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소비했다.

부유함은 감정이다. 

내가 입고 먹고 즐기는 것들을 통해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이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무원 월급이 뻔한 건 이제는 알기에.



늘 좋은 면만 바라보며 평가해 주는 언니가 있다.

내가 명품을 구입하고 고급 요리를 즐기는 것을 사치 부린다고 비난하기보다는

 "네가 디자이너로써 더 좋은 경험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네."라고 이야기해 준다.

역시 대학 교수라 그런지 경험적인 투자에 대한 사고방식이 열려있다. 가치와 경험의 소비는 낭비라기보다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럭셔리브랜드 인사이트/박소현 저자>

"한국인의 럭셔리 소비에 대해 스스로 색안경을 씌우지 말자. ~ K-contents가 뛰어난 만큼 개개인의 미적 기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보면 어떠한가? ~ 우리의 안목이 높다고 보면 럭셔리 소비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보게 될까?"



https://brunch.co.kr/@lovegyny/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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